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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지상주의에 ‘SUN’도 훅 갔다

삼성, 선동열 퇴진시키고 류중일 감독 임명 ‘글로벌’ 외치며 대구 ‘순혈주의’로 선회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1등 지상주의에 ‘SUN’도 훅 갔다

2010년 연말과 2011년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군 프로야구 핫이슈는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감독의 전격 해임이었다. 사령탑 초기에 파격적인 5년 계약을 한 뒤, 5년 재계약의 첫해를 보낸 선 감독. 그는 국보로 불렸던 현역 시절 못지않게 지도자로서도 최고 자리에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피하지 못했다. 이는 1등만을 추구하는 삼성그룹의 성적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2010년 최고 인기 말인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라이온즈는 2010년 12월 30일 감독 경질 깜짝 발표를 하며 후임에 류중일 1군 작전코치를 임명했다. 선 전 감독은 발표 하루 전까지 새 시즌 구상에 여념이 없다 날벼락을 맞았지만 구단에서는 ‘용퇴’라 표현했다. 감독 선임과 경질 여부는 전적으로 구단 프런트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아 있지만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경질했다’고 하면 끝이다. 그러나 삼성은 굳이 ‘용퇴’라 표현하며 포장에 열을 올리다 더 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번 감독 경질은 2010년 12월 초 김응룡 전 사장 퇴진과 신임 김인 사장 부임, 곧이어 단행된 단장 교체 등 일련의 구단 고위층 인사와 연장선상에 있다. 저간의 사정을 되돌아보면 선 전 감독은 김인 사장 취임식이 열렸던 14일을 전후로 자신의 진로에 대한 언질을 받고 ‘구단 뜻이 그렇다면 물러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스승인 김응룡 전 사장에게 미리 전화를 건 것도 이때쯤이다. 그러나 구단 수뇌부의 통보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선 전 감독은 그냥 유임되는 줄 알고 새 시즌을 준비하다 ‘해고 통보’를 받았다. 12월 30일 오전 이수빈 구단주와 김인 사장, 송삼봉 단장과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경질을 용퇴로 포장한 삼성

통상적으로 감독이 자진 사퇴할 경우, 구단은 잔여 연봉(선 전 감독의 경우 4년간 15억2000만 원)에 대한 지급 의무를 갖지 않는다. 반면 해고 등 계약 해지는 구단이 나머지 연봉을 지급하는 게 관례다. 구단 표현대로 ‘스스로 퇴진을 결정’했다면 삼성은 선 전 감독에게 잔여 연봉을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라이온즈는 선 전 감독의 잔여 연봉을 보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선 전 감독은 경질된 후 구단운영위원이란 새 직함을 얻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나머지 연봉을 챙겨줄 것이란 게 구단 안팎의 예상이다. 경질을 용퇴로 포장한 일종의 대가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 전 감독은 재임 6년 동안 한국시리즈 2연패와 2010시즌 준우승 등을 이뤄 성적으로 보면 바뀔 이유가 전혀 없다. 6년 중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건 단 한 번(2009년)이다. 큰 오점 없이 팀을 훌륭히 이끌던 선 전 감독의 경질은 4전 전패로 물러난 지난 한국시리즈 결과가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하고도 옷을 벗은 경우는 선 전 감독을 포함해 모두 6번 있었는데 그중 4번이 삼성에서 있었다. ‘1등 지상주의’ 삼성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번 선 전 감독 경질이 신임 김 사장 단독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야구단에 처음 온 사장이 라이온즈 감독을 쉽게 자를 수 있는 역학구도가 아니다. 야구단 감독은 ‘오너 결심’에 달려 있는 자리라는 통설을 적용하면 더 그렇다. 김 사장은 부임 초기부터 ‘선동열 경질’이란 임무를 안고 야구단에 발을 디뎠다고 봐야 한다. SK에 4전 전패로 물러난 지난 한국시리즈 때 삼성그룹 최고위층이 분노했고, 이런 분위기가 끝내 사장, 단장에 이은 감독 교체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결국 그룹 오너 일가의 작품인 셈이다.

1등 지상주의에 ‘SUN’도 훅 갔다

선동열 전 감독은 SK와 맞붙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패퇴한 데다, 든든한 버팀목인 김응룡 전 사장과 김재하 전 단장이 동반 퇴진한 뒤 무언의 사퇴 압력을 받다 결국 옷을 벗었다.

누구보다 무거운 짐 진 류 감독

삼성은 1982년 원년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라이온즈 역사는 김응룡-선동열 체제 이전과 이후,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2000년까지가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말라 몸부림을 치다 좌절로 점철된 시기였다면, 2001년 이후는 김응룡 감독 취임과 함께 융성과 안정을 이룬 시기다. 그 ‘번영의 10년’을 이끈 주역이 김 전 사장과 선 전 감독이지만 이번에 동반 철퇴를 맞았다.

선 전 감독은 2004년 삼성의 투수 운용 전권을 갖는 수석코치로 영입됐고, 한국시리즈 준우승 직후 김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전격적으로 감독으로 등용됐다. 파격적인 5년 계약이었다. 초보 감독 딱지를 무색하게 2005년부터 2년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선 전 감독은 2007년과 2008년 연속 4위, 2009년 5위에 그쳐 시련을 맞기도 했으나 2010년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중에도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의미 있는 실적을 올렸다. 삼성은 이에 앞선 2009년, 시즌 중 5년 재계약을 제의해 선 전 감독의 10년 집권을 약속하는 파격을 또 한 번 감행했다.

그러나 김응룡-선동열의 동반 퇴진으로 삼성 야구단은 다시 현장에서 프런트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라이온즈는 ‘김응룡-선동열 라인’이 출범하기 전까지 일부 사장이 현장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불협화음을 냈다. 돈을 쏟아부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대업을 이루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유일한 곳이 야구단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그때였다.

2000년 말 ‘영원한 해태 사령탑’일 줄 알았던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며 ‘지역 감정’의 벽을 과감히 깼고, ‘성과 제일주의를 앞세우는 초일류 기업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삼성이 그토록 원했던 한국시리즈 우승 3차례는 모두 김응룡-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삼성은 10년 만에 김인 사장(대구고)-송삼봉 단장(대구 중앙상고)-류중일 감독(경북고) 모두를 특정 지역 출신으로 채우는 ‘순혈주의’로 회귀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임하는 삼성이 유독 라이온즈 경영에서는 ‘글로벌’이 아닌 ‘대구’에 목을 맨다는 비웃음을 받고 있다.

이번 선 전 감독 경질로 라이온즈 지휘봉을 새롭게 잡은 류중일 감독은 누구보다도 무거운 짐을 진 채 팀을 시작해야 하는 불운을 맞았다. 류 감독은 구단 역사상 첫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사령탑이다. 경북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 유격수로 활약했고, 한양대 소속으로 19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로도 뛴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1987년 1차 지명으로 고향팀 삼성에 입단했다. 이후 24년간 줄곧 삼성맨으로 활약하며 ‘푸른 피의 사나이’로 불렸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나면 언젠가 그가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가 감독이 될 것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임 류 감독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가 태생적으로 안게 될 부담감이 너무 큰 탓이다. 선동열이란 ‘훌륭한 카드’를 버리고 구단이 새롭게 운명을 맡긴 그다. 만약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둘 경우 그의 실패는 류중일만의 아픔이 아니라 라이온즈, 나아가 삼성그룹에 치명적 상처를 안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주간동아 770호 (p66~67)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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