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5

2009.12.15

마음은 백만불 거래, 情은 덤 그래서 물물교환이 좋다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2-10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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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백만불 거래, 情은 덤 그래서 물물교환이 좋다

    1 굴이 익으면 껍데기가 벌어진다.

    문밖에서 누군가 외친다.

    “다시마 사려! 미역 사려!”

    이제는 안 내다봐도 그이가 누구인지 안다. 우리와 한 마을에 살다가 몇 해 전 저 멀리 진도로 이사를 간 이웃이다. 진도 이웃은 해마다 김장 때면 자기네 고장에서 난 해산물을 가지고 여기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는 물건을 늘어놓는다. 처음엔 미역이나 다시마를 조금 가져오더니 이제는 종류도 많고 양도 늘어났다. 올해는 1t 트럭 가득이다. 가장 많은 게 소금. 그리고 미역 다시마 김 굴. 해조류는 말린 것이고, 굴은 껍데기째 가져온 생굴이다. 다시마와 미역은 말 그대로 자연산이라 모양이 제멋대로다.

    사람 중심의 행위, 따뜻한 교감

    우리는 소금 등을 필요한 만큼 산다. 그런데 이 이웃은 다시마는 자기가 손수 볕에 널어 말린 거니 돈 대신 물물교환을 하잔다. 우리더러는 고추장을 달란다. 그거야 반갑고도 고마운 소리. 저녁에는 여러 이웃이 한자리에 모여 진도에서 가져온 굴로 굴 구이를 해먹으면서 밀린 회포를 풀었다.



    물물교환이라. 옛날에는 물물교환이 아주 절실했다. 이를테면 자신이 생산한 쌀을 내놓고, 생산할 수 없는 소금을 얻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현대사회는 시장이 발달해 굳이 물건을 나누는 번거로움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바닷가 소금도 택배로 주문을 하면 아무리 늦어도 이틀이면 집에 도착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어떤 소외감 같은 걸 느낀다. 돈의 위력 앞에 사람이 아주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돈은 모든 걸 너무 쉽게 처리한다. 스스로 물건을 생산하다 보면 그 물건을 만드는 동안 들인 공이라든지 정성이 그냥 돈에 휩쓸려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물건에 대한 작은 흠도 용서하지 않는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짓다 보면 벌레가 먹거나 모양이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특히 뿌리 식품의 생김새는 변화무쌍하다. 당근 고구마 도라지를 캐보면 온갖 모양이 다 나온다. 흥에 겨워 춤추는 듯한 도라지가 있고 외계인 같은 고구마가 있으며, 벌거벗은 남자 모양의 당근도 있다. 이를 캐는 순간, 흥미롭기도 하고 삶의 신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하다 보면 그 감흥을 누리기가 어렵다. 상품화는 균일한 모양을 따르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소비자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됐다고 닦달을 받는 아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가끔은 마음을 나누고 싶고,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은 반작용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물물교환은 잊어버린 마음을 되살려준다.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안감 대신 나를 알아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뭐든 하나를 만들자면 거기에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따른다. 해본 사람은 안다. 농산물에 흠이 있는 게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물건을 나누기 전에 이렇게 마음이 먼저 오고간다.

    마음은 백만불 거래, 情은 덤 그래서 물물교환이 좋다

    2 외계인 같은 고구마. 삶은 신비롭지만 생산물을 상품화할 때는 가끔 상처가 되기도 한다. 3 이상야릇하게 생긴 당근. 팔 수는 없지만 혼자 보기 아깝다. 4 이웃이 만든 천연비누. 쓸 때마다 그 삶을 음미한다. 5 제주 이웃이 내는 가족신문. 물건보다 마음이 먼저 오고간다.

    함께하되 자유로운 관계를

    그동안 많은 사람과 이런저런 물물교환을 했다. 여기 이웃들과는 교환이 조금 잦은 편이다. 늙은 호박을 얻었으니, 그 집에 없는 야콘을 드렸다. 또 빵을 잘 굽는 이웃이 있어, 우리한테 넉넉한 쌀을 드리고 빵을 가져다 먹곤 했다. 택배와 통신이 발달하면서 물건을 나누는 영역도 아주 넓어졌다. 상주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이웃과는 물물교환하고 지낸 지가 얼추 10년이 돼간다. 물건을 나눌 뿐 아니라 가끔은 삶을 시시콜콜 나누기도 한다. 이 집에서 준 포도를 과일 자체로 먹는다면 한 달도 안 돼 없어진다. 하지만 그 일부로 식초를 담그니 1년가량 먹는다. 이러다 보면 먼 이웃이지만 늘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안으로 귀농한 또 다른 이웃은 틈틈이 천연비누를 만든다. 우리네 농산물과 비누를 바꾸기로 했다. 택배로 온 비누 상자를 받자 향기가 진동한다. 상자를 뜯자 간단한 선물과 쪽지도 들어 있다. 설명을 보니 ‘화학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천연오일로 만들어 한 달 넘게 숙성시킨 비누’란다. 나로서는 이런 설명이 없더라도 사람을 믿는다. 믿음이 있기에 물물교환을 하고, 그 교환으로 믿음은 더욱 커진다. 비누를 쓸 때마다 이웃이 떠오른다.

    물물교환은 정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도 한 이웃은 가족신문을 낸다. 이 집 역시 아이 셋 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과는 자연스럽게 가까운 이웃으로 지낸다. 이 집 신문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신문과 달리 우리 네 식구 모두 기다리는 신문이다. 이 집은 자기네 가족신문을 아무 대가 없이 보내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받기만 하기가 미안했다. 제주도는 쌀이 귀한 곳. 쌀 조금이랑 우리가 낸 책을 보냈다. 이 정도는 물물교환이라기보다 정을 나눈다는 말이 좋겠다.

    도시 이웃들과도 물물교환이 가끔 이뤄진다. 아내가 도시 이웃에게 청소년이 입을 헌 옷을 부탁하자 택배로 두 상자나 왔다. 우리 역시 고마운 마음에 농산물 중 이것저것을 싸서 보냈다. 또한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들고 오는 물건은 밥값 또는 하룻밤 잠값이 되곤 한다.

    이렇게 물건을 주고받고 마음을 나누면서 자급자족을 더 넓게 돌아본다. 바로 사람관계의 자급자족이다. 이웃 마음과 내 마음이 똑같이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물물교환을 처음 할 때는 내가 더 많이 준다고 서운한 부분도 있었지만 요즘은 과분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이웃과 함께하되 서로 자유로운 관계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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