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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반쪽짜리 ‘IT강국’ 내일이 두렵다 05

엎치락뒤치락 대기업 자존심 싸움 스타 벤처들 ‘게이트’로 몰락

되돌아본 한국 IT 산업…‘혈서 쓰고 통신망 구축’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 만발

  • 김용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엎치락뒤치락 대기업 자존심 싸움 스타 벤처들 ‘게이트’로 몰락

엎치락뒤치락 대기업 자존심 싸움 스타 벤처들 ‘게이트’로 몰락
‘8억2779만원짜리 전화기.’

세계적인 부호의 유별난 취미생활을 다룬 해외 토픽이 아니다. 1970년대에 거래된 유선전화기의 가격을 현재 시세로 환산했을 때 이야기다. 당시 매매가 가능한 ‘백색전화’의 가격은 260만원까지 올랐다. 그 시절 서울시내 165㎡(50평) 아파트 값이 230만원 안팎이었으니 전화기 한 대가 요즘 돈으로 8억원을 호가한 셈이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했다. 값비싼 외국 장비를 들여다 통신망을 구축한 탓이다. 1980년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추진했다. 5년간 240억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자 전국은 발칵 뒤집혔다. “차라리 그 돈으로 한강 다리를 더 놓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개발을 맡은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실무진은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까지 써야 했다. 이 각서는 ‘TDX 혈서’로 회자됐다.

한국 IT 분야의 첫 ‘신화’로 일컬어지는 1982년 전자교환기 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86년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자교환기 국산화에 성공하며 한국 IT 산업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Stage 1 ● 통신업계 공룡 대결, KT와 SK텔레콤



1970년 약 46만명이던 유선전화 가입자는 88년 1000만명, 97년 2000만명으로 늘었다. 98년 첫 서비스가 시작된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2000년 30만명에서 2002년 1000만명으로 급증했다.

‘황금알을 낳는 통신시장’의 첫 승자는 1980년 체신부에서 독립한 KT(옛 한국전기통신공사). KT는 유선전화와 초고속 인터넷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94년 SK(옛 선경)가 통신시장에 뛰어들며 주연 자리를 내줘야 했다. 두 회사는 10년이 넘도록 통신시장의 영원한 맞수로 희비가 엇갈렸다.

처음 눈물을 흘린 것은 SK. SK는 1992년 정부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SK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사돈 관계 때문에 ‘사전 내정설’ 등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이에 SK는 사업권을 반납,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대주주인 신세기통신에 사업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SK는 2년 뒤인 94년 KT의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KMT)을 인수, SK텔레콤을 설립하며 화려하게 통신시장에 복귀했다.

뒤이어 가슴을 친 것은 KT다. KT가 장악한 유선통신 시장이 제자리걸음을 한 까닭이다. 최근에는 마이너스 성장이다. 게다가 이동통신이 통신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수익성에서도 SK텔레콤에 역전을 허용했다. KT도 자회사인 KTF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에 나서고 한솔텔레콤을 인수하며 이동통신 2위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가장 좋은 주파수 대역(800MHz)을 차지한 SK텔레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앙숙이 된 두 회사는 현재 서로의 무대에 발을 들이밀며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SK텔레콤은 2008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인수하며 KT의 텃밭인 유선통신 시장에 진입했다. 반면 KT는 KTF와의 합병에 성공, 연 매출 19조원의 거대 통신기업으로 재탄생해 SK텔레콤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있다.

Stage 2 ● 전자 업계 글로벌 라이벌, 삼성과 LG

엎치락뒤치락 대기업 자존심 싸움 스타 벤처들 ‘게이트’로 몰락

KT와 KTF는 6월1일 통합KT 출범식을 가졌다(좌측 위). 삼성전자반도체 연구소(아래). 2000년 첫 공판에 나온 정현준 전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우측 위).

