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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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진설계 어긴 아파트 ‘충격과 공포’

서울 일부 구청 불법허가 후 주민들에 공급 … 그나마 관련법 이전 건물은 지진에 무방비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3-17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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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진설계 어긴 아파트 ‘충격과 공포’

    하늘에서 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들. 과연 이중 내진설계가 제대로 된 곳이 얼마나 될까?

    세계 각국에서 대규모 지진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서울시내 각 구청이 내진설계를 하지 않은 아파트에 대해 건축허가와 사용승인을 불법적으로 내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욱이 내진설계 관련법이 정비되기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와 학교는 지진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내진 보수보강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물을 신축할 때 내진설계를 하도록 법규가 정비된 시점은 1988년. 국회와 정부는 그해 2월, 6층 이상 건물의 내진설계 의무화를 골자로 한 건축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이 법에 따르면 1988년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 중 6~15층 건축물은 지진에 대한 안전 여부를 확인받아야 하고, 16층 이상이거나 경간(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이 30m 이상인 건축물은 건축구조기술사의 내진설계 뒤 건축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법은 2005년 7월 3~5층 건축물은 안전 확인, 6층 이상 건축물은 건축구조기술사의 내진설계를 받아야 시공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개정됐다. 법이 더욱 엄격해지고 강화된 셈. 따라서 1988년 2월 이후에 건축허가를 받은 16층 이상 아파트나 2005년 7월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6층 이상 아파트는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를 구청 등 관련기관에 제출해야 하고, 건축허가가 떨어지면 그 내진설계도에 맞게 내진시공을 하고 구청으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완료돼야 실제 주민들에게 아파트가 공급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간동아’가 단독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에서 1993년부터 1999년 사이 준공된 16층 이상 아파트 단지 중 13개와 1994년 준공된 성북구 아파트 단지 2개가 내진설계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법 시행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 더 큰 문제는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아파트에 각 구청이 건축허가를 내주고 사용승인을 했다는 점이다. 각 아파트 입주민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10년 넘게 그곳에 살고 있다.

    건축법 시행령 정면으로 위반



    이 자료를 만든 서울시 주택과는 “각 구청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취합해 서울시의회에 제출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면서 “자세한 사항을 알려면 구청에서 확인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법령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서울시의회에 자료를 제출하기 전 자체 감사에 나서 조사를 벌이고, 법령위반 확인 시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

    자료를 만든 구청 관계자 역시 변명으로 일관했다. 동작구청 담당자는 조사 방법, 원본 자료 등을 밝히길 거부했고 “오래돼 자료가 없다” “담당자가 바뀌어 모르겠다” 등의 대답만 되풀이했다. 서울시 주택과에 자료를 보낸 구청 직원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다”며 다른 부서에 책임을 돌렸다.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구청이 요청해 건축도면, 구조계산서 등을 제출한 적은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다”고 발뺌했다.

    내진설계 어긴 아파트 ‘충격과 공포’
    한편 내진설계에 대한 법 규정이 생긴 1988년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아 준공된 전체 568단지 중 내진설계가 전혀 안 된 곳은 총 411단지(67%)에 달했다. 1992년 이후에 지어졌지만 15층 이하라는 이유로 내진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아파트 단지도 61개(2.3%)에 달했다. 법 기준에서 몇 개 층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진설계를 회피한 것. 이들은 2005년 개정된 법에 따르면 반드시 내진설계가 돼야 시공이 가능한 아파트이나 현재까지 내진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이문곤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층수로 내진설계를 하라 마라 정하진 않는다. 현재 내진 관련법의 내용은 ‘지진이 오면 다 죽을 수도 있는데 법만 지키면 괜찮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실제 이 말은 사실로 확인됐다.

    “내진설계가 안 됐다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티 지진 직후인 2010년 1월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노원구청이 벌인 내진실태 현장조사 결과에 구청 직원들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1988년 내진 관련 법조항이 만들어지기 전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채 건축허가를 받은 서울 노원구 A아파트(15층)가 이번 조사에서 “지진에 대한 구조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 실태조사 결과 이 아파트는 지진이 왔을 때 흔들렸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기준치보다 5배 넘게 걸렸고, 기울어짐도 기준치보다 심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건물의 기초를 받치는 기둥 역시 견뎌내는 힘(耐力)이 부족해 지진이 발생했을 때 부분적으로 바닥이 꺼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조사를 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구청에선 “정밀 안전진단을 한 뒤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부산을 피우고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실태 파악도 안 된 곳은 A아파트만이 아니다. 그나마 아이티 지진이 없었다면 이런 현장조사도 없었을 것.

