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 지명된 김종규
‘응답하라 1994’를 필두로 ‘빠스켓 볼’ ‘우리동네 예체능’ 등 농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이 대거 늘면서 새삼 농구가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침체기를 겪었던 프로농구도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다. ‘스타 기근’에 시달렸던 남자 프로농구에 걸출한 신인들이 가세하면서 리그 전체를 흔들고 있는 것. 경희대 삼총사 김종규(22·LG), 김민구(22·KCC), 두경민(22·동부)이 프로에 가세하자마자 코트를 휘저으며 이른바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은 일찌감치 주목받은 선수들이다. 지난해부터 경희대 주축으로 활약한 삼총사는 대학 무대를 평정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삼총사가 이끄는 경희대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학리그에서 다른 팀들을 압도했다. 그러자 이들 3명을 잡기 위한 프로팀들의 뜨거운 경쟁이 펼쳐졌다. 이들 3명을 선발하기 위해 신인드래프트 1~4순위 선발권을 확보하려고 2012~2013시즌 정규리그에서 고의로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팀들도 나왔다. 이 때문에 프로농구연맹(KBL)이 나서서 신인드래프트 제도를 전면 개편했고, 고의 패배 의혹을 받은 팀과 감독은 KBL로부터 경고를 받는 등 많은 뉴스가 양산됐다.
어제의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
동부에 지명된 두경민
결국 10월 신인드래프트에서 김종규는 전체 1순위로 LG, 김민구는 2순위 선발권을 확보한 KCC, 두경민은 3순위로 동부로 결정됐다. 삼총사는 이제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게 됐다. 이들의 프로팀 합류는 동아시아경기대회와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출전으로 늦어졌다. 프로팀은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합류해 선배들과 손발을 맞추길 원했지만 전국체전이 중요한 경희대는 보내줄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결국 프로팀들은 이들이 전국체전을 마칠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신인들의 늦은 합류가 이번처럼 큰 화제가 된 적도 드물다. 그만큼 경희대 삼총사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다.
삼총사는 2013~2014 프로농구 1라운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프로팀에 합류했다. 팀과 제대로 호흡을 맞춰볼 시간도 없이 경기에 출전하는 셈이다. 이들 삼총사는 대학리그, 프로·아마 최강전, 대표팀 차출 등으로 1년 내내 쉴 시간도 없어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몸이 극도로 피로한 데다 경기 수가 많고 대학리그보다 몸싸움이 치열해 체력 소모가 심한 프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부상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삼총사 가운데 발목이 좋지 않던 김종규는 LG에 합류한 직후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삼총사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분위기에서 출발했지만, 금세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들은 시작부터 리그를 흔들었다. 가장 먼저 센세이션을 일으킨 선수는 김민구. 저돌적인 돌파와 정확한 외곽슛으로 선배들로부터 주전 자리를 빼앗았다. 어시스트 능력까지 겸비한 그는 허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승부 근성과 저돌적인 플레이가 자신을 빼닮은 김민구를 보면서 허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하위권을 맴돌던 KCC는 김민구의 합류로 가드진이 더욱 탄탄해지면서 중위권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두경민 또한 동부에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는 가드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동부에서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높이에 비해 외곽슛이 부족했던 동부에서 두경민은 정확한 3점슛을 연이어 터트리며 자기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높이를 살리는 농구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현역 시절 ‘슛 도사’로 불리던 이충희 감독은 두경민의 외곽 득점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KCC에 지명된 김민구
경희대 삼총사가 리그 초반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약점도 드러나고 있다. 김민구는 분위기에 많이 휩쓸리는 단점을 지닌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거기에 휩쓸리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냈다. 김종규는 포스트에서 일대일 공격에 어려움을 겪는다. 용병들까지 버티고 있는 만큼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 두경민은 득점력은 좋지만 동료를 좀 더 살려줄 수 있는 어시스트 능력을 키우고 승부처에서 실책을 줄여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신기성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삼총사의 더 밝은 미래를 예상했다. 신 위원은 “3명 모두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에 잘 갔다. 그 덕에 합류하자마자 출전 기회를 얻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3명은 기량도 좋지만 과감하고 저돌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라고 본다. 물론 개인별로 약점도 눈에 띄지만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난 선수들이기에 앞으로 더 기대된다. 삼총사의 등장으로 모처럼 프로농구가 활기를 띠게 돼 농구인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특급 선수들도 줄 서서 대기
한국 농구가 최고의 흥행가도를 달릴 때마다 늘 황금세대가 있었다. 1980년대 중앙대와 기아의 전성기를 이끈 ‘허동택’(허재, 강동희, 김유택), 90년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녔던 연세대의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그러나 이른바 농구대잔치 세대들의 전성시대가 지난 이후 한국 농구에는 황금세대가 존재하지 못했다. 리그를 흔들어놓을 만한 신인이 몇몇 등장했지만 농구를 중흥기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래서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의 동시 등장이 농구 관계자나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경희대 삼총사의 뒤를 이어 프로에 뛰어들 초특급 선수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고려대를 프로·아마 최강전과 대학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승현과 문성곤, 연세대의 재도약을 책임질 재목으로 꼽히는 최준용, 허웅, 김준일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들까지 프로무대에 합류하면 경희대 삼총사와 함께 향후 프로농구 10년을 책임질 재목이 한자리에 서게 된다. 프로농구가 질적으로 향상될 뿐 아니라, 스타성을 갖춘 많은 선수가 코트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밑그림은 잘 그려졌다. 색채를 잘 더한다면 한국 농구가 겨울스포츠 왕좌 자리를 되찾고 옛 명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