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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질주냐 후진이냐 [현대·기아車] 그것이 문제로다

세계 유명 자동차들 감산·감원 확산 “노조서 도와주면 세계 5위권 진입 기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질주냐 후진이냐 [현대·기아車] 그것이 문제로다

질주냐 후진이냐 [현대·기아車] 그것이 문제로다

2009년 1월 세계 유수의 차들을 제치고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된 ‘제네시스’.

도요타 1500명 해고’ ‘제너럴모터스(GM) 2000명 감원’….

설날인 1월26일 세계 1, 2위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와 미국 GM은 연이어 감원과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GM은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의 2개 조립공장에서 2000명의 직원을 감원하고 북미 9개 조립공장이 일시 휴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도요타도 “3000명의 비규정직 직원을 올 여름까지 해고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확정했다. 도요타는 올해 안으로 도요타 전체 공장의 비정규직 6000명을 모두 내보낸다는 방침. 전 세계 자동차업계 근로자가 우려하던 ‘피의 1월’ 시나리오는 어김없이 실행에 옮겨졌다.

‘피의 1월’은 2008년 하반기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예고됐다. 지난해 10월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매실적은 전년 동월보다 31.9%나 줄었다. 이런 충격적인 판매량 감소는 그간 미국의 인구증가분을 감안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후 더욱 악화돼 지난해 말과 올 들어선 수치를 계산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판매량이 줄고 있다.

GM 날개 없는 추락, 도요타 신화 몰락

이렇게 되자 신용평가기관과 기업분석가들은 미국 자동차업계의 신용등급을 일률적으로 CCC+로 하향 조정했고 사실상 ‘독자적 회생이 어렵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미국 자동차업계 빅3(GM, 크라이슬러, 포드) 중에도 2007년까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 판매 1위를 달리던 GM의 추락이 가장 눈에 띄었다. 도이체방크는 GM의 2009년 목표 주가를 ‘0달러’로 낮춰 잡았다. GM은 미국 정부로부터 134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여전히 부도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전무후무한 세계적 자동차업체의 판매 급감은 감산과 구조조정으로 직결됐다. GM은 북미 공장의 30%를 폐쇄했고, 크라이슬러는 북미지역 공장 중 30개의 가동을 중지했다. 미국 자동차업계 전체의 1월 중순 현재 감원 수는 2만명을 웃돌고 있다.

유례없는 글로벌 경기불황은 ‘적자와 해고가 없는 직장’이라는 ‘도요타 신화’조차 단번에 무너뜨렸다. 지난해 도요타는 77년간 제왕의 자리를 놓치지 않던 GM의 아성을 허물고 세계 판매 1위를 달성했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전년보다 4% 줄어드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도요타는 창업 이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1500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빅10’ 중 감원 없는 유일한 기업

도요타는 급기야 올해 일본과 해외 공장의 생산량에서 100만대(전 세계 생산분의 10% 이상)를 줄이기로 하고 올 2~4월 일본 내 공장의 생산 목표를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 8개 공장은 4월 초까지 공장별로 최대 30일간 조업을 중단키로 했다. 도요타의 비정규직 6000명 감원 파문이 정규직으로도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혼다 또한 최근 비정규직 3100명을 줄이기로 했다. 닛산도 일본에서만 2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도요타를 포함해 혼다, 닛산, 스즈키 등 상위 6개사에는 비정규직이 단 한 명도 남지 않는다. 일본 언론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자동차업계의 감산으로 올해 안에 2만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렇듯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업체들이 줄줄이 감원에 나서는 가운데 오직 한 업체만 1월 말 현재까지 인적 구조조정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세계 8위이자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76.9%(국산차 기준)를 점유하는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까지 공장별로 일부 라인을 세우고 감산체제에 들어갔지만 남는 인력의 유휴시간은 교육으로 대체했고, 기아차는 잔업도 없는데 잔업수당을 지급해왔다.

다른 세계적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재무 안정성이 좋은 현대·기아차 그룹은 오히려 이번 불황을 세계 5위권 안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최고급 세단 제네시스는 1월11일 2009 북미 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도요타가 대형 세단 부문에서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을 현대차가 뛰어넘은 것. 도요타가 엄청난 영업적자와 불황에 시달릴 때 현대차가 자체 기술력으로 일본과 미국의 최고 업체들을 굴복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불황기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현대·기아차의 향배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월9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 지엠대우는 모두 외국자본 소유의 회사인 데다 내수 시장의 대부분을 현대·기아차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업체의 운명은 모회사의 경영 결정에 좌우될 따름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실적은 세계 유수의 업체들보다도 좋다. 지난해 연간 국내 57만962대, 해외 221만715대 등 총 278만1677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6.9% 증가한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4/4분기의 판매부진 속에서 이룬 성과지만, 국내 시장 판매량이 전년보다 8.7% 감소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다시 말해 지난해에는 그만큼 해외 수출이 활발했다는 얘기인데, 올해에는 세계 최대 판매처인 미국과 유럽 어디에서도 구매력이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내수 판매 부진은 올해 현대·기아차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다. 현대차는 1월이 다 가도록 올해 경영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일단 1/4분기 생산계획만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지난해보다 30%나 감산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차가 당면한 최대 난관은 노사갈등이다. 현대차 전주공장의 주간연속 2교대 시범실시를 둘러싼 논란이 상징적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단체교섭에서 올해 9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와 생산직 월급제를 시행키로 하고, 상용차를 생산하는 전주공장에서 1월부터 시범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생산물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회사 측은 이를 경기가 회복되고 생산량이 늘어날 때까지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현대차 노조는 ‘일방적인 합의 파기’라며 1월19일 대의원 대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했다.

