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끝없는 소유권 다툼의 ‘복마전 호텔’

리버베이힐 상습체납·거액 사기 피소… 15년째 경매로 시간끌기 이어 법정 분쟁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04-07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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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소유권 다툼의 ‘복마전 호텔’

    고액상습체납과 매매과정에서 사기혐의 등으로 동시에 검찰에 고소당한 ㈜동림CUBR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남대교 남단에 자리한 리버베이힐(구 리버사이드)호텔은 연일 불야성을 이룬다. 호텔보다 더 유명한 초호화 나이트클럽과 최고급 룸살롱 덕분이다. 이 호텔이 한때 조직폭력배들 간 집단폭력 사건의 무대로 전락했던 것도 이들 유흥업소의 이권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이 호텔이 최근 또 다른 이유로 도마에 올랐다.

    [현장 1] 서울 서초구청 세무과 징세담당 직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후~, 정말 미치겠어요.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한 번도 지키지 않았어요. 검찰에 고발도 해봤죠. 하지만 안 내는 걸 어떻게 합니까. 방법이 없어요. 절차상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그뿐입니다.”

    서초구청은 3월24일 리버베이힐호텔 소유 및 운영 법인인 ㈜동림CUBR(대표이사 장석선·이하 동림)을 고액상습체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초구청이 동림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동림이 세금을 체납한 지는 올해로 15년째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62억원에 가까운 세금이 밀렸다. 서초구 내 최고 체납액이다. 체납 건수는 재산세와 2001년 호텔 증축에 따른 취득세를 포함해 모두 20건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포세무서, 동대문세무서, 관악구청 등도 세금 체납을 이유로 호텔 건물과 토지를 압류한 상태다. 반포세무서에만 30억원 가까운 세금이 체납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동대문세무서와 관악구청 등의 체납세액까지 합하면 동림이 내지 않은 세금은 1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장 2] 오래전 회사 부도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전 나산그룹 회장 안병균 씨가 이번에는 리버베이힐호텔 때문에 500억원대 송사에 휘말렸다.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B회사가 호텔을 인수하도록 주선했다가 이중매매로 사기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게 안씨의 주장이다. 결국 안씨는 리버베이힐호텔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전 효산그룹 회장 장장손 씨와 그의 동생 석선 씨 등 관계자 6명을 사기혐의로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 안씨의 하소연이다.

    “정말 상습범입니다. 그동안 검찰에 피소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하지만 국내 최고 변호사들을 동원해 법망을 피하고 있습니다. 장장손, 석선 형제가 그동안 선임한 변호사들을 보면 내로라하는 검찰 특수부장 출신은 물론, 전직 검찰총장급까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명백한 증거와 증인들이 있으니까요.”

    리버베이힐호텔과 관련해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은 바로 고액상습체납과 거액의 사기의혹이다. 이 두 사건은 별개의 사안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정교하게 얽혀 있다.

    서초구청 등이 100억원대 세금을 체납한 호텔을 압류한 채 검찰 고발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려 12년째 진행되고 있는 경매 때문이다. 사건은 동림이 호텔을 인수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매에서 호텔을 낙찰받은 동림은 그해 9월 이 호텔을 서울리조트, 금강수페리어, 효산종합개발 등 효산그룹 3개 계열사에 담보로 제공했다. 효산그룹 3개 계열사가 고려증권 등에서 받은 차입금(등기부상 채권최고액)은 450억원. 그런데 그해 11월 효산그룹 계열사가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일이 꼬였다.

    채권 회수에 나선 고려증권은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자 1996년 9월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했다.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지루한 경매 절차가 시작된 게 이때부터다. 경매 절차는 갖가지 이유로 중단되거나 지연된다. 대부분 호텔 소유주인 동림과 관계회사들에 의해서다.

    끝없는 소유권 다툼의 ‘복마전 호텔’

    리버베이힐호텔 지하에서 성업 중인 나이트클럽 입구.

    100억대 세금 검찰 고발만 되풀이

    동림 측이 가장 먼저 사용한 방법은 부동산 재감정 신청이다. 1996년 10월5일 경매 절차에 따라 호텔에 대한 감정평가서가 법원에 제출되자 동림은 곧바로 재감정을 요구했다. 동림은 그 후에도 네 차례나 재감정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98년 5월까지 1년 반 이상이 지체됐다.

    법원에서 더 이상 재감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번에는 동림의 관계회사로 알려진 Y산업이 등장한다. 1998년 5월 동림과 경매 신청자인 고려증권을 상대로 호텔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Y산업은 동시에 경매 강제집행 정지를 신청했으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2003년 2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5년 가까이 경매 절차는 중단됐다.

    법원은 경매를 시작하고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점을 감안해 호텔에 대한 재감정을 받아 경매 절차를 진행하려 했으나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동림이 호텔 증축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재감정과 부동산 현황 재조사를 요청하고 나선 것. 그로부터 ‘재감정 신청→감정 보완’ 절차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경매 절차도 멈춰 섰다.

