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9

2009.08.18

“남산의 아픈 역사도 후대에 남겨주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제언 “중앙정보부 터 보존, 조선통감 관저 복원 필요”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8-13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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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의 아픈 역사도 후대에 남겨주자”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남산의 운명은 한 몸으로 얽혀 있다. 역사의 명멸들이 현재와 대화하면서 오늘과 내일을 창조할 수 있는 지혜의 땅이다.”

    대표적인 진보 역사학자인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사진)가 최근 남산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나섰다.

    8월3일 기자와 만난 한 교수는 “‘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이하 남산플랜)에선 남산에 대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산플랜이 남산이 가지는 현대사의 역사적 기억을 훼손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발표한 남산플랜은 남산의 △접근성 개선 △생태 및 산자락 복원 △역사 복원 △경관 개선 △운영 프로그램 확충 등을 통해 시민에게 남산을 일상 속의 공간으로 되돌려준다는 게 핵심이다.

    한 교수가 가장 먼저 문제제기한 부분은 경관 개선. 남산플랜의 경관 개선안에는 자연경관과 생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남산 내 구(舊) 중앙정보부 소속 건물들을 철거한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역사 복원을 언급한 플랜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구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현 서울유스호스텔)과 취조 건물로 사용된 현 서울시청 남산 별관, 그리고 민주화투쟁 인사들에게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현 서울시균형발전본부 건물 등 4곳이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철거된다.

    한 교수는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를 떠나 중앙정보부 건물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이런 곳을 무조건 없애버린다면 역사 복원이라는 남산플랜의 전체 취지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중앙정보부 건물의 보존과 함께 조선통감 관저의 복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선통감 관저는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유스호스텔 진입로의 들머리에 있던 건물로, 1910년 8월 일본 통감 데라우치와 조선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 조약을 맺었던 ‘경술국치’의 장소다.

    “무조건 헐어 없애면 역사 상실”

    한 교수는 “한일합방 무렵 ‘왜성대’라고 불리기도 한 이곳을 중심으로 필동, 회현동 등에 일본인이 집단으로 거주했다”며 “치욕의 역사를 복원해 후대에게 ‘우리 민족의 고난이 시작된 장소가 이곳’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앞서 언급한 두 역사적 장소의 복원과 보존 사업에 대국민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조선통감 관저의 경우 ‘역사 신탁(History Trust)’이라는 사업명으로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내년 8월29일에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중앙정보부 건물 4곳과 관련해서는 근대역사 유적 지정 및 아시아인권 평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남산의 아픈 역사도 후대에 남겨주자”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현 서울시균형발전본부 건물(좌). 구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우).

    한 교수는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과거사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수 있지만 ‘과거사를 온전히 보존해 미래를 든든히 다지자’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기회가 우리 사회에서 양극으로 갈라진 대립적 모습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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