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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변종 기획부동산 ‘먹튀’ 경계경보!

한통속 업자들 작전에 피해자 속출 … 중소 건설업체 오너가 주요 타깃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변종 기획부동산 ‘먹튀’ 경계경보!

변종 기획부동산 ‘먹튀’ 경계경보!

서울 강남 일대 신종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돈은 땅을 부르고, 땅은 돈을 부른다. 부동산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대박 신화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신앙은 필연적으로 사이비의 출현을 불러일으킨다.

부동산 신화에서도 사이비가 출현해 막대한 피해만 안겨놓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그들을 ‘기획부동산’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일컫는다.

기획부동산이란 대규모 토지를 매입한 뒤 일반인의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적당한 크기로 나눠 텔레마케터 등 조직적 판매망을 통해 매도하는 조직을 말한다.

일부 건전한 기획부동산도 있다고 하지만, 일단 ‘사기를 의심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장과 속임수가 많다. 최근 강남에서 활동하는 기획부동산은 여기서 한층 진화했다. 기존의 수법에 세련된 ‘먹고 튀기’ 수법이 더해졌다. 그들이 찾는 대상은 물론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이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 활약하는 신종 기획부동산의 주요 타깃은 중소규모 건설사 오너. 사기극에는 A(피해 중소 건설사) B(기획부동산 일당) C(부동산 분양권 판매대행사) D(판매, 판촉 직원들로 이뤄진 점조직) E, F(청약자)가 등장한다. 결말은 B=C=D=E=F가 한통속이 돼 A의 돈을 이중으로 빼내기.



강남 일대 점조직만 100여 개 활동

경기도 성남시에서 중소 건설업체 A회사를 운영하는 대표 최모(45) 씨는 사업을 통해 친해진 B의 한마디에 귀가 솔깃해졌다. B는 최씨에게 “경기도 청평에 개발이 이뤄지면 대박이 나는, 실제 개발계획이 잡힌 땅이 있다. 이 땅을 구입하면 토지 분양권 판매를 대행해 높은 수익을 올리게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B를 안 지 1년도 더 된 데다 대박을 보장한다는 말에 푹 빠져버린 최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최씨는 곧 토지에 대한 계약을 맺고, 잔금을 분할해 치르기로 했다. 이때 B는 부동산 판매 대행 전문가라며 C를 소개했다. C는 “매입가격이 10억이면 20억~30억으로 올려 팔아 수익을 올리겠다”면서 “너무 높은 수익에 놀라지 말라”며 거드름을 피웠다. 전문가까지 소개받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C는 판매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A회사 명의로 분양권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A회사 인감으로 통장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청약자들은 A회사를 보고 투자하지 판매대행사를 보고 투자하지 않습니다. 수시로 돈이 들어오고 나갈 텐데 청약자들이 입금할 수 있는 회사 명의의 통장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돈이 들어올 때마다 보여주겠습니다.”

변종 기획부동산 ‘먹튀’ 경계경보!
C의 말을 믿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 C는 본격적으로 분양권 매도를 한다며 자신의 점조직인 D를 끌어들였다.

D와 같이 토지분양 판매 판촉을 대행하는 점조직은 보통 30~40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조직 하나를 운영하는 고정비용만 사무실 임대료, 통신비, 월급 등 1억5000여 만원에 이른다.

점조직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 점조직은 전무, 상무, 부장 등 나름대로 직급을 가진 직원과 일반 텔레마케터 등으로 구성된다.

강남 일대에만 이런 점조직이 100여 개는 된다”며 “결국 B, C, D가 모두 한통속이 돼 일을 꾸민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C가 데려온 점조직원들이 순조롭게 계약을 맺어나가자 금세라도 대박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즈음 B는 최씨에게 토지에 대한 잔금을 얼른 치를 것을 요구했다.

