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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16) 왕민(王珉)

낙후된 지린성 경제개발 불도저 지휘

‘백두산 공정’ 통해 한민족 흔적 지우기 … 광산채굴권 따내기 등 북한경제 포섭도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낙후된 지린성 경제개발 불도저 지휘

낙후된 지린성 경제개발 불도저 지휘
‘지린(吉林) 속도’.

왕민(王珉·58·사진) 지린성 당서기 겸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이 2004년 10월 지린성 부(副)서기 겸 대리성장으로 취임한 뒤 새로 생긴 말이다.

2005년 9월2일 지린성은 성도 창춘(長春)에서 제1회 지린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를 열었다. 지린성이 박람회 개최를 신청한 것은 2004년 말. 중앙정부는 다음 해 4월 이를 정식 허가했고, 지린성은 5개월의 준비를 거쳐 국제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중국의 국제박람회는 광저우(廣州)의 광자오후이(廣交會)와 선전(深)의 가오자오후이(高交會), 샤먼(廈門)의 샤차후이(廈洽會), 베이징(北京)의 커보후이(科博會),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의 둥멍(東盟)박람회와 지린성 박람회까지 6개뿐이다. 국제박람회를 준비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최소 1년. 하지만 왕 서기는 이를 단 반년 만에 성공시킨 것이다. ‘지린 속도’라는 새로운 단어가 출현할 만했다.

2005년 서기 취임 후 ‘지린 속도’ 새 단어 출현



왕 서기가 2005년 1월 지린성 성장으로 취임한 뒤 내건 슬로건은 ‘콰이쩌우(快走·빨리 걷기)에서 콰이파오(快·빨리 뛰기)로’였다. 중국 동남부에 비해 크게 낙후한 지린성으로서는 ‘빨리 걷기’만으로는 부족하고 ‘빨리 뛰기’를 해야만 선진 지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왕 서기가 성장으로 취임한 2005년 이후 지린성의 성장속도는 2005년 11.6%, 2006년 18.1%, 2007년 16.9%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이에 따라 지린성의 지역총생산(GRDP)은 2004년 3122억100만 위안(약 41조4072억원)에서 지난해 5000억 위안(추계·약 66조3150억원)으로 3년 만에 62.4% 늘었다.

왕 서기는 지린성으로 옮기기 전부터 ‘속도왕’이었다.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최첨단 기술단지 쑤저우(蘇州) 공업원구는 그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장쑤(江蘇)성은 1994년 7월 쑤저우 공업원구를 개발하기 위해 당초 난징(南京)항공우주대학 부(副)교장이던 그를 성장 조리(助理)로 전격 스카우트했다. 그가 장쑤성 부성장과 쑤저우시 서기로 재직한 2004년 10월까지 쑤저우 공업원구의 연간 성장률은 무려 40%에 달했다.

지난해 9월 현재 3350개 외자기업이 이곳에 투자한 돈은 모두 310억 달러. 이 지역 연간 무역액은 500억 달러를 넘는다. 쑤저우시 1인당 지역총생산(GEDP)은 2006년 이미 1만 달러가 넘었고, 쑤저우 공업원구는 2만6000달러에 이른다.

그가 낙후한 노(老)공업기지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도 이런 쑤저우에서의 실적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는 낙후한 동북3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2003년 집권하자마자 동북진흥계발계획을 수립하고 2004년부터 본격 추진에 들어갔으나 시행 초기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후 주석은 이에 따라 랴오닝(遼寧)성 당서기에는 리커창(李克强) 당시 허난(河南)성 서기를, 지린성 성장에는 왕 서기 등 젊고 유능한 인물을 책임자로 임명했던 것이다.

낙후된 지린성 경제개발 불도저 지휘

중국 지린성 훈춘의 번화가. 왕민 서기는 2006년 훈춘시와 북한 경제특구인 나선시 사이에 항만 개발 및 항구 사용권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왕 성장은 지린성 발전을 위해 백두산을 개발하면서 주변 국가와 적잖은 마찰을 빚었다. 그는 본격적인 백두산 개발을 위해 당초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주가 갖고 있던 백두산 관할권을 2005년 8월 발족한 지린성 직속의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보호개발관리위원회로 옮기게 했다. 또 백두산에 관광객을 유치하고 공항과 철도, 도로를 건설하며 백두산 지역에서 사용하던 한자와 한글 병용 간판을 모두 떼고 한자와 영문 간판으로 바꾸게 했다. 이와 함께 백두산 인삼은 중국명인 ‘창바이산 인삼’으로 통일하고 2006년 7월엔 백두산보호개발관리위 산하 18개 초·중·고교 이름에 모두 ‘창바이산’을 넣어 짓도록 했다.

