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2009.06.09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 입력2009-06-03 18: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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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박경철</B><BR>의사

    ‘창의성’이 화두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특성’으로, ‘평범성’의 대립 개념이다. 그래서 ‘창의적이지 않다’는 말은 ‘평범하다’와 같고, 이때의 ‘평범함’은 종종 무언가를 축내기만 하는 ‘악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 대기업 회장은 ‘1만명을 먹여 살리는 1명의 인재론’을 설파했다. 교육계에서는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을 ‘창의성 교육’ 혹은 ‘열린 교육’이라고 불렀다.

    그 결과 집집마다 난리가 났다. 너도나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영재학교, 영재스쿨, 영재교육원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월성 교육’. 그 때문일까. 우리 교육에서는 제때 배우고,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힌다는 ‘학습(學習)’의 내밀한 의미가 어딘가로 증발했다. 교문 앞에 팽개쳐진 아이들은 학원에서 ‘빨리 배우되 어설프게 익히는’ 1차원적 ‘암기 기계’가 돼버렸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지 못한 이유가 정말 이런 창의성 부족 때문일까. 우리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본 적이 없다. 사실 결론은 극히 단순하다. 1·2·3차산업의 전개 과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상대적으로 다음 단계로의 전개가 빨랐던 나라들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평범성’으로 상징되는 숙련공보다 ‘비범성’으로 불리는 감각적 지식을 갖춘 이들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요즘 우리가 창의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 창의성 부족이 산업구조의 변화를 더디게 만든 것은 아니다. 선후의 인과관계가 틀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조류가 다수에게 비극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3차산업의 비중 증가는 ‘1만명을 먹여 살리는 1명’ 대신 ‘1만명이 먹을 것을 혼자 다 가져가는 1명’을 양산했다. 이는 사회의 양극화와 극단적 부의 불평등 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결국 창의성 혹은 수월성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생존 코드로 변해버렸다. 그 고유의 의미, 즉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특성’은 어느새 교육이상론자의 몽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온 게 전 세계적인 ‘통섭(統攝)’ 열풍이다. 수학 물리학 화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그럴수록 과학에 곤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생명의 탄생’은 설명할 수 없고, 태초의 출발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성장해온 과학자의 직선적 사고는 갈수록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를 돌파하려면 과학에 ‘머릿속의 실험실’, 즉 상상력이 더해져야 했다. 이미 발달한 1·2·3차산업에서도 그 다음을 대치할 4차산업의 지적도가 필요했다. 기존의 틀이 아닌 틀, 기존의 생각 범주를 벗어난 상상력이 그것이다. 과학이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도살해버린 철학이 부활하고, 양손에 전기톱과 중성자탄을 든 전문 경영인이 인문학을 말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이 지점에서 ‘통섭’이라 함은 그동안 따로 이야기되던 것들을 하나로 모아 매듭짓는 일을 가리킨다.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펴냄)이란 책이 탄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일견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천재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셸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저자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과학 수학 의학 문학 미술 무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했다. 그들의 발상법을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13단계로 나눠 논리정연하게 설명했을 뿐 아니라 직관과 상상력을 갈고닦아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이 책이 그래서 아쉽다. 창의력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사례연구와 분석을 통해 접근한 시도는 참신하다. 방대한 자료를 논증과 더불어 소개한 열정과 지적 가치도 인정한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나 경영전략서 양식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 ‘옥에 티’다. 이를테면 권력의 법칙이나 경영전략을 다루는 책들이 지니는 한계, 즉 촉류방통형(觸類旁通形) 집대성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대한 평은 호불호(好不好)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그럼에도 창의력을 주제로 이 정도까지 자료를 정리해 엮어낸 저자의 노고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의 탄생’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 이 책이 과연 창의적이냐는 난감한 질문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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