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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관객이 감성 채우고 공감하는 ‘빈틈 연기’ 더 추구할래요”

‘공기인형’으로 일본에서 여우주연상 3관왕 차지한 배우 배두나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관객이 감성 채우고 공감하는 ‘빈틈 연기’ 더 추구할래요”

  • 나도 고양이처럼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데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외로워 죽겠는데 내색하는 법을 모르겠고 그래서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고 가슴이 아파도 안 아픈 척 씩씩한 척한다. 눈빛이 날카롭고 발톱이 뾰족하다고 해서 고양이가 다 사나운 것이 아닌 것처럼. 나도 그렇다. -‘두나's 도쿄놀이’ 중에서
“관객이 감성 채우고 공감하는 ‘빈틈 연기’ 더 추구할래요”
만나기 어려울수록 오기가 났다. 몇 차례의 인터뷰 요청에도 배두나는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촬영 때문에 도저히 짬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방법은 하나. 무작정 KBS 수원드라마센터로 향했다.

촬영현장으로 가면서 배두나의 매력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의 연기력은 일본에서도 인정했다. 2006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 린다 린다’에 이어 2009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에도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특히 ‘공기인형’으로 제33회 일본아카데미와 제23회 다카사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19회 도쿄스포츠영화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배두나에 대한 평론가들의 시선도 한결같이 호의적이다.

“일본어로 ‘가와이(可愛い)’는 예쁘면서도 개성 있다는 뜻인데, 배두나는 ‘가와이’ 자체다. 공주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미지의 중간에 자리해 남다른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인지, 작가주의 감독들이 좋아한다.”(동국대 영상대학원 정수완 교수) “한국 영화계에는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배우들이 꽤 있는데 배두나는 내면 연기를 통해 독특한 개성을 잘 표현한다. 다면적 갈등을 표현해낼 수 있는 외모를 가졌지만, 한국에서는 여자가 리딩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했다.”(영화평론가 강유정) “배두나는 감정을 ‘거두어 간 채’ 연기하는 배우다. 감정 없이 연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배두나는 ‘타자’(소외자)로 많이 등장하는데, 그 덕에 관객은 자신과 쉽게 동일시할 수 있다.”(영화평론가 심영섭)

5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짬이 났다. 밤을 새운 드라마 촬영은 그렇게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감정 절제 연기 어려웠어요”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으로 아파트관리소 경리 일을 보던 배두나를 연상했던 탓인지 눈앞에 그가 나타나는 순간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델 같은 몸매, 인형 같은 얼굴이라는 상투적인 표현도 어쩔 수 없이 써야겠다.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자분자분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린 뒤 먼저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아 내용이 궁금한 영화 ‘공기인형’에 대해 물었다.

“인형이 인간의 속성인 감정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예요. 제가 인형으로 나오는 거죠. 어찌나 몸과 마음을 쓰면서 연기했는지 한동안 연기하기가 싫었어요. 제 안에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거든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못 해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제 한계고,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내면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 그에게도 ‘공기인형’에서의 감정 절제 연기는 쉽지 않았다.

“마음을 가진 인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형이기 때문에 표현을 덜할 수밖에 없었어요. 감정이 200%라면 50% 정도만 표현해야 하는 거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그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이 괴로웠어요. 슬퍼도 울 수 없으니….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참았던 울음을 토해낼 수 있었죠. 인형의 마음을 연기하기 위해 마음 자체를 순수하게 먹으니 감정에 따른 충격을 크게 받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도 눈물 연기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마음이 100%라면 표현은 반 정도만 해왔거든요. 열연(熱演)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표현하지 않은 나머지 감정을 관객들이 상상하고, 본인의 감성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빈틈 연기’라고 할 수 있죠.(웃음) 건방진 말일 수도 있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저에게 맞는 이유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눈동작, 몸동작만으로 관객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허함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배우

“관객이 감성 채우고 공감하는 ‘빈틈 연기’ 더 추구할래요”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고레에다 감독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처음부터 배두나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공기인형’이라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 영화는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그려온 감독의 특징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두나 또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서 고레에다 감독에게 호감을 느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영화예요. 배우들이 감정을 마구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기해, 관객이 저절로 감동하게 되잖아요.”