한마디로 백두산 지역의 한민족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왕 서기의 ‘백두산 개발 계획’이 실제로는 동북공정의 한 지류인 ‘백두산 공정’이며, 궁극적으로는 동북지구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한편으로는 백두산을 개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동북3성의 경제권 안으로 포섭하려는 것이 모두 동북공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후 주석과 같은 ‘안후이방’ … 오랫동안 대학교수로 재직

실제 왕 서기는 2006년 초, 지린성 동쪽 끝에 자리한 훈춘(琿春)시로 하여금 북한 경제특구인 나선시와 항만 개발 및 항구 50년 사용권 협정을 체결하게 해 지린성의 동해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린성의 기업들은 2005년 10월 후 주석의 북한 방문을 전후해 북한의 광산개발권을 대거 따냈다. 지린성이 북한과 인접한 지린성 내 도로망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도 왕 서기가 온 뒤부터다.

왕 서기는 후 주석과 같은 안후이(安徽)성 출신으로 ‘안후이방(安徽幇)’으로 불린다. 현재 안후이성 출신은 후 주석을 비롯해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과 리커창 상무위원 등 중국 정치권력의 심장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만 3명이 포진해 있다. 9명의 상무위원 중 3분의 1이 안후이성 출신이다. 또 5년 뒤인 제18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 0순위인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당서기와 추보(儲波)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서기 등이 모두 안후이방이다. 중국의 태양은 현재 안후이에서 뜨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다.

왕 서기는 관리로 발탁되기 전 오랫동안 대학교수로 일했다. 난징항공학원(현 난징항공우주대학)에서 기계제조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난징항공학원 비서장과 부원장을 거쳐 난징항공우주대학에서 부교장까지 지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학문에 조예가 깊고 빈틈이 없으면서 매우 엄격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시야가 넓으며 포용력이 큰 학자였다고 평가한다. 강의 때는 엄격해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과 친근하게 어울렸다는 것이다.

교수직을 떠난 지 13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난징항공우주대학에서 박사연구생을 뽑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중국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교수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않았다.

후 주석의 직계로 정치적 업적 또한 만만치 않은 그가 5년 뒤 중앙정치국에 진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왕민 프로필



·한족(漢族)

·1950년 3월생

·안후이(安徽)성 화이난(淮南)시 출신

1985년 7월 공산당 입당

1968~1972년 안후이성 수청(舒城)현 스강(石崗)공사에서 지식청년으로 근무

1972~1975년 안후이성 화이난화공기계공장 노동자로 근무

1975~1978년 화이난석탄학원 기계전력과 졸업

1978~1979년 화이난석탄학원 기계제조가공연구실 교사

1979~1981년 베이징(北京)항공학원 기계과 기계제조 공정 전공 석사학위 취득

1981~1983년 화이난석탄학원 교사

1983~1986년 난징(南京)항공학원 기계공정과 기계제조 전공 박사학위 취득

1986~1987년 난징항공학원 기계공정과 강사

1987~1989년 홍콩이공(理工)학원 방문학자

1989~1990년 난징항공학원 기계공정과 부주임, 부교수

1990~1991년 난징항공학원 기계공정과 교수

1991~1992년 난징항공학원 비서장

1992~1994년 난징항공학원 부원장, 박사 지도교수

1994년 6~7월 난징항공우주대학 상무부교장

1994~1996년 장쑤(江蘇)성 성장 조리(助理)

1996~2002년 장쑤성 부(副)성장

2002년 5~8월 장쑤성 부성장 겸 쑤저우(蘇州)시 서기

2002~2003년 장쑤성 당위 상무위원, 부성장, 쑤저우시 서기

2003~2004년 장쑤성 당위 상무위원, 쑤저우시 서기

2004년 10월 지린(吉林)성 부(副)서기

2004~2005년 지린성 대리성장

2005~2006년 지린성 성장

2006. 12~현재 지린성 당서기

2008. 1~현재 지린성 당서기 겸 지린성 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제17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주간동아 2008.03.11 626호 (p56~58)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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