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박진영
대부분의 한국인은 ‘친척은 편안한 존재’로 인식하지만, 4명 중 3명은 친척이 빚보증을 부탁하면 거절할 생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반가량이 친척과는 명절이나 관혼상제 때 만나고 있으며,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엄마 쪽 친척’과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은 연령이 높을수록 수긍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주간동아’가 추석을 앞두고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8월3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설문조사 결과다. 표본오차 95%, 신뢰구간 ±4.4%포인트.
5명 중 1명은 친척에게서 금전적 도움 받아
돈 문제는 한국인에게 친척간 갈등의 주원인이기도 하지만 도움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친척간 갈등 이유(복수응답)로는 △재산분배나 채무 등 금전문제(20.4%) △집안 행사에 대한 비용부담 문제(12.3%) 등 금전문제로 인한 갈등이 32.7%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윗사람의 권위주의적 태도(10.3%) △자존심이나 지기 싫어하는 마음(7.3%) △부모 모시는 문제(6.8%) △아랫사람의 결례(6.7%) 순으로 조사됐다. ‘갈등 경험이 없다’는 응답은 44.7%였다.
갈등 원인으로 ‘재산분배나 채무 등 금전문제’를 꼽은 응답자 중에는 중소도시(26.0%) 거주자와 소득수준 하층(월수입 150만원 이하·25.1%)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집안 행사에 대한 비용부담 문제’로 인한 갈등은 소득수준 상층(월수입 351만원 이상·14.4%)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읍·면 지역에서는 ‘갈등이 없다’는 응답(52.3%)이 가장 많았다.
친척에게 도움을 받은 사례 중에도 ‘금전적 도움’(19.1%)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고민상담(12.1%) △육아 도움(6.3%) △사업상 도움(3.7%) △빚보증이나 신용보증(3.4%) 순이었다. ‘도움 받은 경험이 없다’는 응답은 58.4%로 읍·면 지역(77.9%), 중졸 이하(78.8%), 소득수준 하층(75.0%)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 설문결과는 숭실대 정재기 교수(정보사회학)의 연구결과와도 일치한다.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가족 및 친족간의 접촉 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 : 국제간 비교’ 논문에서 정 교수는 한국인 13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응답자의 60.8%가 ‘친척’을 찾는다고 답했지만, ‘우울한 일이 생겨 상의할 때’는 53.1%가 ‘친구나 동료’를 찾는다고 했다. 배우자 등 ‘친척’(38%)을 찾는다는 응답보다 높은 것. 정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친척은 ‘정서적 성격’보다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빚보증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거절한다’는 응답이 75.5%였다. ‘빚보증 거절’ 응답은 여성(79.4%), 30대(84.8%), 화이트칼라(80.8%) 계층에서 많았다. ‘빚보증 OK’ 응답은 남성(23.3%), 40대(22.4%)와 50대 이상(22.0%), 블루칼라(25.1%), 자영업 종사자(22%)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친척은 명절이나 관혼상제 때 만난다
‘친척에 대한 느낌’은 대다수(88.1%)가 ‘편안한 존재’라고 응답했다. 전 계층에서 긍정적인 응답이었다.
친척과의 만남은 ‘명절이나 관혼상제 때’(46.7%)라는 응답이 ‘수시로 만난다’(30.7%)보다 많았다.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만난다(7.3%) △부모 형제 생일 때 만난다(7.1%) △거의 만나지 않는다(3.9%)가 뒤를 이었다.
소득수준별로는 하층이 ‘명절이나 관혼상제 때’(58.3%) 친척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혼이나 별거 또는 사별한 경우에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21.7%)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친척 범위에 대해선 삼촌, 이모 등 혈족(血族)은 △4촌(40.2%) △8촌(28.8%) △6촌(28.2%) 순으로, 처남이나 고모부 등 인척(姻戚)은 △4촌(58.7%) △6촌(22.0%) △8촌(16.4%) 순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은 혈족의 친척 범위를, 여성은 인척의 친척 범위를 상대적으로 넓게 인식하고 있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에서는 ‘혈족은 8촌까지’(38.0%) ‘인척은 4촌까지’(47.4%)라는 응답이, 20대 이하에서는 ‘혈족은 4촌까지’(62.1%) ‘인척은 4촌까지’(69.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현행법상 친척(친족) 기준은 혈족 8촌, 인척 4촌, 배우자다.
‘친척과의 관계’ 정의에 대해서는 대도시 거주자의 경우 ‘사교적 관계’(38.4%), 친척과 촌락공동체가 대부분인 읍·면 지역 거주자는 ‘가사 협조관계(44.9%)’라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20년 후 친척관계는 ‘약보합세’
‘친척 모임 시 불참하는 이유’로는 ‘다른 일이 있어서’(52.9%), ‘어른 만나는 자리가 불편해서’(13.4%), ‘내키지 않아서’(11.5%), ‘비용부담 때문에’(7.7%) 순이었다.
‘20년 후 친척관계 전망’에 대해서는 ‘약보합세’ 의견이 우세했다. △현재보다 약화되겠지만 어느 정도 유지될 것(54.9%) △현재의 친척관계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25.6%) △현재의 친척관계가 유지될 것(17.1%) 순으로 나타난 것.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친척관계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은 연령이 높을수록, 읍·면 지역(38.1%), 중졸 이하(54.0%), 소득수준 하층(37.9%)에서 높았다는 점이다.
KRC 원성훈 사회여론조사부장은 “사회 구성원 스스로 전통적인 가족문화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고연령층과 읍·면 지역 등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계층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20대 이하 59% “엄마 쪽 친척이 더 가깝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해외에서 보내려는 여행객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친밀감이 생기는 이유도 대조적이다. 부계혈족에 대한 친밀감은 주로 명절이나 제사 등 ‘관습에 의한 유대’로 형성된 반면, 모계혈족 친밀감은 교류를 통한 ‘정서적 유대’로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간의 상반된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먼 친척과 가까운 이웃사촌은 ‘동급’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속담은 과연 맞을까. 나이가 많을수록, 시골에 살수록 이 속담은 맞을 확률이 높았다.
‘가끔 만나는 친척과 자주 보는 이웃’에 대한 선호도 설문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이 낫다’(48.8%)와 ‘가끔 만나도 친척이 낫다’(48.3%)는 응답이 비슷했다. 하지만 연령별, 거주지별로는 차이가 나타났다. 20대 이하의 경우 ‘이웃이 낫다’는 응답이 33.0%였지만 40대(52.8%)와 50대 이상(53.3%)은 과반이었다. 대도시 거주자는 ‘친척’(52.9%), 읍·면 지역 거주자는 ‘이웃’(56.2%)의 손을 들어줬다.
KRC 원 부장은 “대도시 거주자와 젊은 세대는 친척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고연령층과 읍·면 지역 거주자는 ‘지역 커뮤니티’에 활발히 참여하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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