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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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이 검은 입을 연 ‘유쾌한 반란’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헬프’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입력2011-11-07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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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손이 검은 입을 연 ‘유쾌한 반란’
    1955년 미국의 한 백화점 점원이었던 당시 42세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퇴근길 버스에 올라 유색인종칸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백인 승객이 많아지자 운전사로부터 일어설 것을 요구받았다. 파크스는 이 지시를 거부했고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건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이끈 흑인들의 버스탑승 거부운동으로 이어졌고 1956년 공공장소에서 흑백인 전용공간을 분리한 시의 조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미국의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파크스가 한국에서도 때아닌 인기를 끌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전한 서한 때문이다. 안 원장은 편지 첫머리에서 이 사건을 인용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은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파크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 몇 해 전부터 연설에서 즐겨 언급하던 인물이다. 대선에선 오바마 진영은 “로자(파크스)가 앉아서 마틴(루서 킹)이 걸을 수 있었네, 마틴이 걸어서 오바마는 달릴 수 있었지, 오바마가 뛰고 있어 우리 아이들은 날 수 있다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외쳤다.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지난했던 인권 투쟁사가 있었음을 강조한 구호였다.

    영화 ‘헬프’에서 만나는 이야기도 노예시대에서 시작해 파크스를 거쳐 오바마에 이르는 ‘아프로-아메리칸’의 긴 여정 속 한 페이지다. 캐스린 스토킷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헬프’는 1960년대 흑백인종차별을 소재로 했다.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의 잭슨 마을. 백인 여성의 삶이라면 정원과 가정부가 딸린 부잣집의 안주인이 되는 게 최고이자 전부로 여기는 곳이다. 하지만 스키터(엠마 스톤 분)는 다르다. 대학 졸업 후 작가의 꿈을 이루려고 지역 신문사에 취직한다. 첫 업무는 생활정보 칼럼을 대필하는 것. 그러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가정부가 해주는 밥과 빨래로 살아온 20대 초반 백인 여성이 살림에 대해 뭘 알까. 의욕적인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로부터 정보를 얻기로 하고 살림의 베테랑인 중년 흑인 여성 에이블린(바이올라 데이비스 분)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당신은 커서 가정부가 될 줄 알았나요?” “예, 알았어요.”

    “다른 삶을 꿈꾼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할머니는 노예였고, 어머니는 하녀였으며, 저는 가정부예요. 학교를 그만둔 딸도 다른 집가정부로 들여보냈어요.”

    “당신 아이를 맡기고 백인 아이를 키우는 심정은 어떤가요?”

    화제는 프라이드 치킨 요리법을 넘어서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흑인 가정부들의 내밀한 경험으로 옮겨가고, 스키터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책에 담아 출판하기로 한다. 하지만 에이블린은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인종차별보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인인 당신과 이야기를 섞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벽이다. 당시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테러가 횡행하던 시절이다. 백인은 흑인을 죽이고도 운 좋게 백인 배심원을 만나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에이블린의 공포를 짐작할 만하다. 영화는 스키터와 에이블린이 인종의 벽과 두려움을 넘어 진실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는다. 검은 입이 말하면, 하얀 손이 적는다. 세대와 인종이 다른 흑백 두 여성의 교감, 따뜻한 우애와 연대의 정서가 영화를 감싼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미시시피 주다. 전통적으로 목화 경작이 유명한 지역이며 미국에서도 흑인인구 비중이 높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영화의 단골무대가 돼왔다. 1960년대에는 흑인 인 권운동가나 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우월주의자의 테러가 많이 일어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시시피 버닝’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 백인 부부가 거리의 흑인 소년을 입양해 프로 풋볼 선수로 성장시킨다는 내용의 샌드라 불럭 주연 ‘블라인드 사이드’의 배경 역시 미시시피 주다.

    ‘헬프’는 인종차별을 소재로 했지만 유머와 온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곳곳에서 상류층 백인 여성들의 허위의식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은 흑인 가정부 앞에서 검둥이(negro)라는 비하 단어를 서슴없이 쓴다. 또 잭슨 마을의 ‘부녀회장’쯤 되는 힐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분)는 아프리카 아동을 위한 자선모금회를 열면서도 흑인 가정부용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키워낸 이들이 흑인 보모인데도 백인 여성들은 흑인이 더럽고 병균이 많아 화장실을 같이 쓸 수 없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힐리는 결국 자신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오랜 경력의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 분)를 해고한다.

    스키터가 흑인 가정부에게 연민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상류층 여성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흑인 보모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스키터에게 책 집필의 동기를 제공한 에이블린은 백인 아이를 17명이나 키웠지만 정작 자기 아들은 백인 고용주 때문에 잃은 아픔을 지녔다. 남의 자식이지만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내는 에이블린이 보기에 백인 여성들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미성숙한 이들이다.

    에이블린이 주인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고도 자신의 손을 타던 백인아이에게 “넌 상냥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소중해”라고 일러준 뒤 떠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흑인 보모를 잊지 못하는 백인 아가씨 스키터와 또 다른 백인 아이를 키우는 에이블린, 백인 사이에서도 ‘쓰레기’ 취급을 받는 셀리아와 그를 도와 삶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가정부 미니. 흑과 백이 어우러진 우애와 연대의 고리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헬프’라는, 익명으로 출간된 책은 미국 전역, 그리고 잭슨 마을에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다. ‘헬프(the help)’는 가정부, 가사도우미를 뜻한다. 처음에는 고백을 꺼렸던 에이블린이 동료 미니와 함께 스키터를 향해 “시작이야 당신이 했지만 끝은 우리가 맺는다”고 나서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하얀 손이 검은 입을 열었고,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 잠자던 ‘로자 파크스’를 깨운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낸 반란은 경쾌하고, 피부색을 넘은 우정은 아름답다.

    하얀 손이 검은 입을 연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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