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1

2008.09.02

2차 세계대전 그 후 ‘유럽의 60년’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8-25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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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그 후 ‘유럽의 60년’

    <b>포스트 워 1945~2005</b><br>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플래닛 펴냄/ 736쪽(1권), 712쪽(2권)/ 각 권 3만2000원

    ‘역사에 대한 무지는 비슷한 실수의 반복을 낳는다’. 토니 주트의 ‘포스트 워 1945~ 2005’를 읽고 난 뒤의 소감이다. 유럽 전후사는 단순히 그 시대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대치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교훈과 지혜를 준다.

    걸출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은, 실로 대단한 역사책이다.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유럽 각국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등 유럽의 60년을 세밀하게 조망하고 있다. 일상에서부터 문화와 정치까지 전후(戰後) 유럽의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물론 학문적인 엄밀성을 갖춘 동시에 숨가쁠 정도의 속도감과 흥분도 안겨다준다.

    1권은 전후시대(1945~1953)의 번영과 불안(1953~1971)이라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됐으며, 2권은 퇴장송가(1971~1989)와 몰락 이후(1989~2005)로 이뤄져 있다. 유구한 역사와 합리성이 지배해온 유럽에서 어떻게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등장하게 됐을까? 이 두 가지는 유럽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39년까지만 해도 동유럽인들은 스스로 유럽에 속해 있다고 여겼다. 헝가리인, 루마니아인, 체코인, 폴란드인, 크로아티아인, 발트 사람들은 프랑스나 저지대 국가들의 운 좋은 주민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력하면 프랑스 파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근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37년 체코의 경제력은 이웃한 오스트리아를 능가해 벨기에와 어깨를 겨룰 정도였다.

    하지만 동유럽과 남동부 유럽을 점령한 독일군은 지나치게 가혹했다. 이런 가혹함은 이후 이 나라들을 위성국가로 삼았던 소련의 점령기에 그 정도를 더하게 된다. 저자는 “1945년 이후 소련은 말 그대로 독일이 떠난 곳을 넘겨받아, 동유럽을 자국 경제에 부속시켜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식 복제국가로 만드는 일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1948년 12월 체코슬로바키아에는 20명 이상의 고용인을 둔 사기업이 거의 남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헝가리 산업의 83%, 폴란드 산업의 84%, 루마니아 산업의 85%, 그리고 불가리아 산업의 98%가 국가 재산으로 귀속됐다. 이후 소련은 화폐개혁으로 중간계급의 재산을 일시에 휴지로 만들어버린다.



    체코는 1914년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산업 중심지였다. 체코의 산업은 가죽제품과 자동차, 첨단 기술을 응용한 무기 제조, 다양한 사치품 등으로 특화됐고, 그 결과 체코의 1인당 생산량은 프랑스보다 많았다. 하지만 1956년의 공산국가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그 밖의 서유럽 국가들에 뒤처졌을 뿐 아니라, 20년 전의 자국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나라가 되고 만다. 오로지 소련이라는 주인에게만 수출하도록 만들고 사적 소유를 금지한 결과는 동유럽 전체를 가난의 질곡으로 빠뜨렸던 것이다.

    이런 경제적인 성과(?)뿐 아니라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고문, 살인, 약탈이 일상적인 일로 자행된다. 소련에서 시작된 선전포고 없는 시민들과의 전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이었다. 스탈린은 ‘계급전쟁은 사회주의가 다가올수록 더 강화된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숙청의 대상자는 농민, 부르주아 그리고 지식인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소련화된 동유럽은 서유럽으로부터 끝없이 멀어지게 된다. 서유럽이 전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안 동유럽은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레닌의 표현대로 ‘쓸모 있는 바보들’이 대거 등장했다. 주로 파리를 무대로 활동했던 지식인들이다.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장 폴 사르트르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스탈린이 주도하는 탄압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이런 사실에 애써 눈 감고 오히려 공산주의에 찬사를 표했다. 한마디로 소련 당국의 원격 조정에 놀아났던 것이다. 필자는 독자로서 이 대목에 ‘정신 나간 지식인들’이라는 메모를 남길 정도로 지식인들의 탈선에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어디 그 시대만의 이야기일까? 역사를 읽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 한, 역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공산주의 찬양을 진보 ‘좌파’의 역사적 소임이라고 믿었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의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에 열광했다. 사르트르가 “우리는 소련과 앵글로색슨 진영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펼칠 정도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소련과 우호관계를 맺는 데 단서는 없다. 러시아 국민의 희생은 그 지도자들이 국민의 희망을 체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까지 말한다. 서방 지식인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열광이 절정에 이를 때 ‘인민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는 최고의 폭정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읽을 만한 대작일 뿐 아니라, 역사로부터 즐거움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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