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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흘리고 발 빼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

부산저축은행 수사 ‘물방울 다이아’사실 아냐… ‘중수부 폐지’막으려는 과도한 홍보?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흘리고 발 빼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

흘리고 발 빼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
부산저축은행그룹과 관련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 중수부, 부장 김홍일 검사장)의 금융 비리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검찰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은진수(50)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하면서 판이 커졌다.

검찰은 은 전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창구였던 로비스트 윤여성(56) 씨에게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검사 강도 및 제재 수준을 낮춰달라는 청탁과 함께 7000만 원가량을 받았다고 밝혔다. 은 전 감사위원은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고 구치소로 향했다. 김종창(63) 전 금감원장의 연루 의혹까지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융기관(부산저축은행그룹)과 감독기관(금감원)의 부도덕을 넘어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비화했다.

줄줄이 새나오는 ‘단독 보도’

이번 수사는 3월 15일 검찰이 영업 정지된 5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본격화했다. 저축은행들이 대주주 등에게 불법 대출을 해준 단서가 나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수사 초기만 해도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은 검찰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하나같이 “대검 중수부에 오랫동안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을 맡게 됐다”고 할 만큼 이번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국회에서 중수부 폐지 문제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중수부가 놀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검찰 간부도 있었다.

대검 중수부가 이번 수사를 앞두고 금감원, 예금보험공사와 함께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의 비리를 수사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는 사실도 당시 검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감원 핵심 인사들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로비를 받았고, 이들이 사실상 부산저축은행의 로비스트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 만들 수 없는 팀이었다.



저축은행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먼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거론해온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 문제가 논란거리다. 실제로 올 3월 검찰이 저축은행 수사에 본격 돌입한 이후 검찰의 수사 상황은 언론을 통해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누구를 소환하는지, 피의 사실은 무엇인지가 고스란히 언론에 전해졌다.

은 전 감사위원의 경우 5월 29일 일요일에 검찰이 소환했으나, 이미 사흘 전 ‘조선일보’가 검찰이 은 전 감사위원에게 소환을 통보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사정당국 고위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검찰 내부에선 조선일보가 말하는 ‘관계자’의 실명이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기사를 흘렸다는 얘기였다.

피의 사실이 언론에 줄줄 새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검찰 내에서 커졌다. 금감원 등 권력기관 간부들의 관련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4월 말~5월 초 수사팀 관계자 사이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로 고성이 오가는 논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김홍일 대검 중수부장과 수사팀 책임자가 중수부장실에서 이 문제로 고성이 오가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몇몇 직원과 기자가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를 직접 들었을 정도다. 김 부장은 조용히 수사에만 전념하라는 쪽인 반면, 수사팀 책임자는 어느 정도 (언론에) 흘려야 수사에 도움이 된다는 쪽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고위간부는 “김 부장과 우병우 수사기획관이 피의 사실 공표 문제로 얼굴을 붉힌 일도 있다고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성격이 강해 그런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저축은행 수사에서는 수사 중인 내용이 잘못 흘러나와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은 전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브로커인 윤씨에게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받았다는 ‘중앙일보’ 보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보도 직후 검찰 최고위급 관계자가 직접 나서서 “사실이 아니다. 은 전 감사위원 측에서 문제 삼으면 중앙일보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을 정도. 은 전 감사위원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둔 듯 5월 29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실과 다른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정의감과 공명심 사이?

흘리고 발 빼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

5월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공개된 월인석보 등 보물 18점. 부산저축은행 조사과정에서 검찰이 확보한 것이다.

얼마 전 끝난 한상률 전 국세청장 관련 수사에서도 피의 사실 공표 문제는 논란이 됐다. 한 전 국세청장이 수년간 기업들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수사팀에서 언론에 흘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 저축은행 수사에 묻혀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한 전 국세청장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최근에도 이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국내 최대 편입학원인 김영 편입학원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것과 관련해 같은 의혹이 나왔기 때문.

압수수색 다음 날인 5월 28일 ‘한국일보’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006년 김영 편입학원이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이 업체로부터 10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한 전 국세청장과 관련한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이 이 보도 내용에 대해 아무런 견해를 내놓지 않으면서 잠잠해졌지만, 검찰 내에서는 “수사팀이 또 수사 내용을 흘렸다”는 말이 나왔다.

검찰의 핵심 관계자는 이 보도와 관련해 “보도가 나간 직후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팀 책임자를 불러 강하게 경고했다고 들었다. 수사팀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 영장 청구 사유에 한 전 국세청장 관련 부분을 적시한 일을 두고도 경솔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안다. 한 검사장은 수사팀이 일부러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피의 사실이 공표되면서 문제가 된 사례는 일일이 꼽기 힘들다. 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이어진 태광실업 관련 수사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 환갑 선물로 명품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는 등 수사의 핵심 의혹과 관련 없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와 논란이 됐다. 지난해 초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도 검찰의 수사 상황이 구체적으로 언론에 흘러나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사팀과 지휘부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는 사건이 종종 있는데, 그럴 경우 수사팀은 언론의 힘을 빌려 수사를 밀고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단순한 공명심으로 언론을 활용하는 검사도 일부 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다. 피의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깨지면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을 위해서도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790호 (p34~35)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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