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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노무현을 보낸다 05

“MB 정부가 盧 죽였다” vs “피의자 자살이 서거냐”

핏발 선 대립, ‘新 진보-보수 갈등’ 격화 … ‘원망하지 마라’ 유지(遺志)가 되레 촉매제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MB 정부가 盧 죽였다” vs “피의자 자살이 서거냐”

“MB 정부가 盧 죽였다” vs “피의자 자살이 서거냐”

서울 덕수궁 앞 시민 분향소에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 서명운동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그것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죽음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은 7일간의 국민장(葬) 내내 다양하게 표출됐다. 누군가는 가슴을 치며 자책하거나 조용히 울음을 삼켰고, 어떤 이는 정적(政敵)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러한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말과 태도는 결과적으로 또 다른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고인의 죽음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발언과 조문을 온 여권 인사들에 대한 달걀, 물세례는 “원망하지 말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지와 거리가 멀었다. 보수와 진보 논객을 자처하던 자들은 죽음의 의미를 놓고 상대방을 공격하며 대립했고, 온-오프라인에서 이명박(MB) 대통령 탄핵서명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분향소 설치와 서울광장 개방 논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소요 우려’ 발언, ‘때마침’ 날아든 북한 핵실험 등은 소용돌이를 ‘신(新)좌우갈등’이라는 태풍으로 바꿔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의 뜻과 달리 서로에 대한 원망과 반발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盧 죽음 사과하라” vs “국민장인데 문상 막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서거 당일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폭력과 린치를 가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했던 결과가 이것입니까”라고 부르짖었다. 이 대통령과 검찰, 언론을 향한 여과 없는 분노는 공중파를 타고 시시각각 TV에 비쳤고, ‘노 전 대통령 자살=정부 책임’이라는 암묵적인 책임론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 대통령은 550만표 차이로 당선됐고 한나라당 의석은 국회 절반을 넘는다. 이런 강력한 지지와 원내의석을 확보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왜 이렇게 역사를 반복시키느냐”며 ‘정파적 추임새’를 넣었다.

봉하마을 임시분향소로 보내진 이 대통령의 조화는 흥분한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에게 짓밟혀 훼손됐고 조문에 나선 한승수 국무총리,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김형오 국회의장 등은 차를 돌려야 했다. 이 총재와 김 의장은 심한 욕설과 함께 달걀과 물세례를 받았으며, ‘삼부요인’이라는 국회의장은 5월25일 새벽 ‘도둑 문상’을 해야 했다.

오열하는 유가족과 지지자들의 모습은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의 감성에 불을 질렀고, 추모객들은 분향소와 댓글에 긴 줄을 만들었다. 이와 반대로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짓밟히고 여권 인사들이 수모를 당하는 광경은 보수 지지자들의 입술을 깨물게 했다. 분위기 때문에 당장 적극 나설 수는 없지만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유언론인협회 양영태 회장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이상한 행동에 당황해하면서도 바득바득 봉하마을에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정치인들은 국민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서는 “장례는 노사모장(葬)으로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피를 보면 흥분하듯 극단적 죽음은 감성을 자극한다. 처참해진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상상하며 사람들은 흥분 상태에 빠지고, 그의 반대세력이던 사람들은 호의호식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고인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유서와 방송 보도를 보면서 그에게 동화되는데, 이는 일종의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 현상이다. ‘왠지 나도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감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람들은 그러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반대 측 사람들은 극렬한 저항이 두려워진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의 설명처럼 이후 인터넷은 ‘정서적 전염’과 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반대편 소수 논객들의 전장이 됐다.

인터넷 이념 대리전 … 인기 검색어는 좌우 논객들

“MB 정부가 盧 죽였다” vs “피의자 자살이 서거냐”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맞선 논객들.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지만원 씨, 김지하 시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왼쪽부터).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엔 인터넷의 주요 검색어가 ‘노사모’ ‘봉하마을’ 등이었지만, 5월25~29일에는 ‘김동길’ ‘변희재’ ‘진중권’ ‘조갑제’ ‘지만원’ ‘김지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망자의 죽음을 보는 시각차와 이에 대한 누리꾼(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비언론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민주적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서거’라는 용어 사용 문제를 제기했다.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도 “형사피의자의 죽음을 서거로 취급하는 것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며 맞장구를 쳤다.

앞서 23일에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 ‘근조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 쿠데타로 헌정 파괴하고 수천억 검은돈 챙긴 이들을 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리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다….”

