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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⑥

관절염 앓는 어머니 ‘88 사이즈’ 블라우스 不孝

  • 이기호 90402201@hanmail.net

관절염 앓는 어머니 ‘88 사이즈’ 블라우스 不孝

관절염 앓는 어머니 ‘88 사이즈’ 블라우스 不孝
재작년 이맘때 결혼했으니까 아마 그 직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스무 살부터 시작한 서울에서의 자취생활을 막 끝내려던 참이었다. 어언 15년의 자취생활을 결혼을 핑계로 끝내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바뀐 자취방만 아홉 곳이었고, 중고 냉장고 세 대, 1인용 통돌이 세탁기 두 대가 재활용센터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 정도 혼자 살았으면 생활에 이력이 붙었을 법도 한데, 살림 솜씨는 계속 유치원생 소꿉놀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다 내 자취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친구들은 늘 비슷한 말을 건넸다.

“이건 뭐, 꼭 엠티를 온 거 같구나.”

그러니 가끔 고향에서 김치통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막내아들을 찾아오는 늙은 어머니의 심정이란 말씀하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들릴락말락, 그러나 결국은 다 들리게 ‘에구, 언제나 따순 밥 한번 얻어먹나…’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죄송스런 마음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환갑 넘으면서부터 왼쪽 다리에 관절염을 앓고 계신 탓에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했다. 평지도 평지였지만,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층계 하나하나 디딜 때마다 숨이 가빠지고, 양미간이 구겨지고, 무릎에 작은 경련마저 이는 게 보였다. 자취방이라도 낮은 곳에 있으면 좀 나으련만, 내게 허락된 서울의 작은 방들은 언제나 높고 가파른 계단을 끼고 있었다. 올라오지 마시라고 해도, 지난번에 갖다주신 김치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어머니는 묵묵부답, 절뚝절뚝 계단을 올라오셨다.

제비꽃 무늬 큼지막한 유행 지난 옷 아직도 외출복으로 착용



이제 곧 결혼하니까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때도 부득불 자취방에 들러 이틀 내내 쓸고 닦고 하셨다. 그런 당신이 안쓰러워, 총각시절 마지막 효도한다는 심정으로 택시까지 전세내 동대문시장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꽃무늬 난분분하게 흩날리는 블라우스라도 한 벌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머니도 아들과의 밤마실이 나쁘지 않으셨던지, 괜찮다 연신 손사래치다가 이내 머리를 매만지셨다. 달빛도 별빛도 좋은 봄밤이었다. 나는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어머니와 단둘이서 외출한다는 것이 마치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시장을 쫓아가던 그 마음을 닮아, 한껏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한데 문제는 어머니의 옷을 고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평생 여자 옷 한 벌 사본 적 없던 나는, 당연하게도 ‘44’니 ‘55’니 ‘66’이니 하는 사이즈 구분법에 무지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사이즈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던 것이다. 매장 직원이 찾는 사이즈를 물을 때마다 어머니는 예의 그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88’이라고 말씀하셨다(나는 ‘88’이라는 사이즈가 평범한 치수의 옷인 줄로만 알았다. 내 눈에 어머니는 분명 평범한 사이즈로만 보였다).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관절염을 앓게 된 이후 눈에 띄게 체중이 불으셨다고 한다. 운동 부족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88’ 사이즈를 구비한 매장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냥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괜스레 오기 같은 것이 발동해 두 시간 넘게 어머니 손을 이끌고 매장들을 돌아다녔다. 어머니의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못한 채, 어머니도 여자라는 것을 잊은 채, ‘88’ 사이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늙으신 어머니를, 절뚝절뚝 다리 저는 어머니를 네온사인 휘영청 밝은 동대문거리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닌 것이었다.

결국 그 밤, 나는 어느 한 매장에서 기어이 ‘88’ 사이즈를 찾아 어머니의 손에 들려드렸다. 제비꽃이 큼지막하게 들어앉은, 유행 지난 보라색 블라우스였다. 거울 앞에서 블라우스를 대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유난히 더 지치고 거무튀튀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만 것이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높고 가파른 층계를 오르다 말고 층계참에서 잠시 쉴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람 나이가 예순이 되면 가방끈이 기나 짧으나 다 똑같아지고, 사람 나이가 일흔이 되면 돈이 많으나 적으나 똑같아지는 법이란다. 한데 몸은 그렇지도 않나봐….”

나는 애써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했다. 달빛은 참 밝기만 했다.

내가 결혼한 이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김치를 싸들고 우리 집으로 찾아오신다. 절뚝절뚝, 어머니의 걸음걸이는 한결 더 더뎌졌다. 엊그제도 어머니가 김치를 들고 광주까지 내려오셨다. 날이 제법 추워져 사람들은 모두 옷깃을 목까지 올리고 지나다녔지만, 어머니는 카디건을 벗어 한쪽 손에 든 채 제비꽃이 큼지막하게 들어앉은 보라색 블라우스를 내보이며 내게 걸어오셨다.



주간동아 2008.12.02 663호 (p60~61)

이기호 904022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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