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4

2009.02.24

“골목길 통행료 내라!”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간다

경매로 취득 후 잇따른 사용료 소송 … ‘배타적 사용수익권’ 포기 여부가 쟁점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2-19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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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통행료  내라!”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간다

    사용료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된 서울 성북구 종암동 25-26번지 골목길.

    “아니, 30년을 아무 일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골목길 통행료를 내라고 하네요.”

    서울 성북구 종암동 25-26번지 일대에 뜬금없는 골목길 사용료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가 되는 도로는 20m 남짓한 길이의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주택 사이의 골목길. 1977년 종암동 25-1호가 주택단지로 조성되면서 33필지의 토지로 분할되고 남은 토지가 자연스레 도로로 사용돼온 곳이다. 30년간 사실상의 도로 노릇을 해왔지만 등기부등본에는 대지로 등기돼 있다. 필지 분할 뒤 기부 체납이나 이전등기를 해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 조치가 없었던 것. 이후 원소유자가 채무를 갚지 못하자 이 골목길이 경매에 나오게 됐다.

    지난해 6월 인천의 한 부동산회사가 이 땅을 싼 가격에 구입하면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이 불거졌다. 회사 측은 골목길에 대한 내용증명서를 주민들에게 보내면서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소유하게 된 땅인 만큼 주민들이 골목길에 해당하는 토지를 지분으로 취득하거나 가구당 매달 67만4000원의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30년 살아왔는데 날벼락”

    주민 정유정(43) 씨는 “이전 소유권자들도 이 골목길을 도로로 사용하는 데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청에서 이 골목길에 아스콘 포장을 하고 상하수도, 도시가스, 소방도로를 설치할 때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당연히 도로라고 생각한 땅이 대지로 등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놀랐다. 성북구가 개설한 도로를 주민으로서 사용하는 것뿐이니 소송을 제기하려면 구청을 상대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동산회사 측의 태도는 단호하다. 이 회사 권모(59) 대표는 “30년이 아니라 100년이 됐더라도 엄연히 그 골목길에 대한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하는 것이 잘못이냐”며 “그동안 한 푼의 부담도 떠안지 않고 지냈다면 지금부터라도 사용료를 물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근 이렇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땅만 찾아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도로의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대부분 감정가 자체가 낮기 때문에 경매로 나오면 낙찰받은 뒤 지방자치단체 측에 수용하든가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개는 경매 취득 후 구청을 상대로 도로 사용료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만, 종암동 골목길 사례의 경우 소유권을 취득한 자가 주민을 상대로 해당 토지를 취득하거나 토지 사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북구 관내에만 도로를 둘러싼 사용료 분쟁이 15건에 이른다. 현재 소송이 제기돼 1심이 진행 중인 곳은 장위동 종암동 정릉동 보문동 석관동 등 8곳이며 2심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도 7건이다. 성북구청은 2008년 한 해만 사용료 명목으로 3억2000여 만원의 예산을 마련해야 했다. 성북구뿐 아니라 종로구 중구 등 역사가 오래된 구에서도 비근한 사례가 많다.

    공직에서 토지 관련 담당 업무를 하다가 퇴직한 뒤 이런 땅만 골라 구입하거나 소유자들도 모르는 땅을 변호사들이 찾아와 들쑤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토해양부 산하단체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뒤 작은 부동산회사를 차린 A씨는 “업무를 처리하다 이런 땅을 보면 ‘사용료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경매 절차를 통해 구입하는 것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변호사들 역시 사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돈이 된다면 소송부터 부추기기 일쑤다.

    한편 종암동 골목길 분쟁과 관련해 성북구청은 애초 택지 분할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민사 간의 분쟁일 뿐”이라며 관망하는 자세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토지 소유권자가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나설 수는 없다”며 “다만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협조와 행정지원을 적극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재산권 행사냐, 억지냐 ‘법정 싸움’

    택지가 분할돼 도로를 내야 하는 경우 도로를 만들어 기부 체납을 하거나 택지 분할 때 도로도 분할해 택지와 함께 구입하게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도로에 대한 이런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이를 둘러싼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30년 전만 해도 제도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다. 주인들도 땅을 무상으로 쓰라고 했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대부분 다툼이 생긴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도로들을 구청에서 모두 사들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예산에 한계가 있다 보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구청의 소극적인 대응에 주민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다. 주민 김죽향(57) 씨는 “구청에서는 현재의 주인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이 골목길에 대해 재산세를 부과하거나 다른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도로로 사용하게 했다”며 “이 도로 외에는 인근 주민들이 진·출입할 다른 길이 없는 만큼 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 해결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회사 간의 두 번에 걸친 조정이 결렬됨에 따라 골목길 통행료 징수는 법정 싸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재판에서는 소유권자가 배타적 사용수익권을 포기했는지, 문제가 되는 길이 사실상 도로로 사용됐는지 등이 사용료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실제로 토지 소유권자가 은평구를 상대로 낸 토지사용료 소송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 보유 기간, 나머지 토지를 분할해 매도한 경위와 규모, 도로로 사용되는 당해 토지의 위치나 성상, 인근 다른 토지들과의 관계, 주위 환경 등 여러 사정과 아울러 분할 및 매도된 나머지 토지들의 효과적인 사용, 수익을 위해 당해 토지가 기여하는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판단해야 한다. 토지 소유자가 토지를 분할해 매도하면서 중앙에 자리한 토지를 남겨둔 부분이 분할 매도된 나머지 토지들로부터 공로에 이르는 유일한 통행로로 사용돼온 경우, 소유자가 남겨진 토지 부분의 사용수익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사용수익권 행사와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요지 : 법원은 토지 소유 경위, 보유 기간, 인근토지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유자가 남겨진 토지의 사용수익권을 포기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정당한 재산권 행사냐, 수익을 노린 억지냐. 결론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제2, 제3의 골목길 통행료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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