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2008.01.22

개인들의 작은 힘, 세상을 바꾼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1-21 10: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개인들의 작은 힘, 세상을 바꾼다

    <b>마이크로트렌드</b><br> 마크 펜·키니 잴리슨 지음/ 안진환·왕수민 옮김/ 해냄 펴냄/ 632쪽/<br> 1만4800원

    인터넷 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던 20세기 말 인터넷상에서 ‘영어는 인터넷 공용어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평론가 하워드 라인골드는 “21세기 중엽 세계적인 규모의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중국의 커뮤니케이션 전공자 리우지밍은 “인터넷 보급은 국경을 초월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를 재촉해 영어라는 공통어를 필요로 하는 한편, 같은 언어를 쓰는 지역·국가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사용자 중 비영어인구는 영어인구를 웃돌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터넷 세계에서는 영어의 일극 지배가 아닌 사용언어의 다양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실제 변화는? 하와이어를 비롯해 그대로 두었으면 멸종됐을 수많은 언어가 다시 살아났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었지만 바로 그곳에서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변형시키는 새로운 의미의 개인주의’가 창출된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경도와 태도’(창해)에서 말한 초강대 국가나 초강대 자본과도 맞먹는 초강대 개인, 이제 개중(개인+대중)이라 불리는 개인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규모는 엄청난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개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실제 인터넷에서는 네이티브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간의 고도 행위이다 보니 언어의 다양화가 초래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바꾸는 자동번역기의 질이 날로 상승하고는 있지만, 기업이 고객을 유혹하려면 고객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접근해야 하기에 자동번역기가 아닌 언어의 세밀함을 배려할 줄 아는 번역인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인터넷의 이런 속성은 개인이 이슈와 생활양식을 중심으로 뭉치게 했다. 그만큼 선택 폭이 넓어진 셈이다. 따라서 일의 종류나 개인적 보람의 종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단위가 등장했고, 사회·경제·물리적 이동 범위도 넓어졌다. 또한 친구나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졌으며, 사회활동에도 더 많이 참여하게 됐다. 이미 무한한 선택에 대한 기대를 충족해주지 않으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개인이 아무리 엉뚱하고 색다른 선택을 한다 해도 10만명 정도의 동조자 또는 같은 취향의 사람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이런 환경변화는 메가트렌드가 아닌 마이크로트렌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탈공업사회, 글로벌 경제, 분권화, 네트워크형 조직 등 정보화 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짐작한 존 네이스비트의 ‘메가트렌드’가 출간된 때가 1982년이다. ‘메가트렌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문명사적 전환을 예측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그것은 엄청난 공포였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을 가축처럼 인공자궁(子宮·인큐베이터)에서 재배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끔찍한 시대의 도래를 예측한 ‘매트릭스’(1999)라는 영화가 세상을 휩쓴 다음에는 ‘매트릭스적 불안’이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는 그런 불안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생활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 잘 맞는 멘토를 찾아주고, 메시지를 통해 사기를 높이고, 맞춤식 회사 만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입사 첫날부터 직원들을 마이크로 타기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메가트렌드’ 이후 사반세기 만에 등장한 ‘마이크로트렌드’는 75가지의 마이크로트렌드를 제시한다. 오늘날의 분파적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움직이려면 엇갈린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며 성장하고 있는 열정적인 주체성(identity) 집단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 집단이 바로 마이크로트렌드다. 이 책은 독자적인 결정으로 오늘과 내일의 세상을 형성해나가고 있는 75개 집단에 관해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사랑과 성, 그리고 인간관계를 다룬 1장에는 성비(性比) 싱글족, 쿠거족(연하남을 선택하는 여성들), 사내 연애족, 주말부부족, 인터넷 결혼족 등이 등장하고 직장생활을 다룬 2장에는 은퇴 후 노동족, 익스트림 통근족, 재택근무족, 말로 먹고사는 여성, 열혈 여장부 등이 나온다. 가정생활을 다룬 5장에서는 늙은 아빠, 애완동물 양육족, 오냐오냐 부모족, 늦깎이 게이족, 착한 아들들이 제시되는 등 인종과 종교, 건강과 웰빙(참살이), 정치학, 10대들, 식품·음료·식이요법, 생활방식, 부와 계급, 외모와 패션, 기술, 여가와 오락, 교육, 국제정세 등에 해당하는 주체성 집단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집단은 미세한 점들처럼 보이지만 모아놓으면 인상파 화가의 작품 같은 완성된 그림이 된다.

    책에서 언급된 통계는 가끔 팁으로 제시되는 국제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적 현상을 다룬다. 하지만 뉴욕 서울 도쿄 런던의 생활권이 닮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도 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익스트림 통근족과 재택근무족처럼 상반되는 집단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통 기업이나 개인은 연말연초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럴 때 많은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