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4

2009.02.24

소주 삼킨 롯데, 맥주로 입가심?

롯데 ‘처음처럼’ 발매 전국서 판촉전… OB맥주 인수 땐 ‘주류 왕국’

  • 정효진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wiseweb@donga.com

    입력2009-02-19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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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 삼킨 롯데, 맥주로 입가심?

    2월 말부터 소주 ‘처음처럼’의 제조원이 두산주류에서 롯데칠성음료로 바뀐다.

    소주 ‘처음처럼’을 인수한 롯데그룹이 최근 롯데자이언츠 홈구장인 부산 사직야구장에 설치돼 있던 이 지역 자도주(自道酒) 무학소주의 광고판을 철거했다. 롯데가 소주시장 공략에 나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소주에 이어 OB맥주 인수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롯데가 2009년 주류업계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1월 초 두산주류를 인수한 롯데칠성음료는 두산주류가 만들던 ‘처음처럼’의 제조원을 2월28일부터 롯데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소주 사업을 시작한다. 롯데는 롯데소주 탄생을 계기로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전국 규모로 펼쳐나가고 있다.

    롯데는 롯데칠성음료, 롯데제과, 롯데삼강 등 식음료 및 주류 회사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등 다양한 유통 체인을 보유한 국내 최대 유통·식음료 그룹이다. 롯데는 기존 계열사들의 막강한 전국 유통망을 활용해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롯데의 등장에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진로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처음처럼’이 출시되기 직전인 2006년 1월까지만 해도 진로의 서울지역 시장점유율은 90%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서울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하락해 현재는 78%대에 머무르고 있다. 롯데는 국내 식음료 시장의 40%를 차지한 거대 업체인 만큼 전국에 퍼진 유통망을 활용,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해갈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전국 동네 슈퍼마켓에 롯데 상호가 달린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안 들어간 곳이 없지 않냐”며 “진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고 평했다.

    막강한 유통망 활용, 진로 바짝 긴장



    수도권 소비자들에게는 진로와 두산 정도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국내 소주회사는 모두 10곳이다. 해당 시·도에 속한 주류 도매상들이 지역 내 제조사 소주를 구매량의 50% 이상 사들이게 하는 ‘자도주 구입제도’는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폐지됐지만, 애향심에 호소하는 지역 소주회사들은 각 지역별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가 소주시장에 진출한 이상,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 등 수도권 지역뿐 아니라 지방 소주회사들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해졌다.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처음처럼’의 점유율은 각각 0.47%, 0.57%에 불과한 반면 대선주조와 무학은 82%, 73.9%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한화증권 박종록 연구원은 “이 지역의 시장점유율이 미미하다는 것은 그만큼 확대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며 “롯데는 막강한 유통력을 바탕으로 한 저비용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주 삼킨 롯데, 맥주로 입가심?

    두산주류 인수로 롯데칠성음료의 술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한층 강화됐다. 소주는 물론 ‘군주’‘국향’ 등의 전통주, 두산와인이 수입하는 650여 개 품목의 와인도 포함된다.

    ‘처음처럼’을 삼킨 롯데가 OB맥주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OB맥주 대주주인 벨기에 맥주회사 인베브가 매각 주간사인 JP모건과 도이치뱅크를 통해 롯데칠성음료를 비롯한 3, 4개 사모투자 펀드에 매각 안내문을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베브가 지난해 7월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안호이저 부시사(社)를 인수한 뒤부터 OB맥주 매각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롯데 측에서는 OB맥주 인수전 참여 여부에 대해 공식 부인했지만, 롯데칠성 정황 대표는 최근 두산주류 인수 계약 당시 “OB맥주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롯데가 OB맥주 인수에 성공한다면 소주는 물론 맥주, 위스키, 와인, 전통주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주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반대로 진로-하이트그룹에게는 소주에 이어 최악의 시나리오라 할 만하다. 현재 국내 맥주시장은 양강체제로 하이트맥주와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은 6대 4 수준이다. 롯데가 OB맥주 인수에까지 성공한다면 위스키, 소주, 와인 등 기존 주류사업과 함께 여러 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는 두산주류 인수로 소주 ‘처음처럼’ ‘산’ ‘그린’을 비롯해 전통주 ‘국향’ ‘군주’, 포도주 ‘마주앙’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게 됐다. 위스키 시장에서 롯데칠성의 스카치블루 시장점유율은 18%로 업계 3위다. 롯데칠성이 지분 85%를 보유한 롯데아사히주류 역시 국내 수입 맥주시장에서 밀러, 하이네켄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와인·위스키 시장에서도 질주

    또 롯데는 와인업계에서 가장 많은 품목을 보유한 두산와인을 통해 다양한 와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두산와인은 ‘마주앙’ ‘카르멘’ ‘반피’ ‘산타 리타’ 등 135개 브랜드에서 생산되는 총 650여 개 품목을 취급하며, 롯데아사히주류는 ‘옐로우 테일’ ‘산 펠리체’ 등 세계 13개국 280여 종의 와인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결국 이 둘이 합쳐질 경우 와인 품목 수만 무려 930여 개에 이른다. 이는 업계 최대 규모. 업계 1위인 금양인터내셔날의 지난해 매출은 600억원으로 롯데아사히주류의 와인부문 매출 200억원과 두산주류 와인사업부의 매출 430억원이 더해질 경우 매출규모 면에서 금양인터내셔날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와인 수입업체들은 롯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와인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가 와인 직소싱 회사를 세운 데 이어 호텔, 백화점, 대형 마트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보유한 롯데가 와인시장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내 와인시장 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한편 롯데 측은 “현재로서는 와인사업의 구체적 방향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며 “와인사업부의 통합 여부 역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다음 달 초까지 두산주류 인력을 서울 강남에 새롭게 마련한 사옥으로 옮기고, 그룹 내 주류사업 시너지를 위해 롯데아사히주류와 롯데칠성의 위스키 브랜드 스카치블루 사업부도 같은 건물에 입주시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0일 발표된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롯데주류BG 신임 대표이사로 ‘두산맨’인 김영규(56) 두산주류BG 부사장이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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