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2009.08.18

‘파타흐’는 새롭게 태어나는가

팔레스타인 최대 정파 20년 만에 전당대회 다양한 노림수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9-08-13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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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내 최대 정파인 파타흐의 제6차 전당대회가 8월4일부터 사흘간 웨스트뱅크 내 팔레스타인 자치도시 베들레헴에서 열렸다. 이번 전당대회가 세간의 관심을 끈 이유는 1989년 제5차 전당대회 이후 20년 만이자,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처음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에서 파타흐 내 주요 의사결정기관인 중앙위원회 위원과 혁명의회 의원들이 새로 선출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20년 만의 전당대회인지라 준비과정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팔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해외 체류 중인 파타흐 인사들의 참석을 위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특별 협조를 요청했다. 오늘날의 팔 자치정부를 탄생시킨 1993년 오슬로 협정을 거부하고 지금까지도 해외에 머물며 대(對)이스라엘 투쟁을 벌이는 일군의 파타흐 인사들이 있는데, 압바스 수반은 이들이 입국할 수 있도록 네타냐후 총리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스라엘, 팔 해외인사 입국 허용

    이스라엘은 이례적으로 이 요청을 수용, 심각한 테러 관련 용의자가 아닌 한 대부분 입국을 허용했다. 이로써 수십 년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인사들이 속속 입국했다. 대표적 인물이 파타흐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무함마드 그네임(71). 그는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한다는 오슬로 협정에 반발해 귀환하지 않고 당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본부가 자리한 튀니지에 남아 있던 인물이다(그네임을 비롯한 해외 인사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영토로 한 국가 건설을 주장한다).

    이처럼 국내외 인사들의 참석으로 전당대회 참석자는 2000명을 넘어섰다. 이번 전당대회를 방해하려는 세력의 반발도 거셌다. 파타흐의 최대 라이벌 정파인 하마스가 대표적이다. 현재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하마스는 대회 시작 전부터 가자지구 내 파타흐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하마스는 대회에 참석하고자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파타흐 인사 21명을 체포했다.



    그중에는 파타흐 혁명의회 소속의 고위인사 히샴 아베드 아-라제크도 있었다. 하마스가 파타흐 전당대회에 딴죽을 건 이유는 겉으로는 파타흐에 의해 체포된 하마스 인사의 석방이지만, 속내는 이번 대회가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파타흐의 이미지 쇄신의 계기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적 세속 단체인 파타흐와 달리, 하마스는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다. 팔레스타인 전 영토에 이슬람을 통치이념으로 삼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기에 오슬로 협정을 거부, 팔 자치정부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파타흐가 지배정파로서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는 동안 하마스는 민중 곁으로 다가갔다. 대이스라엘 무력투쟁을 주도하는 한편, 민중을 위한 복지시설 건설에 힘썼다.

    비록 이스라엘과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하마스의 노력은 팔레스타인 민심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이다. 하마스가 당초 예상을 뒤엎고 총 132의석의 과반을 훌쩍 넘는 74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하마스를 주축으로 한 팔 자치정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파타흐와의 세력 다툼으로 가자지구는 내전의 양상으로 치달았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탄압에 하마스 정권이 붕괴, 봉쇄된 가자지구만의 권력으로 남았다. 민중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급기야 작년 말에서 올해 초까지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다. ‘하마스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민심이 확산되는 상황인지라 하마스는 파타흐가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중에게 새롭게 각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1월에는 팔레스타인 총선이 예정돼 있다.

    ‘떠오르는 별’ 마르완 바르구티

    이번 파타흐 전당대회에 대한 이스라엘의 우호적인 태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파타흐가 주도하는 자치정부는 웨스트뱅크만을 통제하는 반쪽짜리 정부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하마스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반면 최근 많은 검문소를 철거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통행을 자유롭게 하는 등 웨스트뱅크 내의 통제를 약화시켜 나갔다. 그 덕에 웨스트뱅크 내 팔레스타인 자치도시들은 2000년 제2차 인티파다 발발 후 처음으로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와 파타흐가 통치하는 웨스트뱅크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상황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의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파타흐는 20년 만에 개정되는 정당강령에서 예상과 달리 강경한 어조를 상당히 누그러뜨렸다. 당초 이스라엘은 아랍 언론을 통해 사전 입수한 파타흐의 새 강령에 ‘대이스라엘 무력투쟁 지속’ 등의 문구가 삽입돼 있는 것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전당대회 첫날 개회연설에서 압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은 우리의 합법적 권리이지만 이러한 권리가 테러라는 수단에 의해 얼룩져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최우선 해결 수단은 “평화적 해결”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파타흐가 노리는 최대 효과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지 쇄신이다. 파타흐는 전당대회를 통해 21명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100명의 혁명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그중 중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파타흐 내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기관이다. 이 위원회는 20년 전 아라파트가 생전 임명했던 파타흐 1세대인 소위 ‘구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은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왔다.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인물들을 보면, ‘포스트 아라파트’를 책임질 것으로 평가되는 무함마드 다흘란, 지브릴 라주브, 마르완 바르구티 같은 ‘신세력’이 포함돼 있다. 그중 바르구티는 제2차 인티파다 기간 중 대이스라엘 무력투쟁을 전개하다 각종 테러 혐의로 수감돼 옥중 출마한 인물이다. 그는 파타흐 인사 가운데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은 인물로,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내 모든 정파의 단결을 외치며 민중 편에서 투쟁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두 명의 구성원 교체로 거대 조직의 정체성이 달라지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바르구티는 영어의 몸이므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세계 유수 언론들이 ‘새로운 파타흐는 가능한가?’류의 분석 기사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위로부터 뼈를 깎는 고통의 노력이 없는 한, 25%의 실업률과 5명 중 1명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꾸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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