1995년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시장에 내놓은 휴대전화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시중에 나가 있던 15만 대를 수거해 구미공장에서 모조리 불태웠다. 그는 휴대전화를 세탁기에 넣어 품질을 테스트하는가 하면, 바이어 앞에서 제품을 벽에 던져 견고함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변방의 제조업체에서 단연 세계시장 2위로 비상했다.

또 하나의 삼성 신화는 반도체 개발이다. 1983년 삼성전자는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경기도 기흥의 야산을 깎아 6개월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무모한 목표를 달성했다. 한나절 만에 4km의 도로를 완성시킬 정도의 초스피드 공사였다.

야전침대를 현장에 가져다 놓고 살다시피 했던 이윤우 현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는 “근로자들이 아오지탄광이라고 부를 정도로 힘든 공사였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내놓은 반도체는 1987년 세계적인 품귀현상이 나타나자 91년 D램 시장의 정상에 오르는 큰 성공을 거뒀다.

LG전자는 원래 생활분야에서 삼성보다 앞서 있었다. 김태경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1981년 사내방송을 통해 “삼성전자의 첫째 꿈은 대한민국에서 가전 3사를 꼽을 때 금성(현 LG전자), 삼성, 대한전선(현 대우일렉)의 순서를 바꿔 삼성을 먼저 부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LG전자는 89년 36일간의 장기 파업을 겪으며 삼성에 1위를 내준 뒤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LG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설립한 LG반도체도 99년 김대중 정부의 ‘빅딜’ 방침에 따라 현대그룹에 ‘빼앗기다시피’ 내줬다. 사돈인 삼성과 LG 두 집안이 멀어진 것도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 때문이던 터라 두 회사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절치부심한 LG전자는 삼성에 빼앗긴 생활가전 분야 국내 1위 자리를 90년대 중반 되찾았다. 또한 남용 부회장의 강한 리더십으로 2008년 모토로라, 소니 에릭슨을 제치고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의 3위로 등극했다.

Stage 3 ● 벤처의 흥망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던 날 여의도에서는 벤처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종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등 새 정부의 실세들이 대거 참석해 벤처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김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벤처기업은 새로운 세기의 꽃”이라며 “이를 적극 육성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벤처기업은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활력소가 됐다. KT, 하나로텔레콤 등이 주도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가 벤처기업 성장의 발판 구실을 톡톡히 했다.

‘스타’ 벤처 기업들이 코스닥 열풍과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주가가 2575원에서 시작해 2000년 2월 30만8000원으로 119배 치솟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99년 11월 1만1200원에서 2000년 1월 40만6500원으로 36배 올랐다. 신출내기 대학원생 몇몇이 모여 회사를 설립해도 서너 군데의 투자처가 돈다발을 들고 줄을 서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광풍은 2000년 말부터 갑작스럽게 사그라졌다. IT 버블이 꺼지며 주가가 폭락하자, 빈약한 사업기반 위에 담보에 담보를 이어붙이는 등 재벌기업의 악습을 따라한 벤처기업이 하나둘 무너졌다. 김대중 정권 말기의 이른바 ‘4대 게이트’가 벤처와 맞물리면서 충격은 더 컸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윤태식 게이트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벤처 열풍을 이용해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았고,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벤처기업인들은 이들이 사이비였다고 주장하지만, 진짜 벤처기업인도 신뢰와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김진호 골드뱅크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회장, 김형순 로커스 대표 등이 사법 처리되는 등 한순간에 불명예 퇴진하며 뜨겁던 벤처 바람은 갑작스럽게 잦아들었다.

이 여파로 국내 벤처는 지금 돈(투자)과 사람, 시장이 모두 부족한 영양실조 상태다. 대표적인 벤처인인 변대규 휴맥스 대표는 “이대로 가면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와 달리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유학 후 KAIST에서 예비 벤처 기업인을 양성하고 있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은 “무엇보다 벤처 하려는 사람의 기업가 정신이 한국 벤처가 살아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탈출구”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9.06.23 691호 (p28~29)

김용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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