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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넘버5에 맞는 대접” VS “유통강자의 보복극”

롯데 내 샤넬 화장품 매장 7곳 철수 그 후 … 끝나지 않은 자존심 대결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넘버5에 맞는 대접” VS “유통강자의 보복극”

“넘버5에 맞는 대접”  VS  “유통강자의 보복극”

‘고품격’ 서비스를 내세워 오픈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1월29일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영등포점, 부산점 등에 입점한 샤넬의 7개 화장품 매장이 철수함으로써 롯데와 샤넬이 사실상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제는 롯데와 샤넬의 갈등이 얼마나 커질지, 또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가 업계의 관심사다.

지난해 9월 말 롯데가 매출 부진을 내세워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샤넬 일부 화장품 매장에 위치조정 명령을 내렸고, 샤넬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매장을 철수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간동아’의 첫 단독보도 이후 급물살을 탄 양측의 줄다리기가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게 된 셈(주간동아 655호 참조). 현재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나머지 18개 샤넬 화장품 매장과 3개 패션 부티크의 ‘거취’에 대한 업계의 전망 역시 엇갈리고 있다.

매장 철수라는 극단적 결과를 내놓기 직전까지 양사는 치열하게 협상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브랜드 정책상 ‘노코멘트’로 일관하던 샤넬 측이 적극적 대응과 해명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도 이례적이었다.

치열한 협상 과정서 자존심 긁어

유명 명품업체 임원 출신인 한 프랑스인 경영 컨설턴트는 1월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명품업체와 유통업체 간 갈등에서 협상 당사자끼리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만을 내걸며 줄다리기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며 “이번 사태에는 감정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샤넬 측이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것도 “롯데 측이 패션 매장 입점을 둘러싼 갈등을 화장품 부문으로 옮긴 뒤 매출 하락을 빌미로 언론 플레이를 한 점”이다.

한편 롯데 측은 협상 과정에서 샤넬 측이 ‘이중 플레이’를 했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샤넬이 매장 철수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 ‘수수료를 업계 수준에 맞추겠다’는 등의 수정 제안을 보내와 매장 정상화와 관련된 합의문을 내려던 찰나, 매장 철수 보도자료를 보내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샤넬이 매장 철수 예정일인 29일 당일에도 철수를 유예해달라며 앞으로의 협조 방침을 구두로 제안했으나 이를 문서로 달라는 롯데 측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막판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샤넬을 센텀시티점에 입점시키려다 실패하자 영남권 내 다른 신규 매장 입점 등의 또 다른 ‘카드’를 롯데 측이 내민 것으로 안다”며 “이 ‘카드’에 대한 협상 결과가 화장품 매장 정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뻔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도 양측의 해명은 여전히 엇갈린다. 샤넬은 1월20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센텀시티점에 입점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 롯데는 샤넬 측에 7개 화장품 매장의 이전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르지 않자 결국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롯데에서의 일부 샤넬 화장품 매장 퇴출이 부산 센텀시티 입점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음을 못 박은 셈이다.

샤넬 관계자는 “화장품 부문은 지난해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인 만큼 매출 하락은 어불성설인 데다, 매일 모든 브랜드의 매출을 체크하는 백화점 측이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매출을 문제 삼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1월25일 찾은 부산 해운대의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에는 ‘에비뉴엘’로 이름 붙인 1층, 2층 매장에 루이비통, 디오르, 구찌 등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디오르 옴므(남성복 매장)가 개점 준비 중이었다. 이곳에서 불과 수 미터 떨어진 거리에는 3월 오픈을 앞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넘버5에 맞는 대접”  VS  “유통강자의 보복극”

1월29일 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철수한 샤넬 화장품 매장. 제품 재고와 광고 패널을 모두 정리해 썰렁해진 모습이다.

