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트럼프타워 맞은편에 자리한 보석 브랜드 티파니 매장. ‘티파니 블루’의 하늘색 깃발이 오피스타운과 대조되면서도 잘 어울린다.
2008년의 월스트리트는 고급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보디라인이 드러나는 트렌디한 슈트에 컬러풀한 셔츠와 타이 그리고 손에는 어디서든 주가 확인 및 매매가 가능한 멀티태스크폰 ‘블랙베리’와 명품 브랜드의 브리프케이스를 든 젊은 비즈니스맨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 연이어 개장
뉴욕 맨해튼의 한 구역인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는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 본점들이 자리하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뉴욕 증권거래소(NYSE : New York Stock Exchange)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장소’이며, 뉴욕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 뉴욕 증권거래소 건너편에 프랑스의 유서 깊은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Hermes)’가 매디슨 애버뉴에 이어 뉴욕에서 두 번째 매장을 열고 있다. 또 ‘티파니 블루’라는 하늘색 박스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보석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도 지난 가을 5번가 본점에 이어 두 번째 매장을 월스트리트 트럼프타워 맞은편에 오픈했다.
이 두 매장에는 특이하게도 남성들을 위한 전문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에르메스나 티파니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그 유명한 소호도 아니고 요즘 잘나가는 첼시도 아닌, 다운타운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월스트리트에 두 번째 매장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월스트리트가 뉴욕의 유명 관광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최근 몇 년 동안 월스트리트 주변에 고급 콘도 건설과 리노베이션 붐이 일어 젊고 감각 있는 신흥 부유층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홈컬렉션 브랜드 ‘아르마니 카사’가 콘도 전체의 인테리어를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20파인(20 Pine, the Collection)’을 필두로 고급 콘도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 지역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다. 루이비통, 구찌 등도 매장을 낼 계획이어서 월스트리트가 머지않아 뉴욕의 부를 상징하는 쇼핑 스트리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뉴요커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레스토랑들도 월스트리트 주변에 즐비한데, 뉴욕의 새 명소로 등극한 ‘스톤 스트리트(Stone Street)’는 거리 전체가 레스토랑으로 이뤄져 유럽의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듯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모노톤의 금융 비즈니스 중심지가 화려한 패션스트리트로 바뀌는 최근의 현상은 뉴욕뿐 아니라 런던과 파리, 도쿄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다. 일본 경제의 중심지로 불리는 도쿄 마루노우치(丸の內)나 영국 런던의 시티(City),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La Defense) 등이 그 예들. 마루노우치는 하루 내방객이 150만명을 웃돌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금융가인데, 특이하게도 미쓰비시(Mitsubishi) 등 거대 부동산 기업들이 주도해 오피스타운을 패션스트리트로 바꿔가고 있다.
뉴욕 증권거래소가 바라다보이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내부.
수백 년 동안 유럽 경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런던의 시티 전경(위). 옛 건물 위로 초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런던의 주식거래소에 들어선 카르티에 부티크, 뉴욕의 새 명소로 등극한 ‘스톤 스트리트’(오른쪽).
도쿄 마루노우치 야경. 화려한 쇼핑가로 변신한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곳 역시 전통의 오피스타운에서 패션스트리트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중이다. 시티 한가운데 자리잡은 유서 깊은 런던의 주식거래소 건물을 리뉴얼해서 루이비통, 구찌, 카르티에, 몽블랑 등 최고급 브랜드로 채웠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런던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지역인 리버풀 스테이션(Liverpool Station)과도 멀지 않아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중심지에서 패션스트리트로 변신하는 도시들은 똑같이 한 가지 문제에 당면해 있다. 그것은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되다 보니 주중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가게들의 매상도 올라가지만, 주말이면 썰렁하기 그지없다는 것. 도시가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럭셔리한 부티크와 세계 최고의 미식 레스토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오피스타운에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 도시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한국의 도시 개발에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