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야당 사퇴 요구 아직도 이해 못할 일”

김석기 前 경찰청장 내정자 갑작스런 퇴진, 청와대 압력설 부인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야당 사퇴 요구 아직도 이해 못할 일”

“야당 사퇴 요구 아직도 이해 못할 일”
큰눈과 큰 귀, 큰 머리, 밝은 미소, 오른쪽 가슴에 천칭을 달고 두 팔을 활짝 벌린 ‘포돌이’ ‘포순이’는 경찰의 마스코트다. 큰 눈으로 전국 구석구석을 살피고, 국민의 목소리에 큰 귀를 기울이며, 늘 친절하고 밝은 미소로 국민을 대하겠다는 경찰의 의지를 담았다. 큰 머리는 21세기 선진 경찰을 의미한다.

이 마스코트를 만든 주인공이 김석기(55·사진) 전 경찰청장 내정자다. 그가 경찰청장에 올라 만들고자 한 경찰상(像)이 바로 포돌이, 포순이였다. 하지만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31) 경사와 농성 참가자 5명 등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저는 오늘 용산 사고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 내정자와 서울경찰청장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비롯해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저 개인의 진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사퇴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민주당, 당사 점거 땐 바로 특공대 요청

2월10일 오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사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김 전 내정자는 비통한 표정으로 사퇴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지 23일 만의 일이다. 김 전 내정자는 사퇴회견문을 읽은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없이 곧바로 자리를 떠 대전 현충원으로 향했다. 현충원에 안장된 고(故) 김 경사의 묘역을 참배한 뒤 경찰특공대에 들러 사기가 떨어진 대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용산 사고의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지만, 자신의 오랜 꿈을 눈앞에서 접는다는 게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터. 더욱이 노무현 정권 때 경찰종합학교장으로 밀려났다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승승장구하던 그가 아닌가. 그는 현 정권 출범과 동시에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올랐다가 6개월 만에 경찰청장에 내정됐다. 고속 승진 끝의 급전직하가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 듯하다.

사퇴 하루 전날인 2월9일 저녁, 그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 갑작스레 사퇴 기자회견을 준비시킨 배경에 대해 경찰청 안팎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의 사퇴 배경에 청와대의 압력은 없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을 풀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 11일 오후 어렵사리 김 전 내정자와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먼저 현충원을 다녀오는 승용차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용산 사고로 여섯 사람이나 귀한 생명을 잃은 것은 정말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냥 여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 안 된다. 김남훈 경사는 국민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것이고, 나머지 분들은 경찰을 향해 시너를 붓고 화염병을 던지다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의미가) 어찌 같을 수 있는가.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김 경사 아버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드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아드님은 훌륭한 경찰이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김 경사의 죽음이 결코 헛돼서는 안 된다. 용산 사고가 불법 폭력시위가 사라지는 전기가 됐으면 한다. 현충원에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묘소도 있다. 그분은 나에게 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 바치는 올바른 경찰의 길을 가달라고 당부하셨다. 장인어른 묘소에도 들렀는데, 그 말씀이 생각나 눈물을 많이 흘렸다.”

-2월9일 저녁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 사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사실 하루 전날인 8일 청와대 관계자를 만났다. 그때 이미 청와대에 사퇴 의사를 전했다. ‘지금 국회가 어렵다. 국회에 나의 인사청문회를 요청하면 야당은 당연히 보이콧할 테고, 그럼 국회 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하루빨리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고 경제 살리기에 온 국민이 힘을 쏟아야 할 때에 나 한 사람의 거취를 두고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나라를 위해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9일 용산 사고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청와대 관계자를 다시 만나 사퇴 의사를 정식으로 전했다. 다만 조용히 물러나는 게 아니라 기자회견을 통해 나의 바람을 국민에게 분명히 밝히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 측으로부터 자진 사퇴 요구를 받은 적은 없나.

“어느 누구도 사퇴를 요구한 적이 없다. 청와대 측은 그냥 내 의견만 듣고 있었다. 나도 고위 공직자다. 경찰 조직이나 선후배들만 생각했다면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잘못되는 게 뻔히 보이는데 나와 경찰만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결단을 내렸고,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청와대에 전했다.”

-기자회견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연락은 없었나.

“없었다.”

-김 전 청장이 경찰청장에 내정됐을 때 TK(대구·경북) 편향 인사라는 지적이 많았다(김 전 청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대구 대륜고와 영남대를 나왔다). 이 대통령과 친형 이상득 의원의 신뢰 때문에 승승장구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30년 경찰생활을 하면서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다. 경찰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왔다. 노무현 정권 때 경찰종합학교장을 마지막으로 (경찰생활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정권 들어와서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것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편향 인사라는 평가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만스럽다.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온 뒤에도 누구와 ‘코드’를 맞춘 적이 없다. 소신을 지켜왔다. 법과 원칙대로 일했을 뿐이다.”

-용산 사고 이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경찰청장 내정자의 자진 사퇴 요구가 끊이지 않았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다. 그 사람들 말로는 6명이나 사망했으니 사퇴하라는 것인데, 그럼 경찰이 불법 과격 시위를 방조해야 하는가. 사고현장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다. 달리는 버스와 택시 앞으로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았나. 버스 안으로 화염병이 날아들어 사람들이 다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과잉 진압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나.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이 2000년 민주당사 총재실을 점거한 적이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를 겸해 사무실이 비어 있었는데도 민주당은 2시간도 안 돼 경찰특공대 투입을 요청했다. 일반 시민들이 다칠 염려가 없는 빈 사무실이었는데 말이다. 특공대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부대다. 화염병 정도는 제압할 수 있는 장비와 능력이 있다. 농성자들이 그들에게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벌어져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청장을 물러나라고 한다면 어떤 청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언제 벌어질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책임을 다할 수 있겠는가. 당리당략에 따른 여론몰이식 퇴진 요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경찰청장이 됐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텐데….

“서울경찰청장 사무실에 붙은 슬로건이 ‘불법에는 강력한 경찰, 선량한 시민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한 경찰’이다. 선량한 시민은 물론, 범법자에게도 따뜻하게 대하는 경찰상을 만들고 싶었다. 다만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암적인 존재인 조직폭력배, 화염병과 염산병을 무차별적으로 던져대는 불법 폭력시위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해 선진 시위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지금 심경은?

“담담하다. 이번 일이 법질서 확립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고, 후배 경찰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갑작스레 그만두게 돼서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다.”



주간동아 2009.02.24 674호 (p34~3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