엇갈린 해명 감정싸움 양상

샤넬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비즈니스 원칙상 샤넬 매장 주위에 어떤 브랜드들이 들어오는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며 “롯데가 (샤넬에 필적할 만한) 다른 명품 브랜드들을 유치하기까지 6개월 넘게 기다렸는데도 진전이 없어 규모가 더 크고 더 많은 명품 브랜드를 유치한 경쟁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영업면적은 8만2645m²(약 2만5000평)로 아이스링크 골프장 등의 부대시설을 포함하면 12만5600m²(약 3만8000평)다. 백화점 면적만 놓고 보면 롯데 센텀시티점의 2~2.5배.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에서의 샤넬 매출 규모를 고려해 신세계보다는 롯데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한 롯데 관계자들의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좌 루이비통’, ‘우 샤넬’ 입점을 성공시킴으로써 서울 소공동 명품관 ‘에비뉴엘’에 이어 다시 한 번 명품관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려던 계획을 경쟁사에 뺏긴 것이 롯데를 자극하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롯데백화점 주장은 이와 크게 다르다. 롯데 측은 화장품 매장 철수 사태가 샤넬 부티크의 신세계 입점에 따른 보복 조치가 아니라, 화장품 매출 하락에 따른 공정한 조치였다며 선을 그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샤넬 화장품 매장은 백화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데 비해 매출은 계속 5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으며 매출 효율도 경쟁사의 70%대에 그쳤다”면서 “‘넘버5’는 ‘넘버5’에 맞게 대접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앞으로 해외 명품 브랜드라고 특혜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품업체와 백화점 간 ‘파워 게임’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명품업계 전문가는 “국내 백화점들이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명품 입점 전쟁을 펼치면서 현재의 각 백화점 명품관이 탄생했다”며 “명품관 성공 기준을 어떤 브랜드를 입점시켰는지로 판단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치 경쟁이 붙은 ‘A급’ 명품들에 대한 특혜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이렇게 갑을 관계가 형성된 ‘A급’ 명품업체와 백화점이 각기 ‘브랜드 가치 수호’와 ‘고급화’라는 브랜딩 전략을 구사하는 가운데 충돌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명품업계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갈등 과정에서 롯데가‘갑’으로 군림해온 주요 명품 브랜드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나름의 소득을 얻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향후 다른 명품 브랜드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또 다른 소득으로 꼽았다. 또한 샤넬은 비즈니스‘골든룰’ 중 하나인 ‘최고 위치에 입점’ 조건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명품 브랜딩’의 원칙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렇게 원칙을 고수한 것이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특히 양사 간 갈등이 패션 부문으로까지 번질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명품업계 전문가는 “패션 부티크마저 철수할 경우 롯데의 VIP 고객들인 ‘MVG’ 고객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샤넬 마니아들이 다른 백화점으로 이탈할 수 있으며, 롯데로서는 약 10년간 지속한 ‘점격향상(VIP 유치 및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관리)’ 프로젝트를 일부 포기하는 셈이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편 현재 롯데를 통해 화장품 매출의 약 40%대를 거둬들이고 있는 샤넬은 20~30% 이상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보게 됨은 물론, 앞으로 유통과 관련해 국내외 대형 프로젝트를 앞둔 ‘빅 파트너’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매장 철수 범위가 확대되면 민주노총 산하 서비스연맹에 가입한 판매사원 노조의 반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인터넷 ‘다음’카페에 개설된 샤넬노동조합 카페에는 “일부 매장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진 퇴사 등 사실상의 해고 통지를 받았다”며 “정규직에까지 확대될까 불안하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넘버5에 맞는 대접”  VS  “유통강자의 보복극”

2007년 말 문을 연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오른쪽)과 올 3월 오픈하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하철 센텀시티역 지하로 연결된 두 백화점 위치도.

“유통 - 브랜드 두 강자 결국 화해해야”

증권가에서도 갈등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유통담당 애널리스트는 “샤넬 화장품이 스킨케어 라인에 비해 소비자 충성도가 낮은 색조 제품이 강하다는 점을 들어 고객 이탈이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샤넬의 패션 부티크까지 철수하면 롯데 명품관의 ‘품격’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며 이것이 주가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애널리스트 중 다수가 “그동안 명품 브랜드들에 끌려다닌 백화점이 비정상적 역학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는 가운데,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샤넬 고객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결국 롯데 측이 더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라는 시각도 감지됐다.

‘럭셔리브랜드 경영’의 저자인 프랑스 파리 도핀대 미셸 슈발리에 교수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샤넬의 충성 고객들은 롯데를 떠나 다른 백화점으로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샤넬은 단기간에 매출을 절반가량 회복할 수 있는 반면, 롯데는 샤넬이 발생시킬 수 있는 매출의 100%를 잃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두 업체 간 갈등은 어떻게 봉합 또는 확대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양사 모두 확전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지만 최악의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 역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품 업체 고위 간부로 유럽 아시아 지역에서 근무한 슈발리에 교수는 “과거 다른 사례들을 놓고 볼 때 양사 간 갈등은 화해로 마무리될 것”이라며 “유통사-브랜드 간 역학관계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국가들에서도 빈번히 발생하는 일인 만큼, 샤넬이나 롯데 모두 이를 위기가 아닌 협상의 한 과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양사의 결정권자들이 문제 해결에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결국 상생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9.02.10 672호 (p54~56)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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