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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모바일에 한눈팔다 탈날라

모바일에 한눈팔다 탈날라

모바일에 한눈팔다 탈날라
휴대전화가 울렸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려는 순간 핸들이 흔들리면서 차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다. 그게 더 화를 불렀다. 차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다 인도의 턱에 걸려 벌러덩 뒤집히고 말았다. (중략) 휴대전화는 여태 울리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동생이었다. “지금 뭐 해? 전화 받을 수 있어?” “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 있지만 전화는 받을 수 있다.” “농담도 심하셔. 오빠 가능하면 빨리 입금해줘야겠어. 다음 달 학원 등록이 곧 마감이래.”

- 김경욱 ‘당신의 수상한 근황’ 중에서

워크맨이 처음 나왔을 때 도서관 같은 곳에서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데, 그 음성이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듣게 된다.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면서 음량을 조절하는 게 안 되니 무심코 큰 소리가 나와버린 것이다.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폰을 꽂고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사람은 사뭇 위화감을 갖게 된다. 만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면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 리듬을 공유할 것이다. 몸으로는 한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세계에 머무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불편하다. 지하철이나 길거리 같은 공공장소에서 진하게 애무하는 연인들이 주변 사람들을 민망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대화든 음악이든 애무든, 어떤 이야기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은 소외감을 자아낸다. 2개 또는 3개의 현실로 분절된 공간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겉돌거나 막힐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는 그러한 공간의 모자이크를 더욱 증식시킨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휴대전화에 계속 몰입하고 있으면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든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렇다. 게다가 나는 실연의 아픔을 삭이고 있는데, 옆에선 휴대전화로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면 외로움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헤어진 애인과 예전에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지하철 같은 장소에서는 옆에 앉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보다 한 사람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목소리에 더 신경이 쓰인다. 전자의 경우 대화가 벌어지는 오프라인 공간에 내가 함께 속한 반면, 후자는 그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소외됐기 때문이다. 갑과 을의 말이 모두 들릴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갑의 말만 들릴 때는 을의 말이 무의식적으로 상상되거나 궁금해지는 탓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끼리도 약간의 단절이 있다.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오프라인 공간의 옆사람에게 건네는 말을 잘 식별해내야 한다. 상대방이 택시를 탔을 경우 “아저씨, 종로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사무실에 택배가 왔을 때 “그거 거기에다 놔주세요” 같은 말을 했을 때, 이런 말들이 전화선을 타고 흘러 들어와도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통신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항공권을 예약하러 여행사에 들를 때마다 겪는 일인데, 직원이 나와 상담하다가도 전화가 오면 우선 전화 손님부터 처리해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전화가 계속 걸려오면 내 순서는 계속 밀리게 된다. 몸소 찾아간 고객보다 집 안에 앉아 전화하는 고객이 우대받는다. 전화는 아무 때나 막무가내로 새치기를 하는 셈이다.

자극의 폭주시대 … 인간의 뇌는 그만큼 진화 못해

그렇듯 정보공간이 현실공간에 불쑥 끼어드는 것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느 장례식장에서는 비통한 분위기 속에 애도사가 낭독되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필 신호음이 트로트였다. ‘춘자야 보고 싶구나, 춘자야~.’

그런 정도의 해프닝은 웃고 넘어갈 수 있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소설에서처럼 휴대전화 때문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예도 많다. 운전자에게 휴대전화는 매우 위험한 도구다. 전화를 받느라고 동작이 흐트러지는 것은 물론, 듣고 말하는 데 집중하느라 시각 정보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보행자도 조심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어느 여성이 전화를 받으면서 철도 횡단로를 건너다 참변을 당한 일이 있다. 대화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달려오는 열차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은 우리의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킨다. 인터넷을 켜면 끝없이 이어지는 클릭으로 정보의 망망대해를 표류한다. 길거리에는 반짝이는 전광판이 계속 늘어나고, 그것도 모자라 자동차 안에도 영상 모니터가 설치된다. 운전자가 텔레비전을 힐끗힐끗 보면서 주행해도 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자극의 폭주’를 능숙하게 소화할 만큼 인류의 뇌가 진화하지는 못했다. 전자파의 유해성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정보의 쓰나미다. 산란해지는 생활세계를 가지런히 경영할 수 있는 평온함과 집중력을 모바일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8.04.15 631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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