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류 혈관 사진과 스텐트그라프트 시술 사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런 전광판 문구가 눈길을 끈다. 대표적 국가 기간운송망인 고속도로. 하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은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 몸속에도 고속도로에 비견되는 혈관이 있다. 혈관 중에서도 가장 지름이 크고 가장 많은 양의 혈액이 흐르며, 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대동맥’이 바로 그것이다. 대동맥에서 한번 사고가 나면,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더 큰 문제는 대동맥에서의 ‘사고’는 대부분 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행되며, 환자가 증상을 느낄 정도라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안모(51) 씨도 그런 경우다. 평소 그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 한 번 앓은 적 없던 그는 다른 질환 때문에 복부 초음파를 받던 중 지름 70mm의 대동맥류(Aortic Aneurysm)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혈관 내 스텐트그라프트(stent graft) 삽입술을 시행해 혈관 벽이 파열되는 등 최악의 상황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풍선 주머니’를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대동맥류는 대동맥 벽이 노화하면서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얇아지는 질환이다. 대동맥이 체내에서 혈류량이 가장 많은 혈관임을 고려하면 이렇게 약해진 대동맥 내벽이 어느 순간 터지는 끔찍한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대동맥류는 노화나 생활습관 등에 의해 생긴 동맥경화로 동맥 벽이 혈압을 견디지 못해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유전적 이유로 발생하기도 한다. 대동맥류의 4분의 3은 복부대동맥에서 발생하고 나머지는 흉부대동맥에서 확인된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대동맥류는 조기검진이 아니고는 사실상 환자가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 대동맥이 한번 터지면 그 엄청난 출혈량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처치 여부와 관계없이 대동맥이 파열되면 80% 이상의 환자가 사망한다. 하지만 바꿔 얘기하면 적절한 조기검진으로 사전에 알아내기만 한다면 환자는 대동맥 파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다.
초음파 검사나 CT촬영을 통해 대동맥류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요즘은 일반 건강검진에도 복부 초음파 검사 등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동맥류의 경우 65세 이상의 고령층에서 유병률이 높은데, 은퇴한 고령층은 직장에서 흔히 제공하는 정기 건강검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대동맥류 환자가 대부분 다른 질환 때문에 내원했다가 진단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65세 이상 고령층도 연 1회 이상 정기검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동맥류는 지름이 클수록 파열 위험도 커진다. 지름 50mm 이상이면 연간 5~10%, 60mm 이상이면 연간 10~20%, 70mm 이상이면 연간 20% 이상 파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50mm 이상의 대동맥류는 가급적 빠른 시기에 치료해야 한다.
대동맥류 치료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개복 수술과 혈관 내 스텐트그라프트 삽입술이다. 개복수술은 흉터가 많이 남고 입원 및 회복기간이 긴 단점이 있어 일반적으로 수술을 견뎌낼 수 있는 젊은 환자를 대상으로 많이 시행한다. 스텐트그라프트는 스텐트(stent·금속 재질의 원통형 철망) 둘레를 천으로 싸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환자의 사타구니 같은 부위를 최소한으로 절개한 뒤 스텐트그라프트를 대동맥류가 발생한 부위에 이식해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주게 되는데, 흉터가 거의 없고 시술 및 회복기간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이재환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전임을 수료하고 미국 뉴욕 콜롬비아 의과대에서 대동맥 중재술 연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