할아버지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는 TV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큰 인기를 끌면서 고령층이 활발한 소비 주체로 주목받는다. 시니어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여행상품이 급증하고 아웃도어 의류, 건강식품 등 관련 산업 마케팅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 고령층 가운데 TV에 나오는 ‘할배’들처럼 여행을 즐기며 노년을 향유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노후에 자산을 처분하며 소비하기에는 모아놓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으로 가구주 연령이 60~74세인 가구의 71%가 보유자산을 처분해도 노후 ‘적정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사회적 변화가 고령층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노후자산에 큰 타격을 입게 됐고, 그에 따라 고령층의 소비성향(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08년 대비 2012년 소비성향은 60대 가구에서 -5.9%p, 70세 이상 가구에서 -6.8%p 감소해 1.6%p 증가한 39세 이하 가구, -1.9%p 소폭 감소에 그친 40대 가구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그래프 참조). 즉 우리나라 고령층은 노후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금융위기 이후 보유자산이 감소하면서 소비할 여유 없이 부족한 노후 자산을 충당하느라 저축을 늘리는 데만 급급한 것이다.
부동산 불패신화 종말과 실질금리 하락
흔히 인생을 게임으로 볼 때 노후 기간을 연장전에 비유한다. 치열한 전반전과 후반전을 치르고 은퇴하면 연장전이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반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후반전 인생이 결정되고, 또 후반전 내용에 따라 연장전도 결정된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인생의 전·후반전이라 할 수 있는 40~50대에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한 탓에 은퇴 후 소비를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1990년대 이후 학력 위주의 사회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대학진학률이 크게 증가했고, 그와 동시에 대학등록금도 지속적으로 인상됨에 따라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91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대학진학률 증가로 입시 경쟁도 치열해졌으며 이에 따라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도 대폭 증가했다. 특히 90년대, 2000년대에 중고교생 자녀를 둔 40대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이 연 10% 이상씩 늘어났으며, 이는 현재 60대가 된 부모들이 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에 노후에 대비할 기회를 잃는 원인이 됐다.
연장 러닝타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60세의 기대여명은 1990년 18.1년에서 2000년 20.4년으로 2.3년 증가했으나, 2010년에는 23.9년이 돼 3.5년 더 늘었다. 게임에서 연장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경우 체력 안배를 위해 선수가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고령 소비자도 은퇴 후 소비기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혹여 은퇴 전 기대여명을 가정해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을 축적했다 하더라도 예상보다 빠른 기대수명 증가로 실제 은퇴시기가 되면 자산이 더 필요해진다. 더 많이 필요해지는 만큼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가격 둔화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던 고령층의 소비성향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간 집값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부동산은 노후 대비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처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고령층의 자산 손실이 커졌다. 60대 이상 가구의 부동산 평가액이 2006년 2억7000만 원에서 2012년 2억 원으로 7000만 원 감소한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가격이 오르기 어렵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고령층은 소비를 더 억제하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더해지면서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의 실질가치가 하락해 노후 대비를 위한 필요 자산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2008~2012)의 평균 실질금리인 1.8%가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60~74세 가구의 노후 생활비를 위한 필요 자산은 약 2억50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실질금리가 금융위기 이전(2000~2007)의 평균 실질금리인 3.1% 수준을 유지했다면 필요 자산 규모는 약 2억2000만 원으로 추정된다. 실질금리 하락으로 고령자 가구의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이 3000만 원이나 증가한 셈이다. 자산을 처분해 소비하는 고령자 가구의 경우, 예전 금리 하에서는 생활비 충당이 가능했던 보유자산이 새로운 금리 하에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비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고령화로 장기적 소비 부진 우려
고령층의 낮은 소비성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높은 교육비 부담, 기대여명의 빠른 증가, 부동산가격 둔화, 실질금리 하락 등 노후 자산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버블붕괴 이후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 현상이 10년 이상 지속된 바 있다.