남을 공격하며 자신의 뜻을 밝히려는 비유는 곧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 1원도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 측근이 위험하다고 죽어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고 주장하면서 진 교수의 발언은 ‘이중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진 교수가 2004년 참여정부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등에 대해서 ‘시체 치우는 데 돈이 드니 자살세를 걷자’는 폭언을 하더니 이번 경우는 정반대다.”

글을 실은 ‘빅뉴스’ 서버는 다운됐다.

과거 글(‘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해야 한다’)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홈페이지가 다운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5월25일 다시 글을 올려 “테러를 당하더라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 않겠다. 비극의 책임은 노씨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군사전문가 지만원 씨는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몰아붙였다.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 운명을 다한 노사모들이 시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며…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역대 빨갱이들이 줄줄이 나와서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까불어대는 모습도 꼴불견들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방송이라는 무당들에 최면 걸려 돌아가는 굿판 공화국이 됐다.”

5월28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던 ‘생명과 평화’라는 명제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자살한 사람 빈소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 자살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생명포기에도 촛불인가. 그 촛불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김지하 시인의 칼럼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격화됐다.

대부분의 누리꾼은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반면 ‘진보 신문’에는 ‘이것은 정치적 타살입니다’ ‘2MB와 그의 충견 검찰’ 같은 감정적 글이 광고로 활자화됐고,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5월2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대통령의 공개 사과를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노무현을 죽였다. 노무현의 자살은 나로 끝내라는 마지막 항거”라며 현 정부를 직공(直攻)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죽은 자들이 노무현과 친노 정치인뿐이겠느냐”면서 용산 참사와 미네르바 구속, 정연주 전 KBS 사장 문제 등을 거론하고 노무현 죽이기와 진보개혁세력 죽이기가 연결돼 있다며 통탄했다. 임기를 3년 이상 남겨두고 있지만 실패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아냥거림도 잊지 않았다.

이에 맞서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지 않으면 역적이나 되는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언론을 비난한 뒤 “‘자살’ 대신 ‘서거’라 부르는 데 대해 비판한 글까지 매도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또 형사피의자가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것은 사법정의 구현을 불가능하게 만든 행위라며 자살을 미화하지 말라고 되받았다.

서울 덕수궁 앞에선 분향소를 마련하려던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이 연출됐지만, ‘제2의 촛불사태’를 염려하는 정부와 촛불을 지피려는 측 모두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분향소 옆에선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이 펼쳐졌고, MB와 정부를 규탄하는 연사들의 만민공동회식(式) 연설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탄핵 서명운동은 4월6일 한 누리꾼의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인터넷 이슈 청원으로 시작됐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온-오프라인에서 서명자가 부쩍 늘었다.

5월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소식은 갈등을 더욱 깊게 했다. 보수 진영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전면 중단하라는 강경 대응을 주문했고, 진보 세력은 정부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정권에서 통일부 중심의 대북 퍼주기 지원을 하는 바람에 핵개발 자금을 마련하게 됐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재평가하고 개성공단 사업도 즉각 중단하라.”(보수국민연합 기자회견)

“북한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음에도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한 것은 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한미 전략동맹 논리에 사로잡힌 사대주의 사고의 결과다.”(사회진보연대 기자회견)

WSJ, “한국 ‘좌우갈등’ 봉합 못하면 혼란”

이처럼 갈등이 심화되자 더 이상 ‘편 가르기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인터넷에는 ‘조문을 막지 말라’는 자성의 글과 ‘갈등을 끝내고 통합의 국민장을 치르자’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저항과 소요를 격화시켜 경제위기를 막 벗어나고 있는 한국이 다시 혼란에 빠질 우려도 있다”고 전망했다.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엄상윤 교수는 “갈등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전선을 확대시키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좌우갈등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돼 있다”며 원초적인 문제해결을 주장한다.

“진보 측에선 이번 서거 정국을 빌미로 크게 들고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좌우갈등은 남북문제와 연결돼 있어 늘 되풀이된다. 생각해보라. 좌우는 각각 안보와 통일,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파는 안보와 세계화를, 좌파는 통일과 민주화를 중시한다. 고정표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부딪치게 돼 있다. 따라서 이 네 가지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정책과 논리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양측의 갈등은 후세에도 영원한 숙제가 된다.”



주간동아 2009.06.09 689호 (p24~26)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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