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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슬근슬근 자급자족, 슬렁슬렁 보물찾기

학연 대신 생명연(生命緣) 새로운 삶을 향한 씨앗

‘자식 덕 보기’ ⑦

학연 대신 생명연(生命緣) 새로운 삶을 향한 씨앗

학연 대신 생명연(生命緣) 새로운 삶을 향한 씨앗

1 아이들은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한평생 이런저런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좋은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는데, 자식을 키우면서 맺는 인연은 좋은 인연이 더 많은 듯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힘이자 희망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어른을 만나면 일단 경계심을 풀고 친근감을 느낀다. 갓난아이라도 안고 있으면 괜히 아는 척하고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머금는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이 쳐놓은 어떤 벽을 허무는 힘을 타고난다. 이런 힘을 잘 살려나가는 생명교육이라면 아이가 자랄수록 서로를 북돋우는 인연도 늘어날 것이다. 이것도 아이 덕이지 않을까.

이달 초, 아내와 경남생태귀농학교를 다녀왔다. 우리 부부가 맡은 강의 주제가 ‘귀농과 가정생활’이었다. 도시에 살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우리 식구도 눈 뜨면 뿔뿔이 흩어졌다 밤이 돼서야 모였다. 그런데 지금은 늘 함께하며 소통하고 지내니, 10여 년 사이 달라진 그 변화를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대안적 삶 택한 열일곱 향이

강의 장소에 도착하니 김경옥 사무국장님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러면서 귀농학교 수강생 집에서 비빔국수를 준비했단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이번 귀농학교 최연소 수강생인 열일곱 살 향이네였다. 그 또래 많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입시교육에 골몰한다면 향이는 생태, 생명, 자연, 자급자족, 가족소통 같은 주제를 놓고 배운다. 우리는 다 같이 비빔국수를 맛나게 먹고 교육장에서 다시 만났다.



교육장의 분위기는 좋은 것을 넘어 뜨겁다고 해야 할까? 참여 인원부터 그랬다. 50명 남짓 등록했다는데 그날 우리 부부와 함께한 사람은 그보다 많았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부부 참여율도 높았다. 예전에는 30, 40대가 주를 이뤘는데 이날은 50대나 정년퇴직한 분도 제법 있었다. 게다가 향이 같은 청소년이 있다는 건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하지 않는가.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만 오가니 교사 이외의 어른들과는 인연 맺기는 고사하고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학연 대신 생명연(生命緣) 새로운 삶을 향한 씨앗

2 경남생태귀농학교 교육과정 중.
3 교육장에 갖춰둔 귀농 관련 책들.
4 일과를 마치고 귀농학교에서 또 다른 만남을 시작하며 다 같이 기지개를.
5 좋은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완두콩 덩굴손.

반면 일찍이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향이하고는 첫 만남이지만 아이와의 만남이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심지어 정식으로 수강 등록을 하진 않았지만 엄마 곁에 앉아 틈틈이 이야기를 듣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부부에 자녀까지 함께하니 분위기가 뜨거울 수밖에. 이날은 질문도 참 많았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주로 질문했는데 이날은 남녀 누가 더 많이 하느냐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골고루 했다. 사람마다 질문도 한 가지만 하는 게 아니라 서너 가지씩 해 답변을 하자면 메모를 해둬야 할 정도였다.

“집을 언제 어떻게 지었으며, 돈은 얼마나 들었나요?”
“남편은 아이를 좀 놔두라고 하는데, 엄마로서 그렇게 안 되네요. 이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는데 부모로서 선뜻 허락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부부라고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경험을 나눌 뿐이다. 무슨 문제든 덮어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통의 고리도 조금씩 생기지 않겠는가. 어쨌든 질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정마다 안고 있는 고민도 고민이지만 중요한 건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이라는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밤시간인데도 낮 동안의 피로마저 열정으로 녹이는 듯 보였다.

가정은 사회 인연의 원천

눈을 돌려보면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여는 49기 생태귀농학교에는 70여 명이 등록해 사람들의 온기가 교육장을 가득 채웠단다. 이제 ‘귀농’에 대해서는 민간단체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려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가.

삶이 어려울수록 근본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럴 때 가족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중심에서 뻗어가는 힘이라고 할까. 가정이 힘이 되어 사회로 뻗어가고자 한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강의를 다닐 수 있는 힘도 사실은 별것 아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면 아이들도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아이가 자랄수록 사회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자라면서 경쟁에 시달리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다. 남을 이겨야 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밟고 올라가야 하는 현실. 아니, 어느 때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벼랑으로 몰기도 하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찾아 맺어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으로 고맙다. 자신에게 소중한 걸 배우고 익히는 만큼 거기에 맞는 인연도 늘어나는 것 같다. 이를 학연 대신 ‘생명연(生命緣)’이라고 부른다면 거창한가.

우리 부부가 귀농학교 교육장에서 만난 인연도 그렇다.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났지만 이후 인연은 새로운 삶을 향한 이웃으로 거듭나지 않겠나. 모든 분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잘 뿌리내리길 소망한다.



주간동아 2009.06.23 691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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