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2008.01.22

과거사委 ‘과거의 추억’ 되나

인수위 “기본적으로 폐지와 정비, 법 개정”… 겨우 1~3년 활동 전면 폐지 땐 논란 불 보듯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01-16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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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委 ‘과거의 추억’ 되나

    출범 2년1개월 만에 해체 기로에 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최근 각종 과거사위원회에 비상이 걸렸다.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1월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이하 인수위) 측에 과거사위원회 14개에 대한 폐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각종 과거사위원회 측 관계자들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면서도, 한편으론 ‘설마’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안병욱 위원장은 “행자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내용이 뭔가 봤더니 ‘정부 각종 위원회 및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비계획’이라는 한마디밖에 없었다”면서 “추측성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하긴 이른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위원장은 행자부 보고서에 적시된 ‘정비계획’이라는 단어를 폐지로 해석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통합을 한다든지, 위원회 역할이 끝나면 정리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 등 14곳 ‘비상’



    안 위원장은 “과거사위원회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60년 역사에서 과거사 관련 부분은 한 번쯤 정비하고 가야 한다”면서 “위원회 대부분이 임시기구이기 때문에 새 정부는 주어진 기간에 효과적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측도 행자부의 폐지 검토 보고에 별달리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아직 의견을 모으지 않았지만, 특별법이 존재하는 한 당장 위원회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인 측 분위기는 다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과거사위원회를 다 없앤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폐지를 검토할 계획이다. 행자부도 그렇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도 “과거사위원회는 물론 각 부처마다 법적 근거 없이 마련된 과거사위원회 성격의 조직들까지 포함해 전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필요한 경우 법 개정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수위와 이 당선인 측의 이 같은 태도는 이 당선인이 각종 과거사위원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이 당선인은 과거사 청산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갈려 심각한 갈등을 빚던 2006년 6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라는 게 어두운 면도 있고 밝은 면도 있고, 과거의 어두운 면만 포커스해서 문제 삼으면 앞으로 한 걸음도 못 나간다. 현재가 과거와 맞붙어 싸우면 피해 보는 것은 결국 미래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됐다. 이 정권이 과거 청산 문제를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한다. 과거는 관용으로 해야 미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가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 과거를 따지자는 사람은 진보처럼 보이고 지키자는 사람은 보수로 보인다. 진보는 개혁적·민주적이고 보수는 독선적·비개혁적이라는 식으로 용어가 해석되니 국민이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것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사를 따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이 당선인의 시각은 5공화국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인수위원장에 임명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과거사위원회는 눈엣가시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8월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 명의로 발간한 공작정치 백서를 통해 “노무현 현 정권은 대선에 국가정보원, 건설교통부, 과거사위원회 등 정부기관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가에는 과거사위원회가 과거사 진상규명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 당선인의 최측근 오세경 변호사가 과거사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은 이 당선인은 물론 한나라당 내 정서를 관통한다. 현재 인수위 법무행정분과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는 오 변호사의 말이다.

    “(과거사위원회는)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정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단순히 검토하는 단계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고 총선이 끝난 뒤에는 과거사위원회 폐지 법안이 제출될 것으로 안다. 지금 (폐지법안을) 제출하면 통과되지 않을 것 아닌가.”

    현재 폐지 검토 대상으로 상정되고 있는 과거사위원회는 거의 모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안에 만들어졌다. 특히 진보-보수 간 갈등을 촉발했던 친일 관련 과거사위원회는 노무현 정부의 상징적 부산물이다.

    한나라당 “과거사위,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2004년 출범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6년 문을 열었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9개의 과거사위원회가 2004년 이후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들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길어야 3년, 짧게는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위원회가 펼쳐놓은 일거리들이 넘쳐난다.

    일례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경우 2004년 문을 열자마자 무려 22만 건에 이르는 피해신고를 받고 조사를 벌여 6만7000여 건에 대한 피해결정을 내렸지만, 아직도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줄을 서 있다. 피해자들의 원성으로 당장 올해 3월부터 추가신고를 받아야 할 판이다. 지난해 12월10일 국회를 통과한 강제동원희생자 지원법에 따라 올해 6월10일부터는 피해보상 절차도 함께 밟아야 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지난 1년간 친일반민족행위자 450명의 재산을 세 차례로 나눠 국가 소유로 귀속시켰는데, 올해부터 조사대상 범위를 확대해 상시적으로 국가 소유로 귀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위원회에 대한 전면 폐지를 검토할 경우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이재철 홍보팀장은 “현 상태에서 폐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국가 낭비일 뿐 아니라, 국민적 저항도 불러올 것”이라면서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 팀장은 “일부 위원회 조직을 통폐합하거나 조정하는 정도의 조직개편도 예상할 수 있지만, 대다수 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2~3년 남은 상태에서 통폐합하거나 조정하면 오히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안병욱 위원장은 “새로운 정부가 또다시 위원회의 존립이나 위상에 대해 언급한다면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면서 “미래를 향한 갈등 해소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 과거 정부정책에 비판적이던 야당의 입장에서 벗어나 집권여당의 시각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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