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7

2011.07.25

30년 똥 박사 “분뇨 정화는 내 운명”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완철 책임연구원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박하정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입력2011-07-25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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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똥 박사 “분뇨 정화는 내 운명”
    “똥으로 실험한다는 게 냄새를 비롯해 힘든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를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힘이 납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실에서 만난 박완철(56) 책임연구원은 그간의 연구과정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똥 박사’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30여 년 동안 사람과 가축의 배설물을 깨끗하게 하는 분뇨 정화 연구에 매달렸다. 최근엔 그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똥 박사 박완철입니다’를 펴내기도 했다.

    처음부터 분뇨 정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1981년 KIST에 들어온 후 환경공학연구실에 배치돼 대기오염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1984년 한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정화조의 필요성을 느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화조를 개발하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분뇨 정화 연구와의 질긴 인연은 시작됐다.

    “다른 연구원은 화학약품으로 만든 인공분뇨로 실험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실험실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냄새가 나더라도 진짜 분뇨로 실험했죠. 누구나 택할 수 있는 쉬운 길보다 고지식하게 가야 할 길을 갔습니다.”

    어린 시절 농잠 전문학교에서의 경험이 훗날 똥 연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일주일에 한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수업 대부분이 농업 이론을 배우고 농사를 실습하는 것으로 짜여 있었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만, 직접 거름을 주고 모내기를 하던 농사 경험을 통해 인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힘든 연구를 하면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그 덕분이죠.”

    묵묵히 연구에 매진했고 그의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기존의 인분 정화조 성능을 개량했으며, 1991년엔 국내 최초로 축산 정화조를 만들어냈다. 당시는 가축 폐수를 정화해 내보낸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였다.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의 성질을 분뇨 정화에 적용하려 한 것. 15년 전부터 그는 미생물이 많다고 알려진 부엽토를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화산재가 있는 곳에 좋은 미생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라산은 물론, 백두산과 일본에 있는 산도 찾았다.

    이렇게 구한 미생물을 분뇨 정화에 직접 사용하려면 덩어리로 만드는 고형화 과정이 필요하다. 날마다 미생물을 정화조에 챙겨 넣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10년에 한 번씩만 정화조에 넣어주면 되는 단단한 미생물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미생물을 큰 덩어리로 만든 후 정화가 필요한 곳에 놓아두면 오랜 기간에 걸쳐 미생물 덩어리가 분해되면서 분뇨를 정화한다.

    그는 퇴직을 5년 정도 앞두고 있다. 남은 기간 “국가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응용과학자로서 실용성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는 분뇨 정화에 미생물을 사용하는 연구를 더 해보고 싶어요. 평생 업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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