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6

2008.03.11

쿠바와 카스트로 ‘고난의 행진’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3-05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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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와 카스트로 ‘고난의 행진’

    ‘D-13’의 한 장면.

    영화 ‘D-13’은 20세기의 가장 긴박한 13일간을 다룬 영화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발해서 해결되기까지의 13일이다.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진짜 영웅적 면모를 보이는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다. 미 전역을 단 5분 만에 전멸시킬 수 있는 소련제 핵탄두가 미국의 뒷마당에 배치된 상황.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케네디는 핵전쟁까지 불사하려는 강경파에 굴하지 않고 끝내 소신을 지킨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에는 13일간 이전의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 쿠바와 소련이 그런 도발을 감행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플로리다에서 남쪽으로 18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선 반미 정권. 이 반미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갖은 수를 쓰던 미국 정부는 미사일 위기 1년 전인 1961년에 직접적인 침공작전을 펼친다. 쿠바에 게릴라를 침투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 한 이른바 ‘피그만’ 작전이었다.

    미사일 위기 이후 46년이 흘렀다. 그동안 미국의 대통령은 여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당시 최고 권좌에 있던 카스트로는 여전히 쿠바를 통치하고 있다. 미사일 위기와 같은 긴박한 대결, 피그만 침공과 같은 노골적인 침공은 없었지만 철저한 경제봉쇄가 쿠바를 옥죄는 악조건에서 쿠바는 최소한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 가난과 부패에 시달리던 빈국은 일대 변신을 했다.

    움베르토 솔라스 감독의 영화 ‘루시아’는 혁명 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충만하던 당시의 낙관이 물씬 배어 있는 영화다. 3부로 구성된 이 영화에는 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세 명이 살던 시대는 각각 스페인 식민주의와의 투쟁이 벌어지는 1895년, 반독재 투쟁이 있었던 1932년, 카스트로 혁명 이후의 1960년대다. 세 ‘루시아’의 삶의 행로는 쿠바 여성의 역사이자 점점 진화하는 쿠바의 역사였다.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90년대 이후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고 지금도 고난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지만 오뚝이 같은 이 나라의 저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사회복지 시스템. 음악과 춤, 야구와 권투, 시가 중에 최고로 치는 아바나 시가. 최근에는 수도 아바나의 생태도시 모델까지 많은 ‘쿠바 마니아’들이 쿠바에 열광한다.



    이제 카스트로가 오랜 집권을 끝내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려 한다. 카스트로 없는 쿠바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진짜 도전과 실험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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