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을 받아 적고 있는 한나라당 차명진 조윤선 윤상현 대변인(왼쪽부터).
8월28일 충남 천안시 지식경제부 공무원교육원에서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그날 오후 8시쯤 교육원 정문 앞 한 호프집에 일부 의원들과 연찬회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박희태 당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정몽준 최고위원,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당 지도부와 차명진, 윤상현 대변인을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참석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과 일부 의원들에 따르면 술잔이 몇 순배 돌면서 당 지도부는 대부분 자리를 떴고 정몽준 최고위원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평소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정 위원이 끝까지 남아 술값까지 계산해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
문제는 이날 술자리에서 빚어진 차명진(49), 윤상현(46) 두 대변인 간의 언쟁과 불화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라 양측의 기억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상황은 이렇다.
윤 대변인은 정 위원을 “몽준이 형”이라고 매우 가깝게 호칭하면서 “우리 학교 직계 선배다. 대상포진에 걸려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도, 이렇게 고생하신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반면 차 대변인은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통령감이라면서 “김문수”를 연호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윤 대변인이 “김문수 지사보다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낫지 않으냐”고 반문하자 차 대변인이 발끈하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탁자에 있던 맥주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호프집 밖으로 끌려나가던 차 대변인은 윤 대변인을 향해 “똑바로 하라”고 소리쳤다. 이후 두 대변인이 호프집 밖에서 잠시 몸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변에서 말려 그 정도에서 끝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장을 전하는 말들이 달라 분명한 것은 없다.
차 대변인은 김 지사를 20년 가까이 보좌한 최측근이다. 김 지사가 1990년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위원장 시절 사무국장이었고, 김 지사가 국회의원이었을 때 보좌관을 맡았다. 차 대변인이 2006년 재보선에 이어 올해 총선에서 당선된 경기 부천·소사 지역이 바로 김 지사에게서 물려받은 지역구다.
반면 윤 대변인은 당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 계보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이날 윤 대변인의 태도가 다소 의외였다고 전한다. 윤 대변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 최고가 자리에 있는데 차 선배(대변인)가 자꾸 김문수 지사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중화하려다 벌어진 해프닝”이라며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박근혜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차 대변인과 윤 대변인은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서울대 선후배지간이기도 하다. 차 대변인은 “친한 선후배끼리 장난삼아 서로 툭툭 칠 수도 있는데, 그때 일은 그 정도 상황도 아니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정말 그럴까? “정치인은 숨쉬는 것만 빼고 다 거짓”이라던 한 원로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당내 일각에선 차기 대권을 둘러싼 ‘충성 경쟁’이 벌써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