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중학교 시험에서 0점을 받은 것의 당부(當否)는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청소시간에 다른 학생이 그 학생의 책상에 적힌 메모를 발견하고 담임교사에게 알렸고, 학교 측은 메모를 한 학생이 시험 시작 전 책상에 메모를 해두는 방식으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해 해당 영어시험에 대해 0점 처리를 했다.
그 학생은 억울했다. 시험시간 전 메모를 해둔 것이 아니라 시험시간 시작종이 울린 뒤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메모해둔 것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학생은 학교 측을 상대로 자신의 영어시험 성적 0점 처리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중학생이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법정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중학교 중간고사 영어시험 성적 0점 처리의 당부(當否)는 소송으로 다툴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중학생의 청구를 ‘각하’했다. 법적으로 풀이하면 이 학생이 제기한 소송은 행정소송인데, 중간고사 시험 성적 0점 처리는 처분(處分)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0점 처리가 적법한지 여부는 본안 판단조차 받아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소송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형사소송 외에도 민사소송과 가사소송, 그리고 행정소송이 있다.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 그 밖에 공권력의 행사·불행사 등으로 인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구제받는 소송’이다. 행정소송은 대부분 행정청을 상대로 불이익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식의 항고소송 형태로 제기된다. 따라서 취소해달라는 대상 처분이 있어야 소송이 성립된다.
처분이란 행정청의 공법상 행위로서 법규에 의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말한다. 운전면허 취소 처분, 영업정지 처분, 정보공개거부 처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경찰청장이 특정인의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처분을 하면 대상자는 운전을 할 수 없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는다. 따라서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경찰청장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고, 승소하면 운전면허취소 처분이 취소돼 운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안의 경우 재판부는 “0점 처리 자체로는 학생에게 법률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중학생이 영어시험에서 0점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권리·의무에 대한 직접적인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사립학교장을 행정청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인 소송이었다. 반면 각종 국가시험 불합격 처분은 처분성을 인정받는다.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자격 취득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설기관이 시행한 자격시험 불합격 처분은 처분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만일 이 학생이 행정소송을 내지 않고, 학교 측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0점 처리를 한 것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면, 적어도 0점 처리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받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