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2009.06.09

억울함 호소? 권력욕 발로?

정신의학자 盧 전 대통령 투신 심리분석 … ‘충동’ 아닌 ‘長考’ 끝의 행동

  • 손석한 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09-06-05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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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함 호소? 권력욕 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김해 봉화산을 찾은 방문객들이 분향소가 설치된 마을을 쳐다보고 있다.

    자살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행동으로, 유사 이래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자살을 인간의 자유로운 마지막 선택이라고 보았다. 반면 중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독교에서는 이를 죄악으로 본다.

    자살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갑작스런, 또는 만성적이고도 심각한 우울증,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려는 도피 심리, 관련자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복수심의 발로, 자신의 심적 고통을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공격성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 밖에 정신의학적 설명으로는 보복 차원에서의 포기, 힘과 통제(또는 지배)를 획득하는 수단, 죽은 사람과의 재결합 소망, 자기 징벌의 의미, 재생으로서의 죽음, 집단적 압력에 대한 굴복 등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특히 그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슬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이 시점, 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과연 자살 전 그의 정신상태는 어떠했을까. 자살을 분석하는 틀은 여러 가지지만, 정치 부분은 배제하고 온전히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본다.

    짧은 유서, 행동으로 실천해 강력한 효과

    검찰에 소환된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낸 노 전 대통령. 그간 기업인의 자살은 있었지만 정치인의 자살은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곤 매우 드물었다. 자살한 사람을 사후에 분석해보면 많은 경우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보면 노 전 대통령은 병적인 우울증이 아니라 ‘우울한 상태’였을 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자신을 내던졌다. 도대체 그는 죽음으로써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우선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죽음으로써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가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한 뒤 재판에까지 이르렀다면 결과가 어떠했을까. 판결의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예상하긴 어렵지만, 완전한 무죄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은 적었을 것이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 ‘범죄자 노무현’으로 바뀌는 상황은 그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터. 만일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죄의 구성 요건에 걸려든 상황이었다면 누구나 억울해할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자신의 몸을 초개처럼 던져 억울함을 인정받은 셈이 됐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이 가족 등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받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권력욕의 발로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무슨 권력욕이 있겠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내 결정에 따르며, 많은 사람이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수일이 지났지만 식지 않는 추모 열기, 생전에 그가 한 말과 행동을 되살리면서 그것을 따르자는 분위기, 정적들마저 그가 대단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숙연해지는 현상…. 그는 사후에 최고의 권력을 얻었다. 타고난 승부사, 천재적인 정치감각을 가진 그가 지금의 상황을 예측 못했을까. 그는 삶을 놓기 이전 잠깐 머릿속으로 즐겁고 행복한 현재의 상황을 만끽했을 수 있다. 비록 끔찍한 죽음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사후 획득할 ‘진정한 권력’에 대한 상상으로 극한의 고통을 참았을 것이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한 이후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는 마음이 매우 강했다. 아니, 관심 정도가 아니라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노무현’이란 세 글자는 언제나 뉴스의 한가운데 있었다. 각종 설화(舌禍)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일부 국민은 ‘오늘은 노통이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라는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짤막한 유서가 있었지만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그 행동은 너무나도 강력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만일 그가 목을 매거나 음독자살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당연히 슬퍼했겠지만 그의 나약함에 대한 실망의 반응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단단한 바위로 몸을 내던진 경우라면 반응이 달라진다.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런데도 몸을 도약시켜 아래로 떨어졌다. 과감함과 비장함, 그리고 남성다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람들의 입에선 “역시 노무현은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자살은 잘못된 선택, 미화는 결코 안 돼

    그리고 경호원을 따돌리기 전 뱉은 마지막 한마디 “담배 있는가” 역시 눈물나는 대목이다. 여느 끽연가라면 마지막 가는 길에 분명 담배를 챙겼을 터. 그러나 그는 담배 한 개비 부족한 채 떠났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잠깐의 휴식과 안락함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끝내 소탈한 면모를 놓치지 않았다. 죽기 직전 담배를 주문함으로써 결국 하고 싶은 일은 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유서를 보면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우울함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족을 바라봤다. 자신이 삶을 저버리면 누구보다 슬퍼할 사람은 가족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모두 성인이다. 그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삶을 저버리는 게 그나마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의 법은 죽은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사건 수사를 종결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남은 가족의 몸과 재산을 지키고 ‘영웅 노무현’의 유가족이라는 명예까지 남겨줄 수 있으니, 그로서는 생각해볼 만한 방법일 수 있다. ‘오래된 생각’이라는 유서의 표현대로 그의 투신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으로 행해진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다. 종교에서 가장 죄악시하는 자살, 그리고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에게 향한 극단적인 공격성과 적대감의 표현이라는 자살. 이는 결코 용납돼선 안 된다. 미화돼서는 더더구나 안 되는 일이다. 우리 자녀들이 그의 자살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설명에도 이미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지금 거세게 불어닥치고, 그러한 위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하기 힘든 형국이다. 과연 그의 분노는 자신에게로 향한 것인가, 자신의 개혁을 가로막은 소위 기득권 세력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서 등 돌린 서민을 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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