    예산 부족 핑계로 학교 내진보수 全無

    이런 건물이 버젓이 서울 시내에 서 있는 것은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이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1988년도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모든 건축물이나 2005년 이전에 허가를 받은 15층 이하 건축물은 법 제정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아 내진설계 의무 범위에서 벗어났다. 이문곤 회장은 “지진이 1988년 이전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은 피해가고 1988년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에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법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했다.

    한편 이 단체의 박정민 총무단장도 “일본의 경우 건축기준이 강화되면 기존 건물도 강화된 기준에 맞게 보수·보강을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1988년 개정 당시 6~15층 건축물, 2005년 개정 당시 3~5층 건축물은 설계 단계에서 지진에 대한 안전 여부를 확인받도록 했지만, 정작 누구에게 어떻게 받을지를 특정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

    각종 재난재해 발생 때 대피소 기능을 해야 할 각급 학교의 내진 수준도 한심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학교의 건축물 2544동 중 91%(2315동)가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상태. 내진설계가 된 9%의 학교는 대부분 법이 강화된 2005년 이후에 건축허가를 받은 곳이다. 단국대 건축공학과 이상현 교수는 “예전에는 학교 건물에 특별히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대부분의 학교가 저층으로 지어져 법의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교육시설과 관계자는 “수치는 높지만 법을 위반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축하거나 증·개축하는 전국 모든 학교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겠다는 게 그 골자. 하지만 담당 부처 관계자들은 “예산 문제 때문에 시행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실제 2010년 교과부는 학교 건물 내진설계와 관련한 예산은 책정하지 않았다. 교과부 교육시설지원팀 관계자는 “2010년 예산 책정 시 내진 관련 특별교부금을 신청했으나 채택이 안 됐다. 내년에는 반드시 예산을 책정하려 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 관련 공사비는 시·도교육청이 지방 재정을 통해 자체 조달해야 한다”며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겼다. 이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이 없어 법을 따르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교과부와 교육청의 떠넘기기에 피해를 받는 건 내진설계가 안 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뿐이다.

    전문가들은 내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층수와 관계없이 모든 건물에 내진설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부처끼리도 이에 대한 교통정리가 안 된 상황이다. 소방방재청은 1월 아이티 지진을 계기로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를 필수화하겠다’는 내용의 지진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내진설계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모든 건물의 내진 설계 의무화는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저 지진이 안 오기를 빌 수밖에…”

    국토해양부는 △공사비가 더 비싸질 가능성이 있고 △행정인력이 제한돼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 여부를 점검하기 어려우며 △국내 건축구조기술사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박정민 총무단장은 “국토해양부는 내진설계를 전 층으로 확대하면 공사비가 현재보다 5% 더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는 부풀린 수치고 아무리 늘어도 2% 수준이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인데 그 정도도 감수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내진설계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지어진 건물의 경우 재건축 연한을 앞당겨 해결하자는 방안도 제기된다. 현행법을 따르면 5층 이상 건물의 경우 1981년 12월31일 이전에 준공된 건축물은 20년, 그 후 지어진 것은 준공이 한 해 늦어질 때마다 2년씩 추가하는 만큼을 기다려야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받을 수 있다. 앞서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노원구 A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안전진단을 받으려면 앞으로도 1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형편. 서울시의회 부두완 의원(노원구)은 “재건축 연한을 앞당겨 재건축을 하는 동시에 내진보강도 하도록 재건축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3월9일 충남 태안에 규모 3.2 지진이 일어난 것까지 올해 들어 12번의 지진이 있었다. 1978년 지진 계측 이후 규모 5.0 이상 지진이 5회 있었고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기록물을 보면 지속적으로 규모 6.0 이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국내에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문곤 회장은 “현재 건물 내진 상태로 서울에 아이티나 칠레 같은 지진이 발생하면 대책 없이 무너진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지진이 안 일어나길 바라는 수밖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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