‘공기인형’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형처럼 공허함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감정 채우기와 비우기를 반복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공기인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의 옷을 입으면 금방 그 역할에 몰두하게 돼요. 저는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 연기하거든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을 존중해요. 그런데도 감독님에게 영감을 받은 대로 연기하다 보면 허망할 때가 많아요.”

허망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수동적인 배우라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 터. 오히려 그는 수동적인 척 연기하는 명민한 배우로 보였다.

“어떤 설정을 해놓고 연기하지는 않지만, 촬영장에 오면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요.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영감을 받은 대로 연기하려고요. 물론 감독님의 지시에 따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제 의견을 내지는 않아요. 그래도 연습 때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살짝살짝 보여주곤 해요. 여우같죠.(웃음) 봉(준호) 감독님은 이런 면에서 센스가 있는데, 제가 접히는 것처럼 앉거나 라면 한 가닥 흘러나오게 먹으면 ‘그거 좋겠다’면서 영화에 넣곤 해요. 고레에다 감독님도 낙서하는 제 모습을 보고 말을 배워가는 공기인형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보자고 했어요. 하지만 이걸 간파하지 못하는 감독님들도 있는데, 그럼 그냥 감독님들이 원하는 대로 해요. 그래서 박(찬욱) 감독님이 언젠가 저에게 뭘 시켜도 고정관념 없는 배우라고 말했을 거예요. 작품을 위해 노출신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열심히 하죠. 시나리오 고르는 게 까다로워서 그렇지, 일단 찍기로 결정하면 정말 열심히 해요.”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관객이 감성 채우고 공감하는 ‘빈틈 연기’ 더 추구할래요”

일본 배우들의 근성에 자극받아 6개월간 활쏘기를 연습하며 영화 ‘괴물’의 양궁선수 역을 소화했다.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이 연기력의 발판이듯, 실제로 그는 뭐 하나에 빠지면 그것밖에 안 본다. 그가 배우라는 이름 말고도 사진작가, 여행가, 작가로 불리는 이유도 그런 집착 때문일 것이다.

‘공부의 신’에서 정은 많지만 실력 없는 한수정 선생님을 연기하는 그에게, 한수정 가슴에 비수로 꽂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아니란 사실을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알게 됐어요. 머리 싸매면서 한 것보다 오히려 마음 편하게 연기한 것이 보는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줄 때가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절대로 대충은 안 해요. 뭐랄까, 살아가는 데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를 촬영할 땐 연기를 위해 열심히 악기를 배우는 배우들의 근성에 자극받아, 6개월간 활을 쏘며 영화 ‘괴물’의 양궁선수 역을 준비했다는 배두나. 그는 이번 영화 ‘공기인형’을 만들면서도 배울 점을 찾았다. 오다기리 조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주연만 고집하지 않고 조연을 맡았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자신도 역의 비중에 관계없이 열중하겠다고 다짐한 것.

‘백현이 뛰쳐나가는 신’을 찍으러 급하게 다시 촬영세트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에게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촬영 때문에 피곤하다며 팔을 베고 눕는 시늉을 하던 그가 고개를 들더니 또랑또랑한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저요?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아요. 이렇게 가야지 하는 생각보다 현재의 선택을 신중히 해왔을 뿐이에요. 작품 고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그래서죠. 엄마는 어떻게 배우가 하고 싶은 연기만 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래요. 순간순간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드라마도 하고 싶은 거, 찍으면서 제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을 해요. 드라마에서까지 마니아다운 걸 하고 싶진 않아요.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드라마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시청자와 소통하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드라마도 좋아해요. 드라마는 영화를 하다가도 언제든 또 하고 싶은 장르거든요. 영화요? 물론 저에게 영화만 한 건 없죠.”



주간동아 2010.03.02 725호 (p60~62)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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