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2009.08.18

비겁한 웃돈에 팬까지 우롱하니?

대구 오리온스 김승현 ‘이면계약’ 파문 확산 … 연이은 거짓말에 오리발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입력2009-08-13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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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 김승현과 소속 구단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이면계약과 관련된 거짓말로 전 국민을 우롱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오리온스와 김승현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면계약서는 없다”고 입을 맞췄지만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의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것.

    이에 KBL은 김승현에게 2009~2010시즌 18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000만원, 오리온스에게는 규정 위반에 따른 벌금 3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농구팬들에게 ‘석고대죄’해도 시원치 않다는 게 농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 오리온스 심용섭 단장은 KBL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이면계약 자체를 부정하면서 모든 책임을 전임 단장에게 떠넘기고 있다. KBL에 이면계약서를 제출했던 김승현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다. 그러잖아도 점점 팬들을 잃어가는 KBL은 ‘오리온스와 김승현의 오리발’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됐다.

    김승현과 오리온스의 이면계약설은 농구계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얘기다. 김승현은 2005~2006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었다. 당시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군림하던 김승현에게 많은 팀이 러브콜을 보냈다.

    FA선수 잡기 이면계약 공공연

    당시 서장훈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 구단은 두 선수의 친분을 고려해 김승현 영입을 시도했다. “삼성이 5년간 50억원을 베팅했다”는 설이 파다했을 정도. 그러나 이적설을 뒤로한 채 김승현은 오리온스와 재계약했다. 발표 금액은 4억3000만원에 단 년(매년 연봉 협상을 다시 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농구계에는 오리온스가 삼성이 제시한 금액보다 많은 돈으로 김승현을 잡았다는 말이 정설처럼 퍼져 있었다.



    현금 이외에도 ‘현물’이 끼어 있다는 등 루머가 파다했지만 계약의 실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농구계는 FA선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연봉 이외에 규정을 위반한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특별보너스)까지 존재했다. 그뿐 아니라 샐러리캡을 벗어나는 웃돈을 주는 일도 허다했다. “모 구단은 FA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사실상 백지수표를 들고 다녔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A급 선수라면 누구나 FA계약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자 KBL은 2007년 이사회를 통해 일부 선수에게 웃돈이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정 노력에 들어갔다. 샐러리캡 이외에 ‘정리금’이라는 추가 금액을 도입, 뒷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KBL은 스스로 규정한 정리금(최대 4억원)으로는 일부 선수의 웃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이를 백지화했다.

    그런 뒤 이사회를 통해 2008년 7월까지 계약한 선수들의 웃돈은 구단이 알아서 정리하고, 2008년부터 구단의 지출내역과 선수들의 소득증명을 통해 샐러리캡 이외에 웃돈이 지급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온스가 몰래 웃돈을 지급해오다 최근 3년간 김승현이 허리 부상 등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자 2009~2010시즌 연봉 계약을 앞두고 갑자기 KBL 규정을 들어 ‘웃돈’을 못 주겠다고 버텼다.

    이 배경에는 허리 부상을 입은 김승현이 비시즌에 골프를 치고 나오다 농구 관계자들과 만난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골프 얘기를 전해들은 오리온스 측이 김승현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부상을 핑계로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던 김승현이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는 골프를 즐기고 있으니 오리온스 처지에서는 곱게 보이지 않았을 터. 오리온스는 김승현에게 “더 이상 웃돈을 줄 수 없다. 현실적인 연봉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김승현은 남은 2년의 계약기간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어들자 심하게 반발했고, 결국 KBL에 연봉조정을 신청했다. 이어 김승현의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걸 공개하겠다”며 오리온스를 압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승현이 오리온스 측에게 받을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김승현은 연봉조정을 위해 KBL을 방문, 이면계약서로 보이는 문건을 재정위원회(상벌위원회)에 전달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KBL은 이 문건을 일단 인정하지 않은 채 김승현의 연봉을 구단 제시액인 6억원으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문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김승현과 오리온스가 1년간 10억5000만원의 조건으로 5년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리온스는 KBL에 김승현의 연봉을 계속해서 6억원 미만으로 신고하면서 매년 4억원 이상에 달하는 웃돈을 제공했던 것. 김승현 처지에서는 남은 2년간 최소 8억원 정도의 금전적 손해를 봐야 했으니 심히 억울했을 것이다. 반면 오리온스 측은 1년에 10억원씩 받아가는 선수가 부상을 이유로 경기를 제대로 뛰지 않고 오히려 골프 등 외도를 일삼으니 계약을 이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KBL도 도마 위에

    KBL 전육 총재는 이면계약 문제가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총재가 인터뷰를 자청한 자리에 김승현과 오리온스 단장이 불쑥 나타나 “이면계약은 없다”고 해버리자 전 총재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총재는 언성까지 높이는 등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김승현이 KBL에 제출한 문건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KBL은 이면계약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징계 수위는 낮았다.

    5년간 52억5000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로 계약한 김승현에게는 고작 1000만원, 오리온스에게는 3000만원의 벌금을 내리고 이번 일을 덮기에만 급급했다. KBL 규정에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선수는 영구 제명될 수 있으며 이면계약으로 받았던 돈을 모두 추징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승현에게 추징금은 없었다.

    또한 오리온스 측에는 샐러리캡 위반과 관련해 신인지명권 박탈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었지만 KBL은 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2007년 이사회를 통해 이전까지의 웃돈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2008~2009시즌에도 오리온스와 김승현은 웃돈을 주고받았다. KBL의 해석대로라면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KBL은 “2008~2009시즌 웃돈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면계약을 정리하기로 한 2008년 7월 이전에 지급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서둘러 정리했다. KBL은 오리온스가 제출한 2008년 1~12월 선수 연봉 지출내역을 토대로 처벌 수위를 결정했다지만, 오리온스 자료대로 웃돈을 상반기에 몰아줬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항간에는 2008년과 2009년 소득 자료에 대한 조사가 정확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자 농구계 일각에선 “오리온스가 철저한 계산 하에 KBL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어쨌든 KBL로선 부메랑을 맞은 꼴이다. 오리온스의 심 단장은 총재 선임 당시 앞장서서 전육 후보를 지지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이면계약 사건으로 KBL 수장에게 큰 상처를 입힌 셈이 됐다. 또한 KBL도 시스템상의 허술함을 드러내면서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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