    결국 법원은 2005년 10월 더 이상 동림의 재감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입찰 절차를 진행해 입찰가 487억원을 제시한 H건설로 낙찰허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동림은 법원 낙찰허가 결정에 대해 다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낙찰에 따른 경매 절차 진행을 중단시켜 놓은 상태다.

    낙찰 결정 이후 동림 측(과거 효산그룹 계열사 포함)이 경매 신청자인 고려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만 8건에 이른다. 서초구청 등 해당 관청에서 100억원대 세금을 받지 못하고도 압류나 형사고발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매를 둘러싼 소송이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은 일정한 수입이 있으면 추징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동림 측은 경매 절차가 진행되면서 임대료와 숙박료 등 호텔 운영에 따른 수입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동림 대표 장석선 씨는 “임대업자들이 1998년 이후 세금은 물론 월세도 한 푼 안 내고 있다. 임대업자들은 내부시설 같은 공사를 하면 그 비용을 임대보증금으로 전환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배임, 횡령, 탈세 혐의에 대해 조사했지만 무혐의로 끝났다”고 말했다. 초대형 나이트클럽, 룸살롱, 웨딩숍 등 각종 임대사업자들이 임대료 없이 사실상 공짜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안씨 측이 호텔 인수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해 12월31일이다. 이미 낙찰허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뤄진 것. 안씨 측의 상대 계약당사자는 동림과 공동사업약정서를 맺은 개발업체 T사다.

    안씨와 T사 간의 호텔 매매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계약금 85억원에 중도금 430억원, 잔금 335억원 등 총 850억원에 계약이 체결된 것. 이 계약은 T사가 호텔 낙찰을 받은 H사를 인수해 안씨 측에 건네주는 것을 전제조건(특약)으로 했다.

    안씨 측이 검찰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안씨 측은 계약에 따라 중도금 430억원을 올해 2월4일 T사에 건네면서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등기서류 일체를 요구했고, 이에 T사 측은 2월20일까지 등기절차 진행 보류를 조건으로 서류를 건네줬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2월5일과 15일 양일에 걸쳐 호텔 소유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두 개의 회사는 모두 동림의 계열사. 또 이와 비슷한 시기에 호텔 낙찰을 받은 H사의 지분을 제3의 회사가 인수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소유권을 넘겨버렸다.

    끝없는 소유권 다툼의 ‘복마전 호텔’

    장장손 씨가 실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최고급 주택. 장씨는 리버베이힐호텔의 실질적인 소유주 중 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자 바뀌면서 상황 한층 복잡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안씨 측은 T사와 동림이 서로 짜고 이중매매 등의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T사와 동림 실소유주인 장씨 형제 및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T사 역시 동림에 사기를 당했다며 장씨 형제 등을 고소했다.

    이에 대해 동림 대표 장석선 씨는 “잔금도 주지 않고 소유권을 넘겨주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면서 “잔금을 받지 못할 것 같아 계열사로 소유권 가등기권을 넘겨놨을 뿐”이라고 말했다. “잔금만 준다면 소유권은 언제든지 넘겨줄 수 있다”는 게 장씨의 얘기다.

    장씨는 그러나 호텔 낙찰을 받은 H사의 지분 인수 및 소유권 이전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동림 관계자들도 “낙찰자인 H사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안씨는 이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계약서상 잔금은 소유권 이전등기를 완료한 후 1개월 이내에 지급하기로 돼 있다. T사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그 자리에 장석선 대표도 함께 있었다”고 반박했다. 안씨는 또한 “낙찰자 H사의 지분도 장씨 형제가 인수해 다른 회사로 넘겼는데, 그 회사도 장씨 형제가 관련된 회사일 가능성이 높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장씨 형제의 행태는 호텔을 팔아먹고도 소유권은 넘겨주지 않으려는 고도의 술수”라는 것이다.

    안씨와 실제로 계약을 체결한 T사는 안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T사 측이 작성한 검찰 소장에 따르면, T사가 안씨와 맺은 계약서상 잔금은 소유권 이전등기 완료 1개월 이후에 받기로 돼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T사 측은 또 장씨 형제가 낙찰자 H사의 지분을 다른 회사가 인수하도록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씨와 장씨 형제, 양측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다. 한쪽은 “잔금을 먼저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소유권을 먼저 넘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매개 구실을 한 T사가 끼면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낙찰자가 바뀌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현재 이 사건은 3월 한 달 동안 의정부지검으로 내려갔다가 4월 초에야 서울중앙지검으로 되돌아왔다. 피고소인 중 한 사람인 장장손 씨의 주소지가 경기 남양주로 돼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고소인 안씨에 따르면 장씨가 실제 거주하는 곳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최고급 주택. 고소인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해 수사기관에 넘긴 덕분에 그나마 사건이 빨리 서울로 되돌아왔다는 것이 안씨의 얘기다.

    수사기간을 거쳐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는 미지수다. 경매 절차는 당연히 중단될 수밖에 없고, 서초구청 등 해당 관청이 체납세금을 받을 날은 또다시 기약이 없어졌다. 다만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호텔 나이트클럽과 룸살롱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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