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Music | ‘가을방학’ 정바비의 음악세상

오직 음악만이 위안, 새삼스러운 행복

임재범의 ‘여러분’

  • 정바비 julialart@hanmail.net

오직 음악만이 위안, 새삼스러운 행복

오직 음악만이 위안, 새삼스러운 행복
얼마 전 친구가 기르는 고양이가 내 왼쪽 눈을 가격하는 일이 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어릴 적 앓은 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해 의안을 하고 있다는 셰인 요르크가 떠올랐다. 내 목소리는 그만큼 감미롭지 않다는 생각도 스쳤다. ‘돈 노 와이(Don’t Know Why)’를 부르며 욕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니 미량의 혈액이 고여 있었다. 다행히 안구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눈꺼풀 가장자리에 바늘로 찍은 듯한 구멍이 있었다. 고양이 발톱이 감히 내 눈꺼풀에 구멍을 냈단 말인가.

이성을 차리고 찬찬히 보니 오른쪽 눈꺼풀에도 정확히 대칭되는 지점에 똑같은 구멍이 있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나의 누점(淚點), 즉 눈물구멍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작은 구멍을 보며 ‘내가 참 이 녀석을 안 써먹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나라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가 않았다. 그래도 감성적인 음악을 만든다는 평을 듣고 사는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로부터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 눈물구멍에서 대규모 방류가 일어났다. 임재범의 ‘여러분’. 길게 설명할 필요 있을까.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감동을 했든 안 했든, 눈물을 흘렸든 안 흘렸든 변치 않을 것이 있다. 그것은 ‘여러분’이라는 노래와 실제 임재범이 지내온 삶이 참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모든 노래, 모든 아티스트에게 리얼 스토리나 인생 드라마를 강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이 노래 내용 본인 이야기예요?”라는 질문에 “그냥 노래로 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대답한 적도 많다. 꼭 자기가 겪은 일만 노래로 만들고 불러야 한다면 좋은 노래의 개수나 음악이 주는 감동이 지금의 반의반이나 될지 의문스럽다. 훌륭한 예술에서 중요한 건 소재로 삼을 경험보다 오히려 많은 시간과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이 그랬다던가, ‘사랑에 빠진 이는 사랑에 대해 쓰지 못한다’고.

그럼에도 음악이 자신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뮤지션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그때까지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던 소녀가 있었다. 꼬박 1년간 입원하고도 신경손상이 회복되지 않아 단기 기억상실에 시달리던 그는 ‘뮤직 테라피’의 일환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병상에서 녹음한 그의 앨범은 놀랍게도 빌보드 재즈차트 2위에 올랐다. 비극으로 끝날 뻔한 그에게 인생 2막을 열어준 ‘선율’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멜로디 가르도(Melody Gardot)의 얘기다.



임재범 역시 가르도처럼 깊은 좌절, 아픔을 음악과 함께해온 내력이 있다. 그의 첫사랑이자 ‘유일하게 빠져 있던 음악’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저주받은 장르라는 헤비메탈이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부당한 대우도 많이 받았으리라. 무엇보다 가수가 노래만 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우리나라의 척박한 현실에서 그는 꽤 많은 방황을 해야 했다고 들었다.

‘여러분’의 가사처럼 우리는 마음이 외롭고 괴로울 때 음악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는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울적하고 허전한 심정을 이어폰에서 나오던 노래가 달래주던, 그런 기억을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오직 음악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셰인의 의안을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만들어줬고, 가르도에게 새 인생을 찾아줬으며, 임재범에게 수십 수백만의 ‘친구’를 만들어준 그 음악으로 울고 웃을 수 있음이 새삼 행복하다.

오직 음악만이 위안, 새삼스러운 행복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블로컬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주간동아 790호 (p70~70)

정바비 julialart@hanmail.net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07

제 1307호

2021.09.24

“50억 원까지 간다, 한남뉴타운 미래 궁금하면 반포 보라”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