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카펫보다 더 붉은 드레스 전쟁 (下)

오스카 스타 잡으려는 총성 없는 싸움 … 전담팀 두고 1년 전부터 경쟁

  • 뉴욕=조 벡 광고기획자·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입력2009-04-16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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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펫보다 더 붉은 드레스 전쟁 (下)

    1 1997년 아카데미 레드카펫에서 디올을 입은 니콜 키드먼(왼쪽)과 남편 톰 크루즈.<br>2 랠프 로렌을 입은 기네스 팰트로. <br>3 베르사체로 우아한 모습을 보여준 코트니 러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 말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 자리한 코닥극장에서 열렸다. 81번째인 올해 시상식은 지난해 미국 작가협회(WGA : Writer’s Guild of America)의 파업으로 축소됐던 아쉬움을 푸는 듯 큰 규모로 열렸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화제는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한 8개 부문을 휩쓴 영국 출신 감독 데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였다.

    하지만 이 볼리우드(Bollywood)풍 작품만큼이나 전 세계의 이목을 주목시킨 뉴스는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 후보에 오른 세기의 커플, 일명 ‘브란젤리나’라 불리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의 레드카펫 위 투샷이었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의 전처이자 배우인 제니퍼 애니스턴까지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새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레드카펫에 나타나, 올해 아카데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가십이 생산된 해라는 평이 나왔다.

    당연히 전 세계 팬들과 패션업계 초미의 관심사는 그들 부부가 어떤 의상을 레드카펫 위에서 보여줄 것인가였다. 그 의상의 리스트는 시상식 당일 아침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을 만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날 브래드 피트는 오랫동안 그의 공식석상 슈트를 맡아왔으며 개인적으로도 막역한 사이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턱시도를 뒤로하고, 최근 ‘브리오니’에 이어 007 시리즈의 공식 슈트로 선정된 남성 슈트의 명품 톰 포드(Tom Ford)를 선택했다. 커프스와 넥타이핀, 반지 등의 장신구는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주얼리 브랜드 데이비드 유어먼(David Yurman)으로 마무리했다.

    시상식 당일까지 철저한 비밀



    안젤리나 졸리 역시 지난 몇 년간 그녀가 메인 모델을 맡았던 센존의 의상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뒤엎고, 최근 셀레브리티 사이에서 급부상하며 ‘할리우드 셀레브리티 드레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레바논 출신의 웨딩드레스 메이커이자 드레스 디자이너 엘리 사브(Elie Saab)의 블랙 새틴 드레스에 최근 비욘세, 제니퍼 로페즈 등 가수 출신 배우들이 즐겨 착용해 유명해진 로레인 슈워츠(Lorraine Schewartz)의 액세서리, 그리고 이탈리안 슈즈 메이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슬링백 슈즈에 미국 사교계 여인들의 필수품인 라나 막스의 클러치로 마무리해 이전의 와일드함을 버리고 최고로 우아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레드카펫 위 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브래드 피트의 전 부인, 제니퍼 애니스턴은 발렌티노의 흐르는 듯한 실버 드레스에 지미 추의 새틴 샌들을 신고 등장해 졸리의 블랙 컬러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카펫보다 더 붉은 드레스 전쟁 (下)

    4 2009년 톰 포드를 입은 브래드 피트와 엘리 사브를 디자이너로 낙점한 안젤리나 졸리(오른쪽) 부부.<br>5 발렌티노를 입고 졸리와 경쟁한 제니퍼 애니스턴(왼쪽). <br>6 레드카펫에서 늘 우아한 앤 해서웨이.

    얼마 전 창업자인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은퇴해 레드카펫의 성적이 다소 부진했던 발렌티노는 이번에 패셔니스타인 제니퍼 애니스턴의 오스카 드레스를 맡기 위해, 그녀만을 위한 패션쇼를 열어 수십 벌의 드레스를 제안하는 등 물량공세를 벌였는가 하면, 시상식 당일까지 그녀의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눈에 띄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레드카펫을 앞두고 패션 하우스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러브콜을 받게 된다. 레드카펫에 브랜드를 노출시키기 위해 사운과 명성을 건 한판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9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는 뜻밖의 증시 호황으로 소비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유행을 선도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매출도 급신장했으며, 광고 캠페인에 쏟아붓는 비용의 규모도 거대해졌다. 패션모델보다는 구매로 직결되는 파워에서 훨씬 앞서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에게 브랜드 홍보를 맡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1998년까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에게 1년에 겨우 한두 번 커버를 내주던 패션지들도 이후부터는 1년 열두 달 중 대부분의 커버에 할리우드 셀레브리티를 내세우게 됐다. 이런 결정을 내린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 아나 윈투어는 이런 추세를 한마디로 ‘오스카 열병(Oscar Madness)’이라고 표현했다.

    걸어다니는 할리우드표 패션 라벨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자신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19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무려 100벌 이상의 드레스를 입어봤다고 말했다. 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베르사체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어 각종 패션 매거진의 찬사를 받은 코트니 러브는 이전의 그런지(grunge)한 이미지를 벗고 우아한 여배우로 거듭나 이듬해 베르사체의 10쪽짜리 광고 캠페인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해 레드카펫에서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이끄는 디올의 압생트 그린의 새틴 드레스를 입은 니콜 키드먼은 이 한 장면으로 단숨에 패셔니스타로 등극, 여세를 몰아 2003년 샤넬과 700만 달러의 광고계약까지 맺으며 샤넬 No.5 향수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이 계약의 내용에는 니콜 키드먼이 참석하는 모든 일급 행사(각종 이벤트에서 아카데미 시상식까지)에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제작한 샤넬 의상을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한다는 ‘조건’(혹은 특혜)까지 포함돼 있었다.

    레드카펫 자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버금가는 큰 이벤트이자 패션 브랜드 마케팅의 장으로 바뀐 것이다. 각 패션 브랜드들은 레드카펫만을 위한 전담팀을 두고 있으며, 할리우드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나 PR 대행사들도 그들의 고객이 레드카펫에서 어떤 드레스를 입는 것이 좋을까 1년 동안 고민한다고 한다.

    모두가 꿈처럼 동경하는 아카데미의 후보자 배우들은 현재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희망하는 ‘걸어다니는 할리우드표 패션 라벨’이 되었다. 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내년에 가능성이 있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찾아나선 패션 브랜드들의 보이지 않는 구애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카펫보다 더 붉은 드레스 전쟁 (下)
    이 글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현재까지,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지금까지 여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입은 드레스와 그 드레스를 만들고 입히기 위해 노력해온 패션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 ‘레드카펫 : 패션, 아카데미 시상식을 만나다’(브론윈 코스그레이브 지음, 조벡 번역, 동서교류 펴냄, 근간)의 내용에 근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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