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9

2011.10.24

뭐, 미-캐나다 국경에 철조망을?

미국 보고서 언론 보도에 캐나다 시끌 … 최근 ‘북미 공동 입국 심사제’ 논의 주권 침해 논란도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hyb430@hotmail.com

    입력2011-10-2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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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미-캐나다 국경에 철조망을?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막는 장벽.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한국의 휴전선 철조망처럼 철의 장벽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 두 나라가 군사적으로 동맹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밀착된 점을 감안한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이 아이디어를 미국에서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테러 분자나 불법 취업자를 막겠다는 취지다.

    최근 캐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 및 국경 보호청(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Agency)’의 한 보고서에서 더 철저한 국경 관리를 위해 이 같은 제의를 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또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지금보다 많은 인력과 무인정찰기 등 첨단 장비가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8891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미 대륙을 남북으로 나누는 국경이 6400여km고 나머지 약 2500km는 미국령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가른다. 미국 독립 직후 미국과 캐나다의 전신인 영국령 북미 간처음으로 국경을 획정했다. 당시 국경은 북미의 동쪽 일부만 구별했으나 19세기 들어 미국이 서쪽으로 국토를 넓히고 알래스카까지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현재의 국경이 완성됐다.

    두 나라는 200여 년간 이 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단 한 명의 미군과 캐나다군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국경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긴 비방위 국경’이라고 부른다. 국경이라고 눈에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양쪽 경계에 드문드문 돌기둥이 서 있는데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경계가 된다. 삼림지대 구간에는 돌기둥조차 보이지 않으며, 두 나라 간 합의에 따라 경계선 양쪽으로 각각 3m씩, 합계 6m 폭으로 식생을 제거해 국경을 구분한다.

    국경에 군인은 없지만 밀입국과 밀수를 막기 위한, 주로 미국 측 감시 인력과 장비가 투입돼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부족해 미국 쪽에 철조망을 치겠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내용이다.



    미국은 2006년부터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서 미국 쪽으로 철제 장벽을 치는 사업에 들어갔다. 2009년 현재 국경 3140km 중 약 3분의 1 구간에 장벽과 철조망 공사를 완성했고, 지금도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과 중남미산 마약의 밀수입을 막고, 무엇보다 마약 밀매단이 테러리스트들과 내통해 그들을 침투시키는 일을 방지한다는 것이 철조망을 치는 명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방위 국경

    당시 이 조치에 대해 멕시코 당국과 환경운동가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멕시코는 이 철조망이 남쪽 이웃에 대한 불신이라 서운해했고, 환경운동가들은 야생동물의 이동로를 차단하는 생태계의 흉물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그런데도 당시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테러에 대한 자국민의 경계심을 바탕으로 이 사업을 밀어붙였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철조망과 장벽을 칠 때 캐나다인들은 자국은 멕시코와 다르니 미국이 그런 생각을 안 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이번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자 캐나다인의 실망이 크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 관세 및 국경 보호청보다 상급 기관인 국토안전부는 “문제의 보고서가 정부의 최종 결정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일단 정책에 시동이 걸렸으니 그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또 철조망과 장벽을 국경의 전 구간에 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국경에서처럼 지형적으로 밀입국, 밀수입 통제가 어려운 구간에만 설치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실제로 탁 트인 평원과 무인지대 구간 등에서는 철조망과 장벽을 치지 않고도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을 잡아낼 수 있다.

    19세기 말까지 캐나다인들은 남쪽의 거대 이웃이 무력으로 자신의 땅을 병합할 것을 우려해 전전긍긍했다. 이런 우려가 사라진 뒤로 남쪽 이웃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지금까지도 매우 양면적이다. 미국을 캐나다의 독립성과 이익을 훼손할 경계 대상으로 여기는 동시에 최선의 우방이자 후원자가 될 나라로 생각해 의존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9·11 테러 이후 엄격해진 국경 통과소

    미국의 존 톰슨과 캐나다의 스티븐 랜들은 함께 쓴 책 ‘캐나다와 미국-곱고도 미운 이웃’에서 “많은 캐나다인은 미국과 캐나다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다른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라고 믿지만 실제로 워싱턴 당국자의 눈에 캐나다는 미국보다 작은, 세계의 여느 나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캐나다와의 국경에 실제로 철조망을 친다면 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된다.

    국경에 철조망과 장벽 설치설이 보도된 이후 캐나다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인터넷 댓글 중에는 “남쪽이 불황을 겪을 때 실업자들이 홍수처럼 북으로 밀려오지 못하도록 미국이 돈을 들여 철조망을 친다니 잘된 일”이라는 반응도 있고 “일단 철조망이 쳐지면 미국의 국토안전을 위해 캐나다가 협조해야 할 의무도 없어지니 캐나다의 독립성이 높아질 터”라는 댓글도 있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이어 캐나다 국경에도 철조망을 설치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출발점은 9·11테러다. 9·11 테러 발발 직후 범인 19명이 모두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도됐다. 따라서 미국이 아무리 수상쩍은 사람의 입국을 차단한다 해도, 입국관리가 허술한 캐나다로 일단 들어온 뒤 육로로 침투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미국인 사이에서 굳어졌다. 9·11 테러범의 캐나다 경유설은 얼마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또 다른 테러범 한 명이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려다 국경 통과소에서 다량의 폭약 원료와 함께 적발돼 미국인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는 총 130여 개소의 국경통과소가 설치돼 있다.

    미국은 최근 캐나다에 ‘북미 공동 입국 심사제’도입을 제의해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제도는 제3국인이 공항과 항만을 통해 캐나다로 입국할 때 캐나다 당국이 미국과 똑같은 기준으로 이들을 심사하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북미에 발을 들인 제3국인은 일단 안전한 인물로 보아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또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이동할 때 지금보다 간단한 국경 통과 절차를 거치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9·11 테러 이후 엄격해진 양국 간 육로 국경 통과소의 부담이 줄어 여행객과 물자 이동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캐나다가 미국 제도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일 뿐 아니라, 캐나다 입출국자 명단 등 관련 정보를 미국에 고스란히 알릴 의무가 생겨 주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 이 논란의 와중에 철조망과 장벽 설치설이 나와 캐나다인들이 더욱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인터넷 댓글 중에 ‘미국의 국토안전을 위해 캐나다가 협조해야 할 의무’대목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국경의 철조망과 장벽 설치 반대론 가운데 양국 간 불신을 조장한다거나,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점보다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은 “철조망과 장벽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을 설치하더라도 꼭 뛰어넘으려는 사람은 못 당하니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5년 국경에 인접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서리 시의 한 주택에서 미국 워싱턴 주로 마리화나를 밀수출하는 110m 길이의 땅굴을 발견하고 범인 3명을 검거한 적도 있다.

    과연 미국은 캐나다와의 국경에 철조망과 장벽을 설치할 것인가. 만약 설치한다면 두고두고 말이 무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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