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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서사와 직설화법의 부담스러움

박진표 감독의 ‘내 사랑 내 곁에’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서사와 직설화법의 부담스러움

서사와 직설화법의 부담스러움

주인공 김명민은 루게릭병에 걸린 ‘종우’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20kg을 감량,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박진표 감독의 영화 세상에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운명이고, 그게 사랑이다. 주인공들을 갈라놓는 것 혹은 시험하는 것은 대개 돌이킬 수도, 어떤 희망의 끈을 가질 수도 없는 엄혹한 질병이나 유괴다.

반면 허진호의 영화 세상에서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영화 ‘행복’에서 남자는 죽어가는 여자를 두고 모질게 떠났다. 이런 변심과 변절은 박진표의 영화 세상에선 어림없는 소리다.

루게릭병을 소재로 한 ‘내 사랑 내 곁에’는 비슷하게 불치병인 에이즈를 소재로 한 ‘너는 내 운명’의 연장선상에서 관객을 향한 눈물몰이에 나선다.

그런데 비유하자면, 스크린에 성기를 한가득 보여준다고 관객이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영화는 관객에게 윽박지르다시피 하며 ‘니들이 사랑을 알아?’(실제 대사에도 나온다), 뭐 이런 식으로 직설화법을 구사한다. 그런데 그 직설이 또다시 사랑과 이별의 문제로 환원될 때, 즉 캐릭터의 심리주의가 근간이 되는 영화에 간접화법이, 쉼표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행간이 없다 보니 ‘내 사랑 내 곁에’는 배우들의 개인기만이 툭툭 튀는 물기 질펀한 영화가 돼버렸다.

즉, ‘내 사랑 내 곁에’엔 서사는 있는데 서정이 없다. 관점은 있는데 시점이 없다. 김명민과 하지원 커플 외에도 감독은 식물인간인 남편과 아내, 척추를 다친 딸을 뒷바라지하는 서민 등의 낮고 소소한 이야기로 영화 속을 터질 듯 채웠다. 그런데도 종우(김명민 분)와 지수(하지원 분) 커플의 이야기조차 누구 한 사람에게 충분히 감정이입이 될 만큼 시점의 안배가 배려되지 않는다.



조연들의 에피소드는 주연들의 러브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드는 액세서리에 불과하고, 주연들의 러브스토리는 다시 관객들의 마지막 눈물을 모두 짜내기 위한 큰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마지막에 종우가 지수에게 반지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만큼은 좋았다). 영화는 루게릭병을 다룬다. 그러나 루게릭병이 인간에게 의미하는 것은 극도의 무기력, 목소리와 눈 깜빡임 외에는 어떤 인간적인 존엄과 소통도 허용하지 않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것이다.

감독은 이에 관한 성찰이나 통찰을 보였는가. 영화는 50% 이상을 병원이란 공간에 카메라를 묻었다. 그렇다면 중환자실의 공간성은 시각적, 공간적 이미지로 형상화됐나(그곳은 육신을 도륙하는 감옥인가, 기억이 스러져가는 도굴된 무덤인가, 모든 것이 탈색한 푸줏간인가). 현실을 그대로 모사한다고 해서, 어찌 영화가 영화라는 것을 잊을 수 있는가. 이제 마음 아프지만 연기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김명민은 이 역할에 모든 것을 걸고, 백종우에게 자신의 피와 영혼을 판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이런 연기 자세는 혼자 섀도 복싱하는 선수처럼 고되고 고립되게 느껴진다. 이는 비단 김명민만이 아니다. 하지원 임하룡 남능미 등 모든 조연 연기자가 고군분투했지만, 결과는 그저 그들이 제각각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 아쉬운 점은 TV에서 그토록 빛나던 김명민의 연기가 영화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럽게 ‘큰 연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사실 김명민이 지금까지 한 연기는 장군, 의사, 지휘자 등 카리스마가 별처럼 빛나는 ‘있음’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플러스의 연기가 아닌, 모든 것이 쓸쓸하게 쇠락해가는 ‘없음’의 영역으로 중심을 옮겼다. 비워야 되는 연기를 무한대로 채우다 보니, ‘내 사랑 내 곁에’는 공간에도 사람에도 여백이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이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서 우리 모두가 20kg이나 감량하며 거의 목숨을 걸었던 김명민의 말라가는 나신을 목도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화도 난다. 영화는 한 배우에게 가학의 관음증을 행사한 것 말고 대체 무엇을 주었단 말인가. ‘내 사랑 내 곁에’는 김명민의 살이 아니라 박진표의 가슴과 머리로도 만들어야 했다. 극진한 연기가 허술한 연출을 살릴 수는 없다는 것. 김명민이 한국의 로버트 드니로가 되기를 원한다면, 다음번엔 좀더 신중하게 자신만의 마틴 스코시즈를 골라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9.09.29 705호 (p84~84)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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