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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

아내의 고난, 젊다는 이유만으로

아내의 고난, 젊다는 이유만으로

아내의 고난, 젊다는 이유만으로
5개월 전, 15년 동안 주야장천 살았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난생처음 취직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었다. 직장이 자리한 곳이 광주이다 보니 서울에서 출퇴근할 순 없는 일. 그래서 이사라는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거참,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구하고, 대출을 받고, 이삿짐센터를 문의하고, 뭐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골치 아픈 일이지, 집에게 선택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뭐, 간단한 일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나 아내였다. 나야 원래 강원도 태생이고 가뜩이나 서울생활을 고달파하던 처지인지라 내심 지방행을 반겼지만, 아내는 그렇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곳을 떠나보지 않았으니, 부모와도 친구와도 골목길과도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어쩌랴. 이제 막 돌을 넘긴 아들은 갈수록 식욕이 왕성해지고, 남들 따라한답시고 교육보험에 유아보험까지 왕창 들어놨고, 물가는 제가 무슨 러시아 장대높이뛰기 선수라고 하루하루 신기록을 경신해나가기만 하니 고정된 월급이 아쉬울 수밖에.

이삿짐을 꾸리긴 꾸렸지만 아내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거기가 광역시잖아. 서울하고 다를 게 하나 없어. 음식은 또 얼마나 죽이는데. 아내 앞에서 잔뜩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 역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사람이지 않겠는가. 백화점이 있든 없든, 문화센터가 있든 없든, 지하철이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터놓고 말할 상대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 외롭고 쓸쓸할 때 한달음에 달려갈 대상이 있는가 없는가. 아내에겐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때마침 여러 해 전 지방으로 내려간 선배는 전화를 걸어와 이런 말을 남겼다. 거, 조심해라. 우리 와이프도 지방에 내려간 지 반년 만에 우울증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 시작했잖냐.

해서, 광주로 내려간 보름 남짓은 칼퇴근을 생활화하며, 제법 최수종 같고 차인표 같은 남편들을 따라하려 애썼지만 에헤라, 그 버릇이 어디 가랴. 광주 또한 서울 못지않게 술집은 많고 음식은 맛나기만 하니 툭하면 자정이요, 새벽 신문배달원과 머쓱한 표정으로 집 앞에서 만나는 횟수가 차츰 늘어간 것이었다. 아내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고, 그와는 정비례로 멍하니 베란다 밖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후, 생각해낸 게 바로 교회였다. 그래, 교회가 있었지, 교회가 있었어. 나는 출근길에 십자가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론 통 교회에 발을 내밀지 못한 처지였다(남편이 갓난아이를 대신 보거나, 교회에 동행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주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아내가 다시 교회에 가게 된다면, 제 또래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을 테니, 아아, 그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번, 아내를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일쯤이야 응당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곧바로 돌아오는 일요일 오전 아이를 안고, 아내 손을 잡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로 향했다(아내는 잠시 내가 어디가 많이 아픈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동네에선 좀 규모가 큰 교회였다. 60대 초반의 목사님도 인자해 보였고, 예배 분위기도 다른 교회들과 다를 게 없었는데, 성가대와 반주자가 없다는 것, 예배당 규모에 비해 신도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뭐 그럼 어때. 오히려 더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하구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내 옆에서 열심히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아내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아내는 처녀 시절, 피아노를 조금 배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곧장 그 교회의 대예배 반주자가 되었다

(세상에, 교회에 나간 지 이틀 만에!). 아내 뜻과 상관없이 초등부 담당교사가 되었으며,

그 때문에 교회 연합 여름성경학교 교육자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아내의 고난, 젊다는 이유만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윤경

한데, 문제는 예배가 끝난 직후 일어났다. 장의자에서 일어나 막 예배당을 벗어나려던 우리 부부 앞으로 할머니 예닐곱 분이 몰려왔다. 할머니들은 곧장 아내 주위를 둘러쌌다. 아이고, 새로 이사 왔나 보네, 잘 왔어, 잘 왔어. 색시가 곱기도 하지. 우리 교회 새 신자 본 게 몇 달 만이야. 할머니들은 한분 한분 돌아가며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두서없이, 정신없이 말을 했다. 한 할머니는 어느새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를 받아들었고,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공책을 들고 연신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고 또 물었다. 밥 먹고 가라며 손을 끄는 할머니, 새 신자 카드를 작성하라는 할머니, 아이 기저귀를 손수 갈겠다고 나서는 할머니까지, 우리 부부는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할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끌려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아내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아내는 처녀 시절, 피아노를 조금 배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곧장 그 교회의 대예배 반주자가 되었다(세상에, 교회에 나간 지 이틀 만에!). 아내 뜻과 상관없이 초등부 담당교사가 되었으며, 그 때문에 교회 연합 여름성경학교 교육자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친구들은? 당신 또래 교회사람들은 없어? 내가 그렇게 묻자, 아내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젊은 사람들이 통 교회에 안 온대. 그 옆 교회도 그렇고, 대부분 그런 모양이야. 그래? 흐음, 거 왜 그렇지? 내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자, 아내가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왜긴, 죄의식이 없어졌으니까 그렇지. 죄의식? 그래, 죄의식.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으면 죄의식도 존재할 수 없는 거잖아. 한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 우리가 광주에 내려오고, 우리 집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한테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없는 거지.

아, 과연.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옆에서 아내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그 많은 할머니들을 무슨 수로 다 모시나? 다음 주에 우리 집으로 심방 오신대.



주간동아 2008.09.16 653호 (p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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