문제는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가 단순히 고령층만의 소비 부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를 침체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고령층의 소비성향이 현재처럼 매우 낮게 유지될 경우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소비성향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고령층의 미래 삶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소비성향을 높이려면 공적연금, 노인 복지 등을 확대하면 되겠지만, 이는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접근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고령층의 소비 여력을 높이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를 조성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정책적 노력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 근로 확대는 고령층의 노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재정 부담 절감과 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 고령층 가운데 TV에 나오는 ‘할배’들처럼 여행을 즐기며 노년을 향유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노후에 자산을 처분하며 소비하기에는 모아놓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으로 가구주 연령이 60~74세인 가구의 71%가 보유자산을 처분해도 노후 ‘적정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사회적 변화가 고령층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노후자산에 큰 타격을 입게 됐고, 그에 따라 고령층의 소비성향(가처분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08년 대비 2012년 소비성향은 60대 가구에서 -5.9%p, 70세 이상 가구에서 -6.8%p 감소해 1.6%p 증가한 39세 이하 가구, -1.9%p 소폭 감소에 그친 40대 가구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그래프 참조). 즉 우리나라 고령층은 노후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금융위기 이후 보유자산이 감소하면서 소비할 여유 없이 부족한 노후 자산을 충당하느라 저축을 늘리는 데만 급급한 것이다.
부동산 불패신화 종말과 실질금리 하락
흔히 인생을 게임으로 볼 때 노후 기간을 연장전에 비유한다. 치열한 전반전과 후반전을 치르고 은퇴하면 연장전이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반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후반전 인생이 결정되고, 또 후반전 내용에 따라 연장전도 결정된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인생의 전·후반전이라 할 수 있는 40~50대에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한 탓에 은퇴 후 소비를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1990년대 이후 학력 위주의 사회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대학진학률이 크게 증가했고, 그와 동시에 대학등록금도 지속적으로 인상됨에 따라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91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대학진학률 증가로 입시 경쟁도 치열해졌으며 이에 따라 가계의 사교육비 지출도 대폭 증가했다. 특히 90년대, 2000년대에 중고교생 자녀를 둔 40대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이 연 10% 이상씩 늘어났으며, 이는 현재 60대가 된 부모들이 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에 노후에 대비할 기회를 잃는 원인이 됐다.
연장 러닝타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60세의 기대여명은 1990년 18.1년에서 2000년 20.4년으로 2.3년 증가했으나, 2010년에는 23.9년이 돼 3.5년 더 늘었다. 게임에서 연장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경우 체력 안배를 위해 선수가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고령 소비자도 은퇴 후 소비기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혹여 은퇴 전 기대여명을 가정해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을 축적했다 하더라도 예상보다 빠른 기대수명 증가로 실제 은퇴시기가 되면 자산이 더 필요해진다. 더 많이 필요해지는 만큼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가격 둔화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던 고령층의 소비성향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간 집값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부동산은 노후 대비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처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고령층의 자산 손실이 커졌다. 60대 이상 가구의 부동산 평가액이 2006년 2억7000만 원에서 2012년 2억 원으로 7000만 원 감소한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가격이 오르기 어렵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고령층은 소비를 더 억제하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더해지면서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의 실질가치가 하락해 노후 대비를 위한 필요 자산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2008~2012)의 평균 실질금리인 1.8%가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60~74세 가구의 노후 생활비를 위한 필요 자산은 약 2억50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실질금리가 금융위기 이전(2000~2007)의 평균 실질금리인 3.1% 수준을 유지했다면 필요 자산 규모는 약 2억2000만 원으로 추정된다. 실질금리 하락으로 고령자 가구의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이 3000만 원이나 증가한 셈이다. 자산을 처분해 소비하는 고령자 가구의 경우, 예전 금리 하에서는 생활비 충당이 가능했던 보유자산이 새로운 금리 하에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비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고령화로 장기적 소비 부진 우려
고령층의 낮은 소비성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높은 교육비 부담, 기대여명의 빠른 증가, 부동산가격 둔화, 실질금리 하락 등 노후 자산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버블붕괴 이후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 현상이 10년 이상 지속된 바 있다.
문제는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가 단순히 고령층만의 소비 부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를 침체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고령층의 소비성향이 현재처럼 매우 낮게 유지될 경우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소비성향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고령층의 미래 삶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소비성향을 높이려면 공적연금, 노인 복지 등을 확대하면 되겠지만, 이는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접근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고령층의 소비 여력을 높이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를 조성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정책적 노력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 근로 확대는 고령층의 노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재정 부담 절감과 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