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4

2009.02.24

당신 숨소리 조사하면 다 나와!

일거수일투족 기록 이미 빅 브라더 세상 … 한 사람 일생 기록기 등장 전망도

  • 류현정 전자신문 기자 dreamshot@etnews.co.kr

    입력2009-02-1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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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숨소리 조사하면 다 나와!
    “당신은 오늘 오전 8시8분에 출근했고, 오후 3시30분에는 직장 옆 한강사우나에 갔지요. 당신의 아들은 5시 정각에 학원에 도착했답니다. 아이고, 당신 뭡니까. 아내에게는 오늘도 야근한다고 앓는 소리 하고는 오후 6시28분에 강남 가는 9951번 버스를 탔잖아요.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었나 보네요. 밤 10시30분 목로주점에서 카드를 긁은 걸 보니.”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있다. 직장의 출근시스템, 폐쇄회로(CC)TV, 버스카드, 신용카드, 휴대전화 통화, 위성항법장치(GPS), 인터넷TV, e메일, 블로그, 캐시포인트 카드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세상은 당신의 동선을 시시각각 따라잡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14명당 1대꼴)를 설치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 런던에서는 1인당 하루 평균 300번씩이나 무인 카메라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미 기록의 수준은 당신의 상상을 넘어선다. 택시에도 ‘블랙박스’가 등장했다. 차량운행 영상기록 장치를 장착한 택시가 점차 늘고 있다. 각종 사건 사고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설치된 블랙박스는 영상과 대화 내용은 물론 주행속도,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정보, 위치 정보를 수시로 저장한다. 그야말로 ‘조사하면 다 나온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

    개인은 감시만 당하는 존재는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누군가를 감시할 수도 있다. 요즘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학원 출결 사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생이 학원의 지문인식 시스템을 통과하면 해당 부모의 휴대전화로 ‘○○○ 학생이 학원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자동 전송된다. 또 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나가면 ‘○○○ 학생이 수업을 마쳤다’는 메시지가 부모한테 전해진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부모 안심 서비스’로 인기가 높다.

    구글,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들이 앞다퉈 제공하는 디지털 지도 서비스는 한 개인이 국가 정보요원 수준의 위치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줬다. 지도 서비스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선 ‘다음’은 지난 1월 50cm급 고해상도 항공사진으로 보여주는 ‘스카이뷰’와, 지도를 클릭하면 실제 거리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보여주는 ‘로드뷰’를 출시했다. 스카이뷰가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광경이라면, 로드뷰는 자동차를 타고 시내 도로를 주행하며 본 풍경을 전해준다. 지도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다음은 ‘대한민국을 스캔한다’는 표어를 내걸었다. 이 도발적인 메시지는 일반인이 접하는 정보 수준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잘 보여준다. 생생한 화면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다. 국정원은 다음 지도서비스의 사람 얼굴과 자동차 번호를 지워줄 것을 요청했다.



    당신 숨소리 조사하면 다 나와!
    미래 ‘황금알’로 주목받는 위치 정보

    흥미로운 점은 사람의 흔적이 돈이 된다는 것이다. 동선 및 위치 정보와 디지털 지도는 다양한 정보기술(IT) 기기와 결합해 위력을 발휘한다. 휴대전화와 결합한 위치기반서비스(LBS)는 독거노인이나 치매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거나, 어린이 유괴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 연쇄살인범 피의자 강호순이 검거된 뒤 위성과 기지국을 이용한 KTF와 SK텔레콤의 안전·신변보호 관련 부가서비스는 5∼30배까지 늘었다. KTF의 ‘아이러브 요금제’의 경우 월평균 신규 가입자 수가 600~700명인데,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마치고 검찰로 송치되던 이틀 사이에만 3600여 명이 가입했다. 이 요금제를 선택하면 부모가 1일 최대 24회까지 아이의 위치를 문자메시지로 받아볼 수 있는 부가서비스가 가능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구글맵을 탑재해 휴대전화 사용자 주변의 피자집 정보와 전화걸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등장했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는 지도 서비스 ‘노키아맵스’와 포털 서비스 ‘오비’를 통합해 실시간 교통 정보, 관광 명소, 사용자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이벤트 및 영화 정보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구글, 네이버 등 검색시장을 쥐고 있는 인터넷 업체들이 지도에 잇따라 투자하는 것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검색시장이 위치 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진화하는 CCTV 동영상 시스템

    강호순 체포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이 CCTV 장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강호순을 잡았던 CCTV는 메가픽셀 동영상을 제공하는 고성능이다. 수십만원∼수백만원 하는 CCTV와 달리 대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며 고화질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물 식별에 큰 도움을 준다.

    조만간 CCTV는 특정 위치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닌, 개인이 들고 다니는 동영상 시스템으로 진화할 조짐이다. 성폭행 위협에 처한 여대생이 휴대하고 있던 소형 영상기록장치의 비상벨을 누르면, 범인의 얼굴이 찍힌 동영상과 현재 위치가 부모 휴대전화로 전송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10분 내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것이다.

    10년 뒤에는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하는 기기, 일명 ‘메멕스(Memex)’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신이 한 말, 만난 사람, 당신의 동선이 모두 기록되며 검색된다. 회의시간에 나온 이야기, 친구가 커피를 마시며 해준 좋은 이야기, 당신이 TV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도 나중에 찾아볼 수 있다. 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은 눈으로 보는 모든 영상을 수집하고, 목걸이에 부착된 마이크와 GPS는 소리와 위치 정보를 모은다.

    당신 숨소리 조사하면 다 나와!
    우리 스스로 불러낸 빅 브라더

    각종 지도서비스의 사생활 침해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음의 로드뷰나 구글의 스트리트뷰에서는 온갖 사생활이 포착된다. 경찰관에게 검문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다투고 있는 듯한 남녀 사진 등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선 이러한 지도 서비스 때문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나왔다.

    최근 인도 법원에는 구글어스 사용을 금지하는 탄원서가 제출됐다. 구글어스 위성사진이 전 세계가 경악한 인도 뭄바이 테러 계획에 사용됐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테러범은 위성사진을 이용, 뭄바이 시내의 거리와 표적지를 익혔으며 정교한 GPS로 해외에서 인도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서울 강남역을 지나가면 휴대전화로 부근의 피자업체, 피부관리실, 미용실에서 날아온 쿠폰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마케팅 공세에 시달릴 수도 있다. 내 위치를 파악한 마케팅 공세는 매일 아침 접하는 스팸메일 이상의 공해일 수 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인류는 개인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지만, 기술의 편리함과 신변 보호 등을 이유로 다시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스스로 불러낸 ‘빅 브라더(감시자)’를 상대로 싸워야 할 것이다.

    통합형사사법체계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서울 서초서 손영조 경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주민등록번호에 모든 정보가 집중돼 있어 다른 나라보다 해킹이나 사생활 침해 우려가 높다”면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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