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2009.08.18

“쌍꺼풀 수술 언제 했어요?” & “상자에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8-13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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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말만 잘했어도!” 살다 보면 이런 쓰라린 후회를 할 때가 많다. 직장 상사에게, 애인에게, 교수에게, 친구에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반대로 말 한마디로 큰 성공을 거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말로 성공하고 실패한 이들의 ‘공감’ 에피소드에서 말하기 비법 한 수를 배워보자.
    아, 이 말은 하지 말걸! …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 말 말

    “쌍꺼풀 수술 언제 했어요?” & “상자에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
    지방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과장님이 반가워 친근함의 표시로 “과장님, 머리가 꼭 가발 같잖아요! 가르마를 바꿔보세요!”라고 했다. 헉. 알고 보니 진짜 가발이었다. (하주경·27·회사원)

    남자친구랑 동네를 걷다 허름한 단독주택을 지나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저런 데선 절대 못 산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도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김지영·22·대학생)

    시어머니가 ‘나이 먹으니 눈밑살이 자꾸 처진다’고 고민하셨다. 내 딴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고 ‘보톡스 주사를 맞아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내가 그런 시술을 할 정도로 볼품없어 보이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김지현·27·디자이너)

    지난 연말, 회사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회식 후 우연히 과장님 차를 얻어 탔는데 바쁘다는 얘기를 하다 “난 지지리 복도 없다”며 신세 한탄을 했다. 그때 과장님이 나를 투정만 부리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본 것 같다. 이후 회식 자리에도 불러주지 않는다. (손미선·29·회사원)



    우리 과장님은 썰렁한 농담을 많이 한다. 보통은 장난으로 야유하거나 그냥 웃고 넘어가는데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문제가 터졌다. 거래처 사람이 과장님 못지않게 썰렁한 유머를 남발한 것. 그 자리에서 “우리 과장님보다 싱거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며 혼자 막 웃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권유진·30·회사원)

    나와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쌍꺼풀 수술을 한 듯해서 “수술 언제 했어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부기 빠지면 진짜 예쁘겠다”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는데 그 친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더니 톡 쏘듯 말했다. “수술한 지 3년 됐거든요!” (익명을 요구한 30대 회사원)

    처음 방송 출연했을 때 아찔한 말실수가 잊히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잘 말해놓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담당 PD와 친해진답시고 차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었는데, ‘○○여대 ○○학과’ 출신 인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학과 출신 여자들 엄청나게 드세잖아요”라고 말한 순간, PD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 순간 담당 PD가 바로 그 ‘드센 여자’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었다. 고정 출연인 줄 알았는데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칼럼니스트)

    식구들이 모두 외출해 시아버지와 집에 단둘이 남게 됐다. 친한 척하려고 말 한마디 건넸다 큰일 날 뻔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아버님에게 “아버님, 개 밥 드렸어요?”라고 물었던 것. 제대로 배우지 못한 며느리 쳐다보듯, 황당해하던 아버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주부)

    “쌍꺼풀 수술 언제 했어요?” & “상자에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
    이 말 하길 잘했다 … 다시 생각해도 잘한 말 말 말

    서비스업에 종사한 적이 있어 고객 응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얼마 전 동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갔는데 가격이 5만9000원이었다. 그런데 판매하시는 분 얼굴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지 그래요”라고 말했는데 그 분이 정말 고마워했다. 그날 나는 그 옷을 4만2000원에 샀다. (한경숙·28·회사원)

    텔레마케터로 휴대전화를 판매하고 있는데, 전화를 통해 신청을 접수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60대 할머니가 말도 잘 이해하고 신청 절차도 잘 따라해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20대들보다도 잘하시네요”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가 친구를 세 분이나 더 소개해줬다. (남연우·30·회사원)

    소개팅에 나갔는데 소개팅녀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비우려던 찰나 그녀의 귀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귀고리가 정말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며 스위스 여행 중 사온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도 스위스 여행을 한 적이 있어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 꽤 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지금 그녀는 나의 소중한 여자친구다. (조모 씨·28·회사원)

    입사 최종면접 때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준비해간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었다. 그러다 한 면접관이 “시력이 상당히 나쁘네요, 모니터 계속 봐야 하는 일인데 괜찮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도 몰래 “당장 라식수술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면접관 다섯 분이 동시에 껄껄 웃기 시작하고…. 합격 후 그 자리에 계셨던 한 임원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가 어찌나 다급하게 들렸던지 이런 지원자라면 꼭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성재·26·그래픽 디자이너)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와 이은택(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틀리는 말
    말 잘하는 사람의 내공은 ‘디테일’한 표현도 실수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자료집 ‘국어연구원에 물어보았어요’와 올해 3월 발간된 책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달인편’(다산초당 펴냄)에 게재된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말들을 정리했다.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어른들에게 연배(年輩)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연배란 동년배(同年輩), 즉 같은 또래라는 뜻이다. 연장자에게 말할 때는 “연세(年歲)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부장님, 과장님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직급상 부장이 과장보다 높으므로, 과장에게 높임말을 써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모셔오라셨어요”도 같은 이유로 잘못된 말. “아버지가 모셔오래요”라고 말하는 게 원칙상 맞다.

    “‘사장님실’로 모시겠습니다.” 사장실, 국장실, 부장실이라고 부르면 왠지 예의에 어긋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사장님실, 국장님실, 부장님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어법에 맞지 않다. ‘사장실’이란 회사에서 사장 역할을 맡은 사람이 쓰는 방이란 의미로 고유명사다. ‘화장실’이나 ‘회의실’처럼 특정한 공간을 뜻하는 것. 그러므로 그냥 ‘사장실’이라고 써야 한다.

    “선생님, 수고하세요.”‘수고하다’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수고했다’는 말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일을 평가하는 의미가 내포되므로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세요’라는 어미 역시 명령형이므로 윗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이 된다.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도 권장할 만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피하고 싶어 하는데 ‘수고(고생)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덕담이 되기 힘들기 때문.
    “이 상자 안에는 도넛 6개가 들어가세요.”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고객을 친절히 대하기 위해 과도한 높임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어법에 맞지 않고, 오히려 고객의 반감을 살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 상자 안에는 도넛 6개가 들어가신다’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도넛을 높이는 말이다.
    “정년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정년퇴임하는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 민감한 때는 인사말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정년퇴임을 하는 사람이 이를 축하할 일로 인식하는지, 위로할 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인사말은 크게 달라진다. 가장 무난한 인사는 “벌써 정년이시라니 아쉽습니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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