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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낙엽 지듯 사람도 지고

  • 김진수 jockey@donga.com

낙엽 지듯 사람도 지고

며칠 전 아침, 샛노란 은행잎 하나가 파르르 떨며 운전석과 조수석 중간쯤의 차창으로 몸을 던져왔습니다. 북아현동에서 제 차에 ‘무단승차’한 그 작디작은 녀석 덕분에, 이것저것 신경 쓸 거리가 많아 늘 꿀꿀하던 출근길이 그날은 왠지 포근하게 여겨졌습니다.

‘대체 얼마 만이던가? 계절의 흐름을 느껴본 지가….’

아무튼 그날 늦은 오후 경기 고양시와 서울의 경계에 자리한 한 LPG충전소 인근에서 세찬 바람에 실려 제 차에서 떠날 때까지 그 은행잎은 멀어져만 가는 가을을 새삼 마음으로나마 부여잡게 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날아가 머무르게 될 자리가 어디쯤인지는 미처 몰랐겠지만요.

이성(理性)을 갖지 못한 메마른 나뭇잎이야 제 갈 길 몰라도 하등 불안하거나 서러울 리 없겠지요. 하지만 엄동설한이 닥쳐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하루아침에 자기가 어디로 내몰릴지 모르는 이 땅의 가장(家長)들은 성큼 다가온 또 다른 계절이 그저 두렵기만 합니다.

일감이 줄어 줄줄이 가동을 멈추는 공장의 생산설비, 손님이 뚝 끊겨 간판을 내리는 음식점들…. 게다가 무급휴직, 감봉, 감원 같은 살벌하기만 한 단어들이 11년 만의 끈덕진 부활을 알리는 요즘입니다.



환율 급등으로 여행업계는 이미 무급휴직과 감봉에 들어갔고, 좀처럼 돈을 풀지 않는 고객사 사정으로 광고대행업계도 구조조정에 돌입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직 걱정을 하지 않던 중소형 조선업체, 건설업체, 해운업체, 제2 금융권 종사자들도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괴물의 일격에 거리로 나서야 할 판입니다.

회생 가능한 기업은 적극적으로 지원해 살리고 회생 불가 기업은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이야 국가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난무하는 칼바람 속에서 또 한 번 쏟아질 눈물 걱정에 벌써부터 사람들의 가슴은 아려옵니다.

목하 대한민국은 이렇듯 구조조정 중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최고경영자(CEO)부터 임원, 중간간부, 말단 직원까지 갖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진 공기업들의 작태를 지켜보노라면, 여린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육두문자가 쏟아져나올 지경입니다.

짧디짧은 가을이 싱겁게 떠나버린 자리, 매서운 한파 앞에서 당신은 믿을 만한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움켜쥐고 계십니까?

차라리 가볍디가벼이 바람 따라 훨훨 날 수 있는 낙엽이고픈가요?



주간동아 2008.12.02 663호 (p10~10)

김진수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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