2교대 둘러싸고 노사갈등 재연

주간연속 2교대란 조기 출퇴근 형태의 정규 8시간 교대근무를 유지하되 심야근무를 최소화하는 제도로,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잔업 2시간을 포함한 주야 10시간+10시간의 맞교대 근무체제에서 근무시간이 4시간이나 줄어든다. 즉 일한 만큼 임금이 지급되는 현행 시급제가 사실상의 월급제로 변환되는 것이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받을 임금을 8시간 일해도 준다는 개념. 노사는 지난해 수십 차례 밀고 당기는 진통 끝에 야간조 8시간에 잔업 1시간을 더해 8+9 형태의 주간연속 2교대 근무체제를 도입하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주간연속 2교대 실시의 대전제이던 생산량(생산능력) 확보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현대차가 노조와 주간연속 2교대에 합의한 것은 8+9 근무체제에서도 잔업 4시간을 포함해 기존에 주야 10시간 일할 때만큼의 생산량을 올린다는 대전제가 있었기 때문. 그런데 글로벌 불황으로 생산물량이 30% 이상 감소하자 현대차는 “당장 차가 팔리지 않는데 어떻게 이 제도를 실시하겠냐”며 전주공장의 시범실시 연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노사 간에 합의가 된 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를 고수하며 파업절차를 밟았다.

상황이 악화되자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2월23일 근무시간 단축과 관리직 임금동결을 핵심 내용으로 한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데 이어, 1월21일에는 임원 급여를 10% 자진 삭감하고 경상예산을 20% 이상 감축하는 초긴축 비상운영 체제를 선포했다. 이날 현대차 울산공장장인 강호돈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지금은 파업을 할 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노사가 함께 나설 때”라며 장문의 호소문을 띄웠다.

“전주공장 주간연속 2교대가 합의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점은 회사로서도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 전환을 통해 10+10 생산량이 유지되고 심야근로 철폐로 직원들의 건강권 확보도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합의를 했는데, 지금은 차를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습니다. 전주공장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미 재고가 1년치를 넘어섰고 현재의 8+8 생산체제로도 재고가 눈덩이처럼 늘어나 야간근무 없이 주간 1교대로 운영해야 할 실정입니다. 전주공장이 10+10 체제에서처럼 물량을 만들어낸다면 넘쳐나는 재고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산 현장의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대차 노조 대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한 다음 날인 1월20일 전주공장을 직접 방문해 상황을 살펴봤다. 현대차 전주공장은 13만2200㎡의 면적에 52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용차 단일공장이다.

중형버스 이상의 전 차종을 생산하는 버스공장, 2.5t급 이상 중대형 트럭의 전 차종과 믹서 트레일러 등 100종 이상의 각종 특장차를 생산하는 트럭 공장, 파워텍 엔진 등 4종류와 신규 개발한 F, G엔진 생산라인을 둘러봤는데, 작업환경이 매우 깨끗했다. 일감이 많이 줄어서 그런지 직원들 중엔 생산라인에서 벗어나 한담을 즐기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담배를 피우는 직원도 있었다. 일감이 전년도에 비해 얼마나 줄었는지 공장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한숨부터 내쉬며 이렇게 답했다.

질주냐 후진이냐 [현대·기아車] 그것이 문제로다

1월19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

“파업보다는 고용안정이 먼저”

“잔업 없이 주야간 8시간 2교대를 하는데, 생산량이 주야간 10시간 일한 지난해 평균 생산량보다 40%가 줄었습니다. 2교대를 할 만한 물량이 없어요. 잘 안 팔리는 차 생산라인의 직원을 잘 팔리는 차 생산라인으로 옮겨 배치해야 하는데 노조의 반대로 꼼짝을 못합니다. 생산의 유연성이 꽉 막혀 있죠.”

전주공장의 1월 생산계획은 2900대. 지난해 10월의 최대 생산물량인 6050대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 11월 말 이후 생산량 급감으로 평·휴일 특근이 줄어 생산직 직원의 실질임금이 대폭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12월에 나온 300% + 400만원의 성과급과 1월의 연월차 수당, 설 귀향비(80% + 50만원) 때문에 직원들은 아직 감산 경영의 여파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생산라인에서 만난 한 직원은 노조의 주장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대의원들이 만장일치로 파업을 결의했다는데, 실제 생산라인 조합원의 정서는 다릅니다. 생산량이 급감하고 외국 회사들의 감원 소식을 접하면서 근무체제를 바꾸는 것보다 고용안정이 우선 아니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직원들과 커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자기 살 깎아먹는 것 아니냐’ ‘너무 정치적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 것 같은데 욕먹을 짓을 왜 하냐’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아마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가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노조가 현장 상황을 너무 몰라요. 지금 현장엔 위기의식이 팽배합니다.”

전주공장 노조원의 도움을 받아 1월1일 비공개로 바뀐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예상외로 파업 결정을 비판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부끄러워 설날에 고향도 못 가겠다’ ‘교통사고가 나면 차부터 응급조치를 해야 하나, 부상한 사람부터 구해야 하나. 작태를 보니 갈 길이 멀다. 정신 차리자’ ‘전 세계가 끝도 모를 나락에 빠지고 있는데,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시련을 겪고 있는 지인들이 천지인데, 우리 노조는 아랑곳없이 소탐(小貪)하고 있다.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전주공장을 나서는 길에 인근 1차 하청업체 생산직 직원을 만나 현대차 파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야멸치게 몇 마디를 내뱉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그쪽 기침하면 저흰 독감에 걸려 죽죠. 파업?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현대차 감산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파업까지 하는 날엔 (납품 물량이 없어서) 우리 회사 망해요. 또 백수가 되는 거죠.”



주간동아 2009.02.10 672호 (p50~53)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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