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1

2009.11.17

‘로맨틱 거리’에 서면 사랑이 스며든다

이탈리아 낭만여행

  • 채지형 여행작가 www.traveldesigner.co.kr

    입력2009-11-13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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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 거리’에 서면 사랑이 스며든다

    <B>1</B>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 <B>2</B>‘줄리엣의 집’ 입구 벽에 붙어 있는 사랑의 기원을 적은 종이.

    가을이 되면 사랑이 그립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의 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무작정 옆에 있는 이의 따스한 손을 잡고 싶다. 밤이 되면 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잠을 설치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커플들이 우르르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것도 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워서가 아닐까.

    사랑을 만났든 만나지 못했든, 사랑을 찾고 싶다면 이탈리아로 떠나자. 특히 베로나와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여행은 가슴을 촉촉이 적셔줄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로맨틱 루트다. 따뜻한 이탈리아 햇살 아래를 거닐다 보면 커플들의 마음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홀로 걷는 여행자라면 운명의 연인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의 징표가 넘쳐나는 ‘줄리엣의 집’

    이탈리아의 낭만도시 베로나를 부를 때는 앞에 ‘벨라’(bella·아름다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싶다. 그냥 ‘베로나’가 아니라 ‘벨라 베로나’(아름다운 베로나)라고 부르는 것이 베로나를 향한 나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 듯하기 때문이다. 베로나는 베네토 주의 중심도시 베네치아에서 400km 떨어진 곳으로 로마와 중세 베로나 왕국, 르네상스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특유의 편안함을 품고 있다. 거리의 오래된 건물들은 여행자를 한없이 여유롭게 만든다.

    아기자기한 골목들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소도시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어슬렁거리면서 베로나를 산책하다 보면 ‘아, 참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려한 곡선으로 베로나를 흐르는 아디제 강, 동화 속에 나오는 붉은 지붕의 집들, 도심을 둘러싼 성곽, 울창한 나무들, 아날로그 감성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베로나만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베로나가 낭만도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때문이다.



    베로나는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으로,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Casa di Guilietta)’이 있다. 줄리엣이 실제 살았을 리 만무하지만, 베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 로미오가 달빛 아래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불렀을 세레나데를 상상하며 땅에서 3m쯤 떨어진 발코니를 바라본다. 세계에서 몰려온 연인들은 이 재미있는 장소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들은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21세기 로미오와, 결코 비극이란 없을 것 같은 현대판 줄리엣으로 변신한다. 자그마한 마당에는 줄리엣의 동상이 서 있는데,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오른쪽 가슴만 반질반질해져 있다. 또 동상 옆의 나무에는 주렁주렁 사랑의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줄리엣의 집에 있는 사랑의 징표는 이뿐만 아니다. 줄리엣의 집 입구의 벽에는 사랑의 기원을 적은 종이가 셀 수 없이 붙어 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 베로나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세계의 연인들. 호기심에 들른 줄리엣의 집에서 새삼스럽게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변치 않는 불멸의 사랑이라, 그런 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유리처럼 금방 깨지기도 하고 아무리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도 잘 붙지 않는다. 한번 놓으면 다시 잡기 쉽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사랑’. 역시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이들의 최고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원한다면 줄리엣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 베로나 시는 오래된 건축물을 결혼식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올 봄에 발표했다. 수백 년의 건축역사와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줄리엣의 집’에서의 결혼이라! 특별한 결혼식이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베로나 시민은 600유로(약 108만원), 해외 거주자들은 1000유로(약 180만원)를 받는다고 한다.

    ‘줄리엣의 집’도 유명하지만 베로나의 넘버원 아이콘은 뭐니뭐니해도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인 ‘아레나’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나폴리의 원형경기장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원형경기장은 베로나의 여름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7월과 8월에는 역사적인 경기장에서 장엄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 원형경기장에서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잔인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말이다.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로나의 원형극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베로나의 중심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있는 에르베 광장. 이 광장을 주변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유서 깊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광장에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심각한 표정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단테다. 턱을 괴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서 있는 단테의 모습은 왠지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든다. 단테의 고향은 피렌체였지만 정치적인 음모 때문에 추방당해 베로나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단테의 불후의 명작 ‘신곡’의 천국 편 일부가 베로나에서 탄생했다. 평범해 보이는 작은 도시, 베로나를 사랑스럽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도시 밑바닥에 깔려 있는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로맨틱 거리’에 서면 사랑이 스며든다

    <B>3</B> 줄리엣의 동상 옆나무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B>4</B>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오른쪽 가슴만 반질반질해져 있다. <B>5</B> 베로나의 한가로운 풍경. <B>6</B> 해질녘이면 베네치아의 모든 건물과 물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낭만이 넘실거리는 베네치아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를 꼽자면 베네치아를 빠뜨릴 수 없다. 결혼식장에서 매번 듣는 ‘결혼행진곡’을 작곡한 바그너, 세기의 음악가 브람스는 베네치아에 푹 빠졌던 대표적인 예술가다. 브람스는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유서 깊은 카페 플로리안의 단골이었고, 바그너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산마르코 광장에 나와 글을 쓰고 작곡을 했다고 한다.

    산마르코 광장에 반한 사람을 말할 때 나폴레옹을 빠뜨리면 안 된다. 나폴레옹은 산마르코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실’이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이 거실을 갖고 싶어서 베네치아를 정복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싼 산마르코 성당이나 베네치아 공국의 정부청사이던 두칼레 궁전은 어떤 수식어를 사용해도 아쉬움이 남을 만큼 아름답다.

    베네치아에서는 어디에 가도 낭만이 넘실거린다. 그저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다른 느낌이 올라온다. 특히 오후 5시 즈음 해가 넘어갈 때가 되면 베네치아의 모든 건물과 물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황금의 도시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베네치아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지도 없이 미로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길을 잃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낯선 곳이다 싶더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이다 보니, 주변에 기념품 가게 하나쯤은 있다. 베네치아를 이어주는 다리만 해도 400여 개. 크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골목과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은 베네치아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해준다.

    밤이 되면 베네치아는 더욱 낭만적으로 변한다. 조명을 받은 건물들이 물 위에 비칠 때면, 이곳이 동화 속은 아닌가 착각에 빠진다. 길을 걷다 보면 우연히 꿈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만나기도 한다. 지친 다리도 쉴 겸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주하고 음악을 듣노라면, ‘이보다 더 낭만적인 여행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진하게 스며든다.

    [ 여 행 정 보 ]
    베네치아 가는 길 베네치아까지 운항하는 직항편은 없다. 대한항공과 알이딸리아 항공을 이용해 로마나 밀라노로 들어간 뒤 경유해야 한다. 인천에서 로마까지 비행시간은 약 12시간30분. 로마∼베네치아 구간은 국내선으로 약 1시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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