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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記·충·천

한 손에는 ‘아이폰’ 한 손에는 ‘논어’

  •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 손에는 ‘아이폰’ 한 손에는 ‘논어’

“우산 없으시죠? 사은품으로 받은 건데 이거 쓰세요. 저희 학교 손님이신 것 같아서요.”

3월5일 밤 10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균관대 캠퍼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니 눈바람에 눈앞이 흐렸습니다. 덜렁대느라 우산도 사무실에 놓고 온 상황. 어둠 속에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그런 와중에 만난 ‘훈남’의 호의는 마른땅에 단비 같았습니다. ‘사은품’을 강조한 대목에서 드러난 마음 씀씀이가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신입생이라는 그는 “강의실에서 취재하는 모습을 보고 손님인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유학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겸 전철역까지 가는 학교버스에 나란히 올랐습니다. 몇 차례 질문이 오가던 중 알아낸 그의 정체는 의외였습니다. 공대를 나와 낮에는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IT맨. 이어지는 설명은 더 흥미로웠습니다.

“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저희 충렬공 할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커요. 아버지는 충렬공 13대 종손이고 저는 차종손인데, 충렬공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저도 가학으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는 ‘종손’ ‘차종손’ ‘가학’ 등 서울에 사는 IT맨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쏟아냈습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유학도 공부하고 있다. 유학은 고루하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달라”는 당부도 수차례 거듭했습니다.



한 손에는 ‘아이폰’ 한 손에는 ‘논어’
중학생 시절 족보를 따져 묻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질문에 멍한 얼굴을 하거나 똑 부러지는 대답을 못하면 다짜고짜 화부터 내셨죠. 그때는 “족보로 차별하는 이상한 수학”이라고 수군댔지만, 선생님은 속으로 이렇게 혀를 찼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를 모르고, 조부를 모르고 너를 알 것 같으냐, 쯧쯧.”

지난 며칠 귀동냥한 유학의 핵심은 ‘인(仁)’이고, ‘인’은 ‘효(孝)’에서 출발합니다.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라는 인의 가치는 부모의 마음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데서 시작한다는 거죠. 멋진 유학 청년 덕분에 새삼 ‘효’를 생각해봅니다.



주간동아 2010.03.23 728호 (p14~14)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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