결국 최씨가 토지 잔금을 치르자 신종 기획부동산 시나리오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토지 잔금을 치름과 동시에 B와 C가 잠적한 것이다. 최씨는 “인감 통장을 (기획부동산을 꾸민) 이들이 가지고 있고, 실제로 통장을 보면 돈이 들어오고 있어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는 항목이 꺼림칙했지만, 텔레마케터 등 직원들에게 나가는 주급과 사무실 임대료라는 설명에 별 의심은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기획부동산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신종 기획부동산 일당이 노리는 것은 단순히 개발 불가능한 땅을 사들여서 마구잡이로 판 뒤 ‘나 몰라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씨의 경우 이중삼중으로 돈을 빼낼 포석이 기획부동산 계획 초기부터 마련돼 있었다. B와 C가 잠적하자 이들을 대신해 분양권 판매대행을 맡았던 C 및 그의 점조직 D와 계약을 맺었다는 청약자들이 나선 것이다.

‘합법’적인 사기 수법 돈 돌려받기 어려워

B는 애초부터 최씨의 부동산을 판매대행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과 결탁한 C에게 일부 자금을 줘 B 혹은 C 지인들의 명의로 돈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예컨대 C는 B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E의 명의로 입금했다가 며칠 뒤 월급 혹은 고정비 지출 명목으로 인출해 다시 이 돈으로 F의 명의로 계약을 맺고 A회사의 통장에 넣었다가 며칠 뒤 인출하는 식이다.

이렇게 ‘넣고 빼기’가 수십 번 반복되면 실상 A회사 통장에 남은 돈은 없게 된다. 하지만 청약자 E, F 등은 계약서상 분명히 A회사와 청약계약을 맺고 통장에 입금했으므로 A회사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물론 E, F 등은 B, C와 사전 협의를 통해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최씨의 경우도 청약자 E, F 등이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그와 회사를 상대로 토지이용을 금지하는 가처분 혹은 가압류를 신청했다. 그러면서 압류를 풀려면 자신들이 낸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땅을 내놓으라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A회사는 통장에 들어온 돈은 만져보지도 못한 채, 엉뚱한 땅을 사고 그 땅을 지키려면 돈까지 물어야 하는 사태에 빠져든 것이다.

대박의 꿈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비록 E, F 등 청약자들이 B와 C의 지인이라 밝혀진다 해도, 실제 돈을 지급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심증이 있다고 해서 계약 자체를 무효로 돌릴 수는 없다. 이 점을 노린 것이 신종 기획부동산의 ‘백미’다.

점조직 D도 A회사와 최씨를 동시에 압박했다. D는 “우리는 단순히 고용된 판촉 직원에 불과하다.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판촉업무만 대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자신들은 계약을 맺을 때 A회사 직원으로 소속된 만큼 미지급된 임금을 달라고 최씨를 노동부에 고발했다.

강남 일대에서는 최씨처럼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임에도 ‘당했다’는 피해자가 수십명에 이른다. 신종 기획부동산을 직접 ‘작업’해봤다는 한 사업자는 “여기에 걸려들면 불과 한 달도 안 돼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폐인이 되거나 자신이 당한 그대로 다른 업체에 사기를 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당하고 나서 이 수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B와 C를 고소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하지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법적으로 봤을 때 B는 적절하게 투자처를 권유했을 뿐이고 토지구매 결정을 내린 것은 결국 최씨”라며 “통장에서 돈이 오간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최씨의 잘못도 크다. 중개인·판매대행인·점조직·청약자가 한통속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선에서 기획부동산을 수사한 한 경찰관은 “갈수록 기획부동산이 치밀하게 진화하는 양상이다. 기획부동산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사건이 해결돼도 돈을 돌려받기가 극히 어렵다. 피의자들도 ‘1~2년 감방 살다 나오면 된다’고 생각해 빼돌린 돈이 어디에 있는지 끝내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획부동산으로 의심이 되면 아예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지적했다. 대박을 좇는 헛된 꿈을 가진 투자자와 이를 이용하려는 투기꾼이 신종 기획부동산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2009.08.18 699호 (p50~51)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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