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2009.08.18

서민들의 얼룩, 따뜻한 유머로 지우다

뮤지컬 ‘빨래’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08-1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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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들의 얼룩, 따뜻한 유머로 지우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의 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저소득층 서민들의 녹록지 않은 일상을 진솔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화장실을 함께 쓰며 ‘똥세’까지 내야 하는 단칸방 거주자들로, 매일 옥상에 젖은 빨래를 너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한편 이런 열악한 사정 때문에 오히려 눈이 맞는 젊은 남녀가 있으니, 바로 솔롱고와 나영이다.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는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옆집 옥상의 나영에게 반해 서툰 발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나영은 5년 전 강원도에서 상경한 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20대 아가씨로, 서로 마주치기 바로 전날 이사를 왔다. 두 사람은 옥상과 골목에서 수시로 마주치고, 사회적 약자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는 사건을 몇 차례 겪으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뮤지컬에는 이러한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아울러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복지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지만 진지한 주제를 풋풋한 러브스토리와 넘치는 유머, 재치를 통해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는 진정성이다. 작가의 관찰력과 경험이 묻어나오는 디테일한 상황 및 대사는 허를 찌르는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발한다.



    음악은 맑고 서정적이어서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멜로디의 간극이 크지 않고 편안한 음계로 진행되면서도 선율이 아름다워 한 번 들으면 바로 외워질 정도로 귀에 감긴다.솔롱고 역의 임창정과 나영 역의 조선명은 진솔하고 순박한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빨래’는 서민들의 질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소재다. 슬플 땐 빨래를 한다는 이 달동네 주민들은 ‘어제의 얼룩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려진 내일을 입으며’ 소박한 꿈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옥상에 속속들이 공개된 옆집의 빨래를 챙겨주듯,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서로의 일상을 보듬어준다.

    한복을 입고 고전에서 소재를 찾지 않더라도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으로 전달한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적인 뮤지컬’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빨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한국 창작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극본, 음악, 장면 연출이 짜임새 있는 ‘웰메이드’ 작품이다. 학전그린소극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문의 02-928-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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