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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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대생은 왜 가부키초에 갔나

도쿄 유흥가에서 여름방학 아르바이트…술시중은 기본 웃음 팔고 몸 팔기도

  • 도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07-25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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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대생은 왜 가부키초에 갔나

    가부키초는 다국적 환락가다.

    피부색이 검은 문지기가 서 있다. 바다 건너온 여인이 웃음을 판다. 다국적 환락가다. 스카우토(スカウト)로 일하는 남자가 길 가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 남자는 눈썹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외모가 배우 뺨친다. 스카우토는 업소에서 일할 여자를 길거리에서 픽업하는 일을 한다. 알선료를 챙기고 수익을 여자와 나눠 갖는다.

    네온등이 눈부시게 번쩍인다. 2000개 넘는 유흥업소가 똬리 틀었다. 호객꾼이 취객을 솔깃하게 한다. 한국어로 호객하는 이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국 남자가 “한국 여대생 있어요”라고 말한다. 흑인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낫다. 호기심을 보이면 끈질기게 쫓아온다.

    그가 일하는 구라부(クラブ·club)는 아담하다. 이름이 ‘수지’라고 했다.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로 일본에 왔다. 수지는 도쿄(東京) 가부키초(歌舞伎町)에서 술을 따른다. 기술직 제복을 입은 일본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다. 한국 여자가 마주앉아 술시중을 든다. 남자 태도가 점잖다. 위스키 한 병을 비우고, 와인을 주문한다.

    거리 곳곳에서 한국어로 호객

    수지가 일하는 구라부는 손님이 겸상하지 않는다. 각각 테이블에 손님 1명, 여자 1명이 마주보고 앉는다. 게이샤(藝者) 영화가 떠오른다. 수지는 일본어를 못한다. 일을 시작한 지 1주일 된 초보다. “등록금 벌려고 왔다, 일은 할 만하다”면서 수줍게 웃는다.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구했다.



    카바쿠라(카바레식 클럽)에서도 한국인 여대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 남자 접대부를 고용한 호스트바도 활황이다. 한 재일교포가 인기남(男)은 매출이 중소기업 수준이라고 귀띔한다.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 매년 늘어난다면서 10년 넘게 관광업을 해온 그가 얼굴을 찌푸린다.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땀 흘리고, 국내 혹은 해외에서 봉사하는 게 대학생의 방학생활이라고 여기는 게 밑바닥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른들인가 보다. 이들이 놀라거나 머쓱할 만큼 옳지 않은 일로 용돈 혹은 학비를 마련하는 대학생이 가부키초에 널렸다. 당연히 술 따르는 일을 넘어 몸 파는 사람도 없지 않다.

    수지가 아르바이트하는 구라부는 5만 엔(77만 원)을 받고 2차를 내보낸다. 싫다고 하면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지의 일터 맞은편엔 타이구라부가 터 잡았다. 태국 여자가 술시중 든다. “한국 걸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20대 초반 한국 여자를 찾는 일본인이 늘었다”고 재일교포는 말한다.

    ‘바다’도 수지와 같은 목적, 같은 경로로 일본에 왔다.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요? 말 상대해주는 게 전부예요. 손님 매너도 좋고요. 한국 사람이 찾아오면 살짝 짜증나지만….”

    바다는 가부키초 근처의 신오쿠보(新大久保)에 산다. 숙박료가 저렴한 한국인 민박이 즐비한 곳이다.

    경제학은 성을 팔아 돈을 버는 직업의 국제 이동은 ‘빈국→부국’으로 이뤄진다고 가르친다. 소련 붕괴 후 한국 농촌에 러시아 여자가 흘러들고, 체제 전환 직후 경제 위기를 겪은 체코 여자가 서유럽 유흥가로 몰려들지 않았나.

    러시아 경제가 도약하면서 한국 농촌에서 금발 러시아인이 사라졌다. 체코도 여성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국의 대학생이 외국에서 술을 따르는 것은 난센스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했고 국내총생산(GDP)이 늘었다곤 하지만 ‘경제 시스템에서 뭔가 어긋난 게 있다’는 방증 아닐까.

    한국 여자가 웃음을 파는 곳은 일본뿐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보고서는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나라가 80개국에 달하는 데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 여자 수요가 높아졌다”고 밝힌다. LAPD(로스앤젤레스 경찰)는 “LA에서 체포하는 윤락 여성의 90%가 한국인”이라고 설명한다. “대만은 과거엔 중국 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동유럽 여자가 몰려와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 인기에 편승해 한국 여자가 늘었다”고 국정원 보고서는 덧붙인다.

    과거처럼 음지에서 해외 유흥업소 구인·구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보면 고소득을 미끼로 내건 다음과 같은 광고에 눈이 간다. 구라부에서 일하는 수지와 바다도 비슷한 광고를 읽었을 것이다.

    업종 : 클럽(club), 일본 발음 구라부

    업태 : 카페

    나이 : 20~30세(용모 단정)

    자격 : 초보자 환영, 일본어 능력 무관

    시간 : 오후 7시 반 출근, 새벽 1시 자유 퇴근

    급여 : 하루 2만7000~3만5000엔, 팁은 별도

    운영 : 한국보다 일하기 편함, 한국보다 목돈 모으기 유리함

    특전 : 손님 80%가 상류층

    ‘일본 월 1000만 원’ ‘구라부 월 1000만 원’ 식의 광고가 널렸다. 영어, 일어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미국에 웹 주소지를 두고 북미지역 업소를 알선하는 대형 업체도 나타났다. 구인구직은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처럼 이뤄진다. 한 여자가 보통의 아르바이트 인터넷 사이트에 이력을 올리자 괌에서 답장이 왔다.

    “일자리 구하셨나요? 괌에 위치한 바입니다. 해외라고 하니 의아하시죠? 최장 3개월간 근무할 수 있고, 왕복티켓과 숙식을 제공합니다. 일은 한국 바와 비슷해요. 영업시간은 오후 8시~오전 2시고요. 급여는 월 350만~400만 원입니다. 영어 또한 배울 기회가 되리라 생각해요.”

    한국 여대생은 왜 가부키초에 갔나

    구라부는 일본·서구 문화가 뒤섞인 형태의 술집이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 여성 선호

    방학을 맞아 등록금, 생활비를 벌려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몰려들어 구직난이 심하다. 돈을 많이 준다면 ‘마루타 알바’(임상시험처럼 위험이 따르는 아르바이트)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학생 712명 중 40.6%(남성 57%, 여성 29.2%)가 하겠다고 응답했다[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www. albamon.com) 설문조사].

    2011년 한국 최저임금은 시간당 4320원.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하루에 8시간씩 26일간 아르바이트해봐야 월 89만8560원을 번다. 친구가 인턴으로 출근하거나 공부할 시간에 일하면 경쟁에서 불리하다. 학비를 번다는 명목으로 가부키초에서 일하는 수지의 월수입은 얼마일까. 돈보다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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