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8

2013.10.14

초보 대통령 ‘아버지의 그늘’

중용된 인사들 박정희 前 대통령과 인연…보수 성향 ‘인사 스타일’도 닮은꼴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sysohn@chollian.net

    입력2013-10-14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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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대통령 ‘아버지의 그늘’

    1973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함께 투표하는 박근혜 대통령(가운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의장,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최근 경기 화성갑 지역구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서청원 후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올드 보이’가 대거 중용되고 있다. 현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이나 야권에서는 ‘호위무사’니 ‘올드 친박(친박근혜)’이니 하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이들은 오래전 왕성하게 활동했거나 정치 활동을 길게 해온 인물들이기에 박 대통령이 발탁하지 않았다면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존재다. 따라서 은퇴가 아닌 재등장, 나아가 제2 전성기를 구가하는 그들의 영광에는 분명 임면권자인 박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서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쳤지만.

    집권 세력의 최고 리더가 자신과 정치 철학을 함께하고,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보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나이 많은 인사의 발탁이 눈에 띈다. 그것도 대부분 남자다.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을 만한, 아니 더 나아가 손주사위를 맞았을 수도 있을 정도의 인물들이다. 반면, 박 대통령이 중용한 여자는 대부분 ‘올드 걸’보다 비교적 젊은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 인사들이다.

    무의식 또는 감정 속 아버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박 대통령은 일단 ‘할아버지 인사’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통령 처지에서는 자리에 합당하고 능력에 맞춰 인재를 등용했겠지만 이는 표면적, 이성적 차원의 설명이다. 그의 무의식 또는 깊은 감정 속 어떤 요인이 이런 인사를 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그의 아버지, 즉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향수, 그리움, 존경심, 애정 등이 강하게 남아 마치 아버지 같은 인사를 중용했다고 느낄 수 있다. 혹은 아버지의 정치 노선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나, 어떠한 형태로든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라고도 추측할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일을 수행하던 시절 박 대통령 자신도 그 나름대로 여러 사람을 보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실 중용된 인물들의 나이로만 보자면 박 대통령보다 많긴 하지만 아버지 정도는 아니고, 대략 삼촌이나 큰오빠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작은아버지나 큰오빠가 남은 가족을 보살피며 가장 구실을 해왔던 우리의 관습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대통령이 가장 높은 자리요, 최고 권력자인데 무슨 보살핌이 필요할까.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인간의 세 가지 기본 갈등과도 연관된다.

    세 가지 기본 갈등 가운데 첫째는 의존 대 독립이고, 둘째는 공격성 대 공격성의 통제이며, 셋째는 쾌락의 추구 대 쾌락의 지연과 포기이다. 박 대통령은 비록 최고 권력자로서 가장 독립적 존재이지만, 반대편에서 꿈틀대는 의존 욕구 또한 분명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자신도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존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는 대상을 자기 곁에 두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잠깐 나이든 남성 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늙은 남자가 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현명함, 인자함, 노회함, 노숙함, 여유 있음, 지혜로움, 무서움, 고집이 셈, 기운 없음, 경험이 많음, 달관함, 사리분별력이 떨어짐, 까다로움, 뒷방, 보수적임, 관습과 전통을 중요하게 여김, 옛날 방식을 고수함 등 여러 가지다.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할 때면 노인이 아닌 중·장년층 인사를 선호하고 그들에게 젊음, 개혁, 힘, 추진력, 카리스마 등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노인의 부정적인 면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이른바 ‘주지화(intellectualization·지성화)’의 방어기제를 동원했을 것이다. 주지화란 자기 느낌이나 감정을 가급적 무시하고, 이성적 태도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지적활동을 뜻한다. 건전한 주지화는 지식과 능력을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지나치거나 병리적으로 왜곡된 주지화는 강박적이고 편집적인 증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나는 그가 노인이라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경험, 능력, 지식, 지혜 등을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것이다. 따라서 나의 판단은 매우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애도 과정’의 지속이다. 비록 아버지를 여읜 지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라는 ‘대상’이 과연 사라졌을까. 보통 사람은 부모를 여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괴로움과 슬픔의 정도가 줄어들게 마련이고, 특히 상실한 부모의 정신적 표상에 더는 매달리지 않게 되며 새로운 애착 대상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총탄에 여의고, 5년 후 아버지마저 총탄에 여읜 그야말로 비극적 운명을 경험했다. 이런 부모 상실의 경험은 매우 드문 경우다. 따라서 어쩌면 박 대통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붙잡아 놓고 있을 수도 있다. 혼자라는 느낌이 싫은 인간의 본능적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애도 반응의 기간이 연장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현대 정신분석학자 바믹 볼칸은 이것을 “‘대상과의 연결됨’을 통해 상실한 대상의 표상을 영구히 간직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집권 1년 차 유·아동기

    초보 대통령 ‘아버지의 그늘’
    상실한 대상, 즉 박 전 대통령의 표상을 영구히 간직하려면 그를 연상시키는 인사와의 교류 내지 관계맺음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유신헌법 제정 당시 실무진으로서 핵심 구실을 했고, 고 육영수 여사의 저격범이던 문세광의 자백을 이끌어낸 검사였으며, 박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비서관을 지냈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생각해보라. 돌아가신 부모와의 인연이 아마 그의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돼 있을 것이다.

    마지막 심리적 이유로 ‘과도한 동일시’를 들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라면 누구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해봤을 공산이 크다. 그에게 아버지는 스승으로 자리매김한다. 자신은 이제 걸음마 단계의 초보 대통령이고, 아버지는 대통령 경력 18년의 베테랑 선배이자 은사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종의 도제식 교육을 받은 것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은 그러한 박 대통령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박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인사(人事)를 어떻게 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반공 의식이 투철한 사람을 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중용된 인사들이 진보 성향보다는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다. ‘아버지처럼 한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와의 동일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 가정이나 기업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과도한’ 동일시인 셈이다.

    지금까지 분석해온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아직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의 그림자 또는 환생 같은 구실을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집권 1년 차이므로 발달 단계로 치면 유·아동기에 해당한다. 내년이면 청소년기, 후년에는 성인기에 접어들 것이다. 대통령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정신적 표상을 이제 거둬들이고 새로운 시대의 독립적인 정치지도자로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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