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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공부하는 술’이 맛있을 턱이 있나

멋대로 와인 마시기

‘공부하는 술’이 맛있을 턱이 있나

‘공부하는 술’이 맛있을 턱이 있나

와인도 각자 기호에 따라 선호가 달라지는 술의 한 종류다.

와인은 술이다. 술이 인간에게 주는 이점은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알코올로 인해 뇌의 일부가 마비돼 몽롱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소주도 술이다. 와인이나 소주나 인간을 기분 좋게 하는 알코올이 들어 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라며 와인과 소주를 같은 위치에 놓고 언설을 구사했다가는 비문명인 소리 듣기 쉽다.

와인에는 알코올 외에 잡다한 스토리가 덧붙어 있다. 와인 생산지의 역사와 토양의 특성, 기후에서부터 포도의 품종, 생산연도의 작황은 물론 서리 내린 후 따는지 등의 수확 방법, 껍질을 까는지, 씨앗을 제거하는지, 어떤 발효통을 쓰는지 등이 우선 거론된다. 또 발효 방법,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병 모양의 이유, AOC 등 라벨에 붙은 정보를 읽는 법, 와인 전문가의 평가 등이 추가되는데 여기까지는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스토리다.

와인을 마실 때 또 대하소설 한 편 정도의 스토리를 읊어야 한다. 와인의 맛 요소와 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와인 색상에 대한 미학적 고찰도 따라야 한다. 와인과 공기를 소통하게 하는 디캔팅이며, 와인을 잔에 따르고 살살 돌려 향을 배가시키는 법, 그리고 그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까지 스토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적어도 와인을 안다는 건, 와인의 맛이 아니라 와인에 담긴 스토리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와인은 ‘즐기는 술’이 아니라 ‘공부하는 술’로 여겨지며, 학력고사 문제처럼 쳐다보기 껄끄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와인을 겁내지 않고 마시는 법이다. 먼저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는 방법이다. 이 정도 정보는 일일이 외울 필요가 없다. 와인가게에 가면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 대한 정보를 다 알려준다. 그러니 이런 정보를 모르는 점원이 있다 싶으면 다른 가게로 가라. 일반인은 몰라도 와인가게 점원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초보자를 위한 와인 상식이다. 와인은 평생 마셔도 다 맛보지 못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와인 맛에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꼭 알아야 한다. 특히 프랑스 와인의 지리적 표시인 AOC를 두고 ‘최상급 프랑스 와인에 대한 표시’인 것으로 잘못 말하고 있다. AOC는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특정 와인에 대한 생산 통제로, 다른 지역의 와인과 ‘차별화’된 맛을 낸다는 뜻이지 최상의 맛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니 그날 사서 마시게 되는 와인에 대해서만 와인가게 점원에게 설명 듣고, 맛있으면 기억하고 맛없으면 잊으면 된다.

세 번째,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 종류에 대한 것이다. 주변에서 각종 모임이 있을 때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와인가게에 전화를 걸어 와인 종류와 가격 리스트를 e메일로 받는다. 세 군데 정도의 리스트만 받아도 가장 저렴한 가격대의 와인을 손에 쥘 수 있다. ‘질 좋은’ 와인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각자의 기호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필자는 와인을 마실 때 곧잘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민족이 아무리 와인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와인 맛에 대해 프랑스인처럼 민감해질 수 있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끼니마다 와인을 마신다. 그러니 와인 맛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각도 훈련하기 나름이다. 그들의 와인에 대한 미각을 우리가 가끔씩 훈련한다고 해서 쫓아갈 수 있을까. 뒤집어, 김치 맛에 대해 그들이 우리만큼 민감해질 수 있을까. 김치는 재료와 발효 정도, 저장에 따라 맛이 수천 수만, 아니 김치 담그는 사람 수만큼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양한 김치의 맛을 프랑스 사람이 훈련한다고 해서 구별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와인은 술일 뿐이고, 즐기라고 마시는 것일 뿐이고, 와인 공부는 심심하면 하면 될 뿐이고!



주간동아 2010.07.19 746호 